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논리로 세계질서 재편하는 美
韓, 중견국 연대도 새 규범 플랫폼

[K우먼톡]약육강식 시대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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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에 우리는 충격적 사건을 목격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안가에 미국 특수부대가 진입해 대통령 부부를 수술칼로 도려내듯 미국으로 압송하는 장면과 동맹의 영토인 그린란드를 가지겠다는 미 대통령의 선포는 우리가 알던 세상의 규범이 무너지는 신호탄이다. 주권과 영토보전이라는 핵심적인 규범이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에 의해서 파괴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던가? 정의는 실종되고 있는 것인가?


사실은 인류의 긴 역사에서 역사는 정의의 편이 아니라 언제나 힘을 가진 자의 편이었다. 중국 전국시대의 승자는 도덕을 잘 설파한 나라가 아니라, 병력과 자원을 가장 냉혹하게 동원한 진(秦)이었다. 로마는 법과 문명의 이름으로 세계를 통치했다 하지만, 그 질서를 떠받친 것은 군단과 정복 전쟁이었다. 정의는 서사였고, 힘이 진실이었다.

우리가 익숙해진 '규범과 규칙의 시대'는 인류사 전체로 보면 오히려 이례적이다. 냉전 이후 자유주의 국제질서, 규칙 기반 질서라는 언어는 마치 인류의 되돌릴 수 없는 진보를 이룬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그것은 승전국 간 힘의 균형과 이어진 미국의 절대적인 힘의 우위에서 만들어진 일시적 상태에 불과했다. 규범과 규칙이 인류의 자연 질서라는 믿음은, 힘이 잠시 규칙의 옷을 입고 작동하던 시기의 착시였다.


이 착시는 미국의 상대적 힘의 약화와 트럼프의 귀환과 함께 거칠게 붕괴되고 있다. 트럼프로 대변되는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 "규범을 왜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규범이 아니라 힘이 국제질서의 중심으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트럼프식 힘의 질서는 이미 분명한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 동맹의 조건화다. 미국의 안보 경제 이익에 부합할 수 있을 때만 동맹이다. 둘째, 영토와 자원은 쟁취의 대상이다. 북극 항로, 에너지, 희토류, 기술 공급망은 다시 힘의 언어로 호출된다. 셋째, 규범의 선택적 적용이다. 규칙은 보편적 기준이 아니라, 힘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존중된다.


이 맥락에서 '그린란드'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략적 가치가 있는 영토와 약한 주권은 언제든 재해석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주권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그 공간의 힘을 설계할 수 있느냐다. 약육강식의 질서에서 규범은 보호막이 아니라 종이로 된 방패일 뿐이다.


이 노골적인 힘 질서 속에서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규범과 동맹의 언어에 익숙해져 왔다. 그러나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동맹은 언제든 소모된다. 힘이 없는 동맹은 부담이 되는 순간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가치는 힘이 있을 때만 동맹을 묶는 접착제가 된다.


이제 한국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규범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도덕적 우위만 주장할 것인가, 강자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안정을 갈구할 것인가, 아니면 군사·경제·기술·외교를 결합해 스스로 협상력을 높여가는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손에 쥔 카드가 많아야 변두리로 밀려나지 않는다. 이 마지막 선택지는 외교적 상상력 위에 국가적 총력을 동원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길이다. 그 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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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육강식은 야만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의 문법이다. 이 문법을 부정하는 국가는 정의로운 국가가 아니라, 현실을 읽지 못하는 국가다. 세계는 이미 힘의 언어로 말하고 있다. 한국도 그 언어를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문장을 써야 할 시간이다. 그 문장 속에는 중견국 연대를 통해 지구의 생존을 담보하는 새로운 규범의 플랫폼도 포함돼야 한다.

박은하 전 주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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