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난양공대가 카이스트에 남긴 숙제
국가적 인재 확보 경쟁 나설 총장 선임 시급

[백종민의 딥테크]총장님, 기부보다 스카우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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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난양공대(NTU)는 카이스트(KAIST) 모델을 참고해 만들어진 대학이다. 1971년에 출범한 카이스트에 비해 20년이나 늦은 1991년 출범한 NTU도 국가 산업화를 뒷받침할 공학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 카이스트가 먼저 걸었던 길을 빠르게 학습한 NTU는 이제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다. 우리보다 저만치 앞서 있다.


최근 QS 세계대학평가와 전공별 순위는 변화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컴퓨터공학·인공지능(AI) 분야에서 NTU는 하버드대를 앞지르며 최상위권으로 올라섰다. NTU는 싱가포르국립대(NUS)와 함께 싱가포르가 '글로벌 AI 허브'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발전해 왔지만, NTU에 추월을 허용한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싱가포르의 선택은 일관됐다. 사람이다. 카이스트나 NTU 모두 사실상 정부에서 리더십을 정한다. NTU는 총장과 대학 리더십부터 '국제 학계에서 통하는 인물'을 전면에 세웠다. 현 총장 역시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와 정부 정책을 동시에 이해하는 인물로, 연구 성과·산학 협력·국제 인재 유치를 하나의 전략으로 묶었다.


AI·데이터과학 분야에서는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단과대학을 새로 만들고, 교수 수십 명을 한꺼번에 충원했다. 해외 박사과정 학생에게는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제공하며 지원했다. 이런 노력이 쌓여 지금의 결과물로 보이는 것뿐이다.

홍진욱 주싱가포르 대사는 "NTU 총장은 전 세계에서 우수한 교수들을 스카우트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정책을 앞장서 이해하고 시행하는 행정가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의미다.


한국은 달랐다. 최근 몇 년간 카이스트는 사람이 아니라 기부금 유치를 내세워 왔다. 돈과 건물, 미술품 기증이 사람에 앞섰다. 기부금에 시선이 쏠린 것은 정치권도 매한가지다. 국정감사에서는 기부금을 많이 받아온 과기원 총장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렇지 못한 총장은 수모를 당해야 했다.


대학 운영에 돈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 경쟁력의 핵심은 연구자다. 국제 학계에서 존경받는 석학을 얼마나 데려오고, 그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냐가 경쟁력을 결정짓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기본을 잊었던 게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카이스트는 리더십 공백까지 겪고 있다. 차기 총장 인선이 장기간 지연되면서 내부 구성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금 카이스트에 필요한 총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 성과를 갖추고, 해외 우수 인재를 직접 영입하며, 연구 생태계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다음 달 졸업식이 상징적 장면이 돼야 한다. 연구비 삭감에 항의하는 졸업생의 입이 틀어막히고도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한 학교로 남아서는 변화할 수 없다. 졸업생을 사회로 내보내고, 새로운 학생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카이스트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다시 사람에 투자하겠다'는 분명한 신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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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가 모델이었던 대학이 우리를 앞질렀다면, 이제는 냉정하게 인정하고 다시 배워야 한다. 대학 경쟁은 결국 사람의 경쟁이다. 그 출발점은, 바로 다음 총장이다.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인력 확보의 전사를 하루빨리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 우리가 미룬다면 중국, 싱가포르가 뛸 것이 분명하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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