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과 소금이 빚은 영광굴비의 고향 명성
고려시대부터 임금에 진상한 사실 전해져
전통염장 방식 섶장법 고수…천년의 맛 지켜
영광이 자랑하는 굴비한상·여행객 입맛 공략

편집자주전남 영광 법성포에 서면 바람부터 다르다. 짠 내가 묻어나는 해풍이 골목을 훑고, 처마 끝에 매달린 굴비가 바람에 몸을 맡긴다. 이곳에서 바람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시간을 말리고, 맛을 빚는 도구다. 영광굴비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다. 천 년의 바람과 소금, 사람의 손길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지역의 풍경이자 문화다.

◇굴비가 태어나는 마을 '영광'


전남 영광 굴비에 대한 기록은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상 공식 언급된 것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지도군총쇄록' 같은 조선 시대지만, 굴비는 이미 고려때부터 특산물로 임금에게 진상되던 식품이었단 사실들이 구전을 통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만큼 굴비는 천년의 시간 동안 지역을 대표하는 맛이었단 의미다.

한 어민이 굴비덕장에 굴비를 널어 해풍에 말리고 있는 모습. 영광군 제공

한 어민이 굴비덕장에 굴비를 널어 해풍에 말리고 있는 모습. 영광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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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병풍 삼아 펼쳐진 칠산 앞바다에선 참조기가 그야말로 그득했다. 수십 수백척의 어선이 몰려들었고, 항구는 사람과 생선, 소금 냄새로 가득 찼다.


그 흔적이 현재까지 영광 법성면 일대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은 여전히 굴비 덕장이 늘어서 있고, 바닷바람을 따라 은은한 짠 향이 퍼진다. 비록 시간은 흘렀다지만 여전히 해풍의 방향과 세기, 온도와 습도가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전통 가공법도 여전하다.

영광군에서 생산되는 굴비는 단순한 수산물이 아니다. 지역을 먹여 살리는 버팀목이다. 연간 약 6,960톤, 매출 2,010억 원. 428개 업체가 산업 생태계를 이룬다. 법성면은 국내 최대 굴비 생산지로 인정받아 2009년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영광 굴비산업특구'로 지정되기도 했다.


◇말린 조기 한 마리에 담긴 시간


국립국어원에서 정의하는 굴비는 '소금에 약간 절여서 통으로 말린 조기'로 규정해 놓고 있다. 말 그대로 굴비는 소금에 절여 통째로 말린 조기를 의미한다. 이름은 단순하지만, 맛은 그렇지 않다.


영광굴비의 전통 염장법은 '섶장법'이다. 조기의 아가미를 헤쳐 조름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뒤 소금을 채운다. 항아리에서 숙성된 조기는 이후 10일 이상 해풍을 맞으며 천천히 마른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바람과 햇살이 할 일을 기다리면 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깊은 감칠맛과 단단한 살결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다.


◇굴비가 전해주는 옛이야기


굴비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을까. 여러 해석이 있지만 고려 시대 이자겸이 유배지였던 법성포에서 말린 조기를 맛보고 임금에게 진상했는데, 이때 자기 뜻을 거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굴비('굽히지(屈) 않겠다(比)')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조기를 엮어 말리면 허리가 굽는 데서 비롯된 고어 '구비'가 굴비로 굳어졌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굴비라는 단어 뒤에는 오랜 역사와 시간을 머금고 있는 식재료임에 틀림없다.


◇바다와 소금이 만드는 차이


영광굴비의 기본은 참조기다. 특히 몸길이 17㎝ 이상의 국내산 참조기만 사용한다. 칠산 앞바다에서 잡힌 참조기는 살이 단단하고 풍미가 깊다. 또 생선 머리 앞부분에 다이아몬드 모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소금도 다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소금'이 지명에 들어간 영광군 염산면의 천일염이 쓰인다. 미네랄이 풍부한 이 소금은 조기의 맛을 해치지 않고 천천히 끌어올린다.


염장된 참조기는 청정 해풍에 자연 건조된다. 건조되는 과정에서 영광굴비는 단백질과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깊어진다.


생산 과정도 엄격하다. 원료 조기는 경매를 통해 조달되며, 수매 확인서를 통해 원산지가 관리된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구입 즉시 가공지로 옮겨 -30℃에서 단기간 보관한 뒤, -18~-22℃에서 장기 보관하며 가공한다. 여름철과 장마철은 피하고, 알이 차고 품질이 우수한 2~3월에 대량 조달한다. 염장 굴비는 주로 3~6월에, 마른 굴비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생산된다.

영광군이 자랑하는 영광굴비 정식 한 상 모습. 영광군 제공

영광군이 자랑하는 영광굴비 정식 한 상 모습. 영광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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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층 공략…굴비를 맛보는 방식 변화


요즘 영광에서는 굴비를 새롭게 즐기는 방법이 늘고 있다. 전통 마른 굴비 외에 보리굴비, 고추장 굴비, 굴비를 활용한 가정간편식까지 등장했다.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식생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입 벌어지게 한 상 차려지는 남도의 손맛도 무시하면 섭섭하다. 영광을 방문한 여행객들은 정갈한 굴비 한 상 차림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서다.


이처럼 과거와 삶과 먹는 방식은 달라져도 중심은 같다. 바람에 말린 맛, 시간을 품은 풍미는 여전하다.


영광군 관계자는 "영광굴비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품고 있는 소중한 자원이다"며 "전통을 지키기 위한 많은 분의 노력 덕에 현재까지도 그 맛을 지켜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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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영광이 보유한 천혜의 자연환경과 영광군민들의 땀과 노력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영광굴비인 만큼,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호남취재본부 심진석 기자 mour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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