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라는 거대 공포의 등장
'더 나은 세상' 위선적 낙관 소멸
태풍 비껴가기만 바라는 한국
캐나다 다음은 우리 차례일수도
뉴스로 전해지는 2026년 1월의 다보스는 유난히 춥다. 스위스의 살을 에는 바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때 '세계화의 성전'이라 불리던 이곳의 공기가 달라졌다. 세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샴페인 잔을 부딪치며 "더 나은 세상"을 논하던 위선적인 낙관론은 자취를 감췄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거대한 태풍이 몰고 온 공포다.
2026년 1월 다보스의 분위기는 냉소적이었다. 모든 것은 트럼프 때문이다. 그린란드를 둘러싼 트럼프의 충격 요법은 유럽을 뒤흔들었고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유럽의 핵심 의사결정권자들에게 핵심 과제가 됐다. 겉으로는 트럼프와 미국의 압박이 유럽을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80년 동안 유럽을 보호하던 미국이라는 안보 우산이 찢겨 나가자 유럽 각국은 국방비 증액에 나서고 징병제를 부활하면서 자강을 외치기 시작했다. 미국의 보호를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던 것과 비교해보면 건강해졌다고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독기를 품고 일어서는 것을 두고 성장했다고 칭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의 선의에 기대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남은 건 힘의 논리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에 대해 '100% 관세'라는 핵폭탄급 무역 제재로 위협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중국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낮추고, 대신 카놀라유를 중국에 파는 협상을 타결했다. 경제적 실리를 챙기려던 캐나다의 시도에 트럼프는 '배신'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따위는 휴지 조각 취급하며 응징에 나선 것이다. 캐나다가 누구인가. 미국의 '51번째 주'라 불릴 만큼 경제적, 문화적으로 통합된 혈맹이다. 그런 캐나다조차 중국과 '거래'를 텄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의 적으로 간주해 경제적 참수형을 선고받았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내 편이 아니면 적이다." 중간은 없다. 회색지대는 소멸했다.
우리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유럽과 캐나다의 처지를 비웃을 때가 아니다. 진짜 공포 영화는 이게 시작일지 모른다. 미국 시장에 대해 접근하려면 15%의 관세를 부담하거나 미국에서 공장을 짓고 미국인들을 고용해서 생산하라는 것이 트럼프의 이야기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유무역협정(FTA)은 소멸했고 그나마 우리가 의존하던 쿼터도 없어졌다. 1980년대부터 40년간 미국이 상실했던 제조업 일자리를 내놓으라고 위협하고 있다. 2025년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9000억달러를 미국에 제공하겠다고 이야기했다. 2026년에는 대만이 5000억달러를 미국에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관세를 내기 싫으면 미국에 공장을 만들고 미국인들을 채용하라는 것이다.
세상의 질서가 바뀌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느긋해 보인다. 정책결정권자들은 안미경중 이라는 흘러간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태풍이 비껴가기만을 기도하고 있다. 3년만 지나면 이제 편안하게 지낼 수 있으니 잠시 힘들지만 끝을 기다리면서 버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사례는 우리의 전략적 모호성이 더 전략이 아니라 '자살행위'임을 보여준다. 미국의 턱밑에 있는 캐나다도 저 꼴이 났는데, 태평양 건너 중국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한국이 중국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미국의 안보 우산을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면, 그것은 순진함을 넘어선 직무 유기다.
트럼프의 쇼크 요법은 유럽을 강제로 '건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 충격파는 아시아로, 한반도로 향하고 있다. 캐나다를 향한 100% 관세 위협은 우리에게 닥칠 미래의 예고편이다. 우리가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못해 머뭇거리는 순간, 혹은 미국이 요구하는 반중 전선에 0.1㎜라도 틈을 보이는 순간, 우리에게 날아올 청구서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2025년 11월 발표된 미국 안보전략과 최근 공개된 미국의 국방전략은 미국이 더 이상 세계 경찰 노릇을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할 의지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유지해왔던 미국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미국의 등에 업혀있던 유럽 국가들은 고유한 가치와 미래의 번영을 이야기하면서 세계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막을 내렸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애써 무시할 뿐이다. 2026년의 세계는 각자도생의 정글이다. 동맹의 가치는 거래의 장부 아래 깔렸고, 가치 외교는 힘의 논리에 짓밟혔다. 지금 우리에게 이를 악물고 준비해야 할 것은 트럼프가 유럽에 가한 것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 혹독한 '자체 충격 요법'이다.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미국이 우리를 버릴 때, 혹은 미국이 우리 목을 조여올 때 버틸 체력이 있는가? 중국의 보복과 미국의 제재 사이에서 찢겨 나가지 않을 단단한 근육이 있는가? 다보스의 샴페인이 식어버린 것처럼, 우리의 안일한 평화도 끝났다.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어떻게 되겠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뼛속 깊이 고민해야 한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국익을 위해 움직였으나, 결과적으로 미국이라는 제국의 역린을 건드렸다. 우리의 외교가 그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겨울은 이미 왔다. 옷깃을 여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뼛속까지 시려오는 이 냉기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바로 우리다. 세상은 더 이상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이란에 '토마호크' 얼마나 퍼부었길래…일본에 '당...
변동성은 기회다. 안정적인 세계 질서는 모두에게 정해진 역할과 범주에 머무르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한 치 앞도 보여주지 않는 새로운 질서는 우리에게 이전보다 더 큰 자유를 제공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쪼개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와 잘 지내면서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를 위한 결심일지도 모른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수석 전문위원(글로벌 정책·법률)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