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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캐피털 리셋]③보험·은행 등 '장기 자본' 투자 물꼬 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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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단기→민간·장기 투자'로 바뀌어야
재간접벤처펀드·장기투자세액공제 등 고려해야
RWA 완화 등 장기자금 유입 인센티브도 필요

편집자주"돈은 늘었다. 그런데 모험은 줄었다." 20년간 한국 스타트업·벤처 업계에 성장 마중물을 제공한 '모태펀드'의 역설이다. 수년간 투자 혹한기를 거치며, 정책금융 중심의 모험자본이 단기 실적 관리와 대출식 운영에 치우치게 됐다는 지적도 많다. 아시아경제는 모험자본의 역할과 개선 방향을 진단하고, 스타트업·VC(벤처캐피털)·LP(출자자)가 함께 성장하는 '벤처 육성 생태계'의 조건을 3편에 걸쳐 살펴본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위한 변곡점에 섰다. 불황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험자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책금융 위주의 단기 자금 구조를 탈피하고, 연기금, 금융사 등 장기 자금 운용기관의 참여를 극대화하는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장기자본 성격의 한계…'위험 분산'으로 풀어야

전문가들은 현재 연기금·공제회, 퇴직연금, 보험사와 같은 장기 자금 운용기관이 벤처투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로 자본의 근본적인 성격을 꼽는다. 가입자·피보장자를 대신해 자금을 맡아 운용하는 구조인 만큼, 개별 비상장 벤처펀드에 직접 들어가 높은 변동성을 감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공통된 진단이다. 특히 퇴직연금의 경우, 영미권과 달리 가입 근로자가 사실상 모든 투자 책임을 지는 구조여서 리스크 허용도가 더욱 낮다는 점이 벤처·스타트업 자금 유입의 걸림돌로 꼽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모형 재간접벤처펀드'와 같은 위험 분산형 상품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여러 벤처펀드를 한 번에 묶어 투자하면 개별 펀드와 기업의 실패 리스크를 완화하면서도 모험자본에 일정 비중을 배정할 수 있다는 논리다. 김현열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개별 펀드의 편입 비중을 제한하거나 일정 수 이상의 펀드 편입 요건을 부과해 수익 변동성을 완화한다면, 원리금 보장을 선호하는 퇴직연금이나 보험 자금도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위험 분산형 상품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민간 자본이 기꺼이 '모험'에 나서게 할 실질적인 유인 체계다. 파격적인 세제 혜택은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한 시중 자금을 공격적인 모험자본으로 탈바꿈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10년 이상의 장기 투자 시 투자액 세액 공제는 물론 투자 차익 비과세 등을 제공해 민간이 체감하는 '위험 대비 기대 수익'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논리다.


구본성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래 핵심기술 육성을 위한 재원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확보되려면 민간 자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기투자에 따른 기회비용, 초기 단계 투자성과 창출 제약, 높은 실패 위험에 따른 위험부담 등을 고려한 투자액 세제 지원과 함께 증여·상속세 감면 등 '세대 이전형' 공제 혜택이 추가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통 금융권 자금 막는 규제 문턱 풀어야

보험·은행 등 전통 금융권을 모험자본 공급자로 끌어들이는 작업도 핵심 축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KVCA)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벤처펀드 신규 결성액 중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의 출자 비중은 23.9%로 모태펀드(16.8%)를 상회하지만, 수백조원에 달하는 은행 전체 운용 자산 규모와 비교하면 실제 벤처·스타트업에 투입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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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는 보험사의 장기 부채 구조를 활용해 혁신 분야 장기투자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설계해 왔다. 프랑스·독일·영국은 규제 인센티브 방식으로, 미국·일본은 시장 자율 방식으로 보험사의 장기·비유동 자산에 대한 위험 한도를 점진적으로 넓혀왔다. 국내 금융권 자금도 이처럼 끌어들여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현재 국내 보험업권은 1100조원 규모에 달하는 운용 자산에도 불구하고, 새 지급여력제도(K-ICS)와 새 회계제도(IFRS17) 아래 보수적 운용 기조로 장기 모험자본 공급자로서 역할이 제한돼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해 박지원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출범한 국민성장펀드를 모펀드나 앵커자본으로 활용하고 보험사가 이런 플랫폼을 통해 생산적 자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 및 운용 인프라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단순히 개별 펀드에 출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장 단계별 자금 공급·성장·회수 시장 인프라 등을 묶은 패키지형 지원을 병행하면, 보험사는 투자 대상 발굴과 회수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을 덜고 장기 모험자본에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 역시 건전성 지표인 위험가중치(RWA) 규제가 주식·벤처지분에 대해 완화될 경우, 성장·스케일업 단계의 벤처·스타트업에 대출 및 지분투자를 늘릴 수 있다. 지난해 9월 금융당국이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해 주택담보대출 RWA 하한선을 기존 15%에서 20%로 상향했지만, 기업대출 RWA 가중치는 50~70%로 여전히 주담대 대비 3배 넘게 높은 상황이다. 또 비상장주식 보유 시 RWA를 400%에서 250%로 낮췄으나, 3년 미만 단기 투자와 벤처캐피털 투자는 기존대로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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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 기대감 높여야…단계별 자금공백 해소

민간자본 유입을 위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투자하면 회수된다'는 기대감이 시장에 깔려야 민간 기관이 벤처·스타트업으로 과감히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서는 스타트업이 초기 단계를 넘어 '스케일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강조한다.


우선 자본시장 측면에서는 시드, 시리즈 A 등 초기 라운드 이후 성장 단계에서도 자금 지원이 촘촘히 이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구자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유망한 벤처기업이 시리즈 C~F 등 성장단계에서 자금 공백을 겪으면서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자금을 기술특례상장 등을 이용해 회수 시장(코스닥 등)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기업이 매출이 발생하는 단계로 진입하는 시기를 늦춰 투자자 회수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벤처투자 시장의 민간 유동성 공급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걸림돌로 스타트업과 대기업 등 대형 플레이어에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는 '획일적 규제'를 지목했다. 자본력과 인프라를 갖춘 기존 사업자와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한 초기 기업이 똑같은 규제 문턱을 넘어야 하는 구조에서는 혁신의 동력이 상실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성장 단계와 시장 영향력에 맞춰 규제 강도를 차등화하는 '비례적 규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제도적 뒷받침이 선행돼야만 민간 투자자들이 수익 창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대규모 스케일업 자금을 공급하는 선순환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 위원은 "시장 영향력이 미미한 초기에는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혁신 동력을 부여하고 매출이나 고용 규모 등 기업 성장에 발맞춰 규제를 단계적으로 보강하는 구조적 개편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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