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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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된 2024년 연구개발활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약 131조원으로 전년보다 12조원 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은 5%를 넘어 세계 2위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계속 둔화하고, 실질성장률도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다. 석유화학, 철강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뚜렷하고, 중국과 기술 격차는 상당 부분 좁혀졌거나 일부는 추월을 허용했다. 왜 그럴까. 답은 숫자 뒤에 숨은 '디테일'에 있다.


우선 국가 전체 R&D 투자 구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체 투자 가운데 기업이 약 78%인 103조원을 담당하고, 정부 등 공공부문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기업별 투자 내역을 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LG전자 등 상위 10개 기업의 투자액이 전체 기업 R&D의 절반을 넘는다. 다시 말해, 극소수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 R&D의 절반 이상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나머지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R&D 투자는 정체됐거나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산업 전반의 연구개발 저변은 오히려 취약해지고 있는 구조다. ICT 분야와 여타 산업 간 투자 격차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로봇·우주·바이오 등 첨단 기술 경쟁은 가속화하지만, 산업기술진흥협회 전망 조사에 따르면 올해 기업들의 R&D 투자와 연구인력 채용이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 같다.


국가 R&D 투자에서 정부 역할은 여러 변곡점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1990년대까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여러 분야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매개로 정부와 기업이 적극 협력하는 체계가 산업 도약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 대기업 연구 역량이 고도화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 연구개발 보조금 규제 강화 등 여러 요인이 맞물리면서 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은 중소·벤처기업 중심으로 점차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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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정부 R&D 정책도 단기 상용화에서 기초·원천연구, 인력양성, 인프라 구축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이 때문에 과거 D램 반도체, 고속철도 개발 같은 가시적 성과가 줄어든 듯 보이지만 우주·국방 등을 비롯한 임무지향형 연구에서 가시적 성과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우수 연구 성과가 기술이전과 창업으로 이어져 1조원을 넘는 시장 가치를 창출하는 성공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정부의 역할은 과거 수동적 지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개입으로 전환하고 있다. 중국이 '신형거국체제'를 내세워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듯, 우리도 정부·기업·출연연·대학 등이 각각 따로 움직이는 구조를 벗어나 기술주도형 성장을 위해 한정된 인적·물적 역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초기 단계인 양자, 미래에너지, 우주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는 정부가 단순한 '연구개발 지원자'에 머물지 않고, '모험가적 정부'로서 혁신 생태계가 작동하도록 자본 투자, 초기 시장 창출 등 적극적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임무지향형 연구개발 사업은 반드시 수요기업 또는 산업 생태계와 연계 속에서 추진돼야 하며, 전략적 R&D 투자는 세제·금융지원, 인프라 지원 등 다양한 정책 수단과 긴밀하게 연계돼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술 특성과 산업 생태계 현실을 고려해 정부 R&D 지원에서도 중소벤처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등 유형별로 정부·민간 간 전략적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기술주도 성장을 통해 잠재성장률 3%를 회복하려면 R&D 투자 비중 '세계 2위'라는 수식어에 안주할 수 없다. 경쟁력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투자의 양이 아니라 전략과 시스템의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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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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