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참사 4년 6개월 만에'…광주 학동4구역 공사 재개
동구청 착공 신고 최종 수리
알박기·공사비 갈등 봉합해
2029년 2,299세대 완공 목표
28일 오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 매서운 겨울바람 사이로 옅은 햇살이 내려앉은 이곳은 지난 4년 6개월간의 긴 침묵을 깨고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참사의 비극이 할퀴고 간 자리는 높은 펜스로 둘러싸여 있지만, 틈새로 보이는 현장은 말끔히 정리된 상태였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와 흉물스럽게 방치됐던 구조물들은 모두 사라졌고, 광활하게 펼쳐진 나대지는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거대한 캔버스처럼 보였다.
인근 버스 정류장에는 시민들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고, 굳게 닫혀 있던 현장 게이트 주변으로는 공사 재개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현장 인근에서 만난 한 상인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지만, 언제까지나 멈춰 있을 수는 없지 않냐"며 "이제는 튼튼하고 안전한 아파트가 들어서서 침체된 동구 상권에도 활기가 돌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사상 최악의 붕괴 참사와 각종 비리로 얼룩지며 표류했던 광주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 마침내 첫 삽을 뜬다.
이날 광주 동구청 등에 따르면 구는 최근 학동4구역 재개발 조합이 제출한 착공 신고를 최종 수리했다. 이로써 멈춰 섰던 현장은 오는 2029년 완공을 목표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 지난 2021년 6월 9일, 철거 중이던 건물이 도로를 덮쳐 시내버스를 덮친 비극적인 참사 이후 꼬박 4년 6개월 만이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그동안 학동4구역은 안전 불감증이 초래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막대한지, 그리고 이해관계가 얽힌 재개발 현장의 민낯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험난한 시간을 보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단연 '붕괴 참사'가 남긴 후폭풍이었다. 17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고는 단순한 공사 중단을 넘어 대한민국 정비사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파장이 컸다. 사고 직후 경찰과 검찰의 고강도 수사가 이어졌고, 국토교통부와 관할 구청의 행정 제재가 잇따르면서 물리적인 공사 재개는 불가능했다.
안전 기준이 대폭 강화되면서 남은 건물을 철거하는 절차조차 까다로워졌다. 해체계획서를 다시 쓰고, 전문가 검토를 거쳐 승인을 받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위험한 현장'이라는 낙인을 지우고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 자체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요구한 셈이다.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불거진 두 번째 암초는 구역 내 상가와 종교 시설의 '이주 거부'였다. 특히 사업 구역 한복판에 위치한 상가와 일부 교회가 보상금 액수를 두고 조합 측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조합은 법원에 명도 소송을 제기하며 강제 집행 권한을 확보하려 했으나, 법적 절차는 더디기만 했다. 1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수차례 변론이 오갔고, 항소심까지 예고되는 등 갈등은 장기화 조짐을 보였다. 결국 법원의 조정과 강제 집행 예고가 겹치면서 지난해 하반기에 이르러서야 실질적인 이주와 철거가 마무리됐다. 이 기간만 2년 가까이 소요되며 사업비 금융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마지막 관문은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과 조합 간의 '공사비 갈등'이었다. 철거가 끝난 빈터에는 공사비 증액이라는 현실적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참사 직후 현산 측은 시공권 박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조합원들에게 '노 마진(No Margin)'에 가까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었다. 이익을 남기지 않고 최고급 마감재를 적용해 명품 단지를 짓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고금리 기조는 상황을 180도 바꿔놓았다. 현산 측은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으면 공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당초 3.3㎡(평)당 500만원대 초반이었던 공사비를 600만원 후반대로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조합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참사 당시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위"라며 시공사 교체론까지 불거졌다. 양측의 협상은 10개월 넘게 평행선을 달렸다. 파국 직전까지 갔던 협상은 지난해 7월, 평당 공사비를 약 619만 8,000원으로 확정하며 극적으로 타결됐다. 조합이 마감재 사양을 일부 현실화하고, 현산이 인상 폭을 조절하며 겨우 접점을 찾은 결과였다.
세 가지 거대한 산을 넘은 학동4구역은 지하 3층~지상 29층, 19개 동, 총 2,299세대 규모의 대단지로 탈바꿈할 준비를 마쳤다. 단지명은 '광주 무등산 아이파크 2차'가 유력하지만, 참사의 흔적을 지우고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새로운 펫네임(Pet Name)이 도입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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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인근의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학동4구역은 무등산 조망권과 교통 편의성 등 입지적으로 광주의 랜드마크가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면서도 "참사 현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안전 시공에 대한 검증이 그 어느 곳보다 엄격하게 이뤄질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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