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통신기업, 영화시장 빨대 꽂기[영상2도]
통신사 티켓 할인 '생색 내기'
배급·제작사 몫 깎아 비용 충당
실종된 공정, 콘텐츠 위기 심화
관객이 1만1000원에 영화 티켓을 결제했는데, 영수증에는 7000원이 찍힌다. 사라진 4000원은 회계상 공백이 아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기형적 유통 구조의 증거다.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영화 티켓의 할인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간담회' 현장에서 쏟아진 성토는 이 모순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5년 새 티켓값은 1만5000원으로 뛰었지만, 정작 배급·제작사가 손에 쥐는 돈은 5000원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가격은 올랐는데 생산자의 소득은 줄었다. 누군가 중간에서 과도한 '통행세'를 징수하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의 본질은 이동통신사와 극장의 '비용 전가(Cost Shifting)' 카르텔이다. 통신사는 가입자 이탈 방지(Lock-in)를 위해 영화 할인을 미끼로 던지고, 극장은 공실률을 메우려 이에 동조한다. 마케팅을 위해 가격을 깎는 건 기업의 경영상 자유다.
그러나 시장 경제의 대원칙인 '수익자 부담'을 위배한다는 점이 심각한 모순이다. 통신사가 자사 고객에게 혜택을 주어 생색을 냈다면, 그 비용은 통신사가 감당해야 한다. 극장이 모객 효과를 누렸다면 극장의 마진을 헐어야 마땅하다.
현실은 정반대로 작동한다. 극장과 통신사는 제휴라는 명목 아래, 정작 배급·제작사의 몫을 깎아 통신사 고객 관리 비용을 충당한다. 연 매출 60조원에 달하는 거대 통신 기업들이 5000억원 규모의 영화 시장에 무임 승차해 빨대를 꽂은 꼴이다.
배급사는 내 영화가 극장에서 어떤 할인이 적용돼 얼마에 팔렸는지조차 알 수 없다. 정가와 할인 내역이 지워진 최종 금액만 통보받는다. 전형적인 '깜깜이 정산'이다. 가격 정보가 차단된 '정보의 비대칭'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란 성립 불가능한 허상이다.
감상적인 상생 호소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시장 논리에 따라 '가격의 하한선'을 그어야 한다. 통신사와 극장이 1만5000원짜리 티켓을 7000원에 덤핑 판매하든 무료로 뿌리든 관여할 필요는 없다. 단 배급사와의 정산은 할인된 가격이 아닌 정상 가격, 혹은 합의된 '최저 정산금(Minimum Guarantee)'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콘텐츠의 유통 지형은 이미 뒤집혔다. 넷플릭스를 위시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자본은 제값을 치르고 양질의 콘텐츠를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있다. 극장과 통신사가 지금처럼 배급·제작사를 하청업체 부리듯 쥐어짠다면 경쟁력 있는 콘텐츠는 극장을 영영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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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가 빠져나간 스크린에는 앙상한 껍데기만 남을 뿐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면 포식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법이다. 눈앞의 유통 마진을 챙기려다 산업의 뿌리까지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다. 투명한 정산과 정당한 대가 지불은 시혜적인 배려가 아니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공멸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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