[기자수첩]법원 판결도 외면한 금감원의 'ELS 과징금 잣대'
투자손실 투자자책임 금융본질 흔든 모순
감독권 남용 지적…행정신뢰 깎지 말아야
금융감독원의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제재 심의가 결국 '3차전'으로 넘어갔다. 금융사 불완전판매에 대한 2조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과징금을 예고한 금감원은 2차 제재심에서도 강경 기조를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법원이 투자자 책임 원칙을 강조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금감원의 제재 논리가 시장의 상식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이번 제재가 금융시장의 대원칙인 '자기책임 원칙'을 흔드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는 그에 따르는 위험을 본인이 감수하는 것이 기본이다. 물론 은행의 명백한 기망 행위가 있었다면 엄단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법부가 제시한 객관적 기준마저 무시한 채 행정 제재를 밀어붙이는 것은 '감독권 남용'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법적 근거가 희박한 징벌적 제재는 결국 은행의 자산관리(WM) 비즈니스를 위축시키고, 다양한 투자 기회를 박탈당하는 금융 소비자의 피해로 귀결될 뿐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인 '설명의무 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금감원의 고집은 요지부동이다.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법은 개인투자자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장래 지수 변동에 따른 손익 예측은 투자자 스스로의 몫"이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특히 금감원이 주요 제재 근거로 삼았던 '20년 수익률 모의실험 결과 미제시' 역시 은행에 적용될 기준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금감원은 2차 제재심에서 기존 논리를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이는 자율배상안을 가이드라인 삼아 은행들을 압박해 온 그간의 행보가 잘못됐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비친다. 감독당국이 사법부의 판단마저 외면한 채 결론을 정해놓은 심의를 이어가는 것은 행정의 신뢰도를 스스로 깎아 먹는 일이다. 금융권에서도 당혹스러운 반응이 지배적이다. 제재심에 정통한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금감원 입장을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2차 제재심에서도 (1차 제재심과 비교해) 특별히 달라진 내용은 없는 듯했다"고 귀띔했다.
이달 12일 열릴 3차 제재심은 금감원이 '감독당국으로서의 품격'을 증명할 마지막 기회다. 2조원에 달하는 과징금은 은행의 건전성까지 위협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법원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하고, 과도한 제재 수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유연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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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행정은 감정이나 여론이 아닌 법과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 금감원이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한 채 독주를 계속한다면, 대한민국 금융시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3차 제재심에서는 부디 '누구를 위한 제재인가'를 냉정하게 되짚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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