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질유' 일단 손에 넣었지만
기존 생산시설 절망적 수준
美 평판 훼손 '지정학적 도박'

[뷰포인트]베네수엘라 석유 재건비용, 트럼프 수렁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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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새벽, 미국은 최정예 특수부대를 동원해 베네수엘라를 침공,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그의 부인을 체포해 미국으로 끌고 갔다. 이 충격적 사태의 배후에는 '돈로 독트린'의 핵심인 미주 대륙의 에너지 패권 장악이 있다.


트럼프의 전략은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멕시코부터 아르헨티나까지의 미주 전체를 워싱턴의 영향권 아래 두는 것이다. 이 지역의 석유 생산량을 모두 합치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40%에 육박한다. 이 거대한 '석유제국'은 강력한 경제적, 지정학적 지렛대를 제공한다. 약 3000억배럴에 달하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면 미국은 유가를 배럴당 50달러 선에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는 공급을 줄여 유가를 끌어올리려는 러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과 같은 국가들에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의 정유 시스템 자체가 베네수엘라산 중질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와 2000년대 사이, 미국 에너지 업계는 저렴한 경질유의 시대가 끝났다는 '피크 경질유' 가설을 신봉했다. 이에 따라 발레로, 셰브론 등 미국의 주요 정유사들은 베네수엘라의 초중질유나 캐나다의 비투멘 같은 이른바 '쓰레기 등급' 오일을 처리하기 위해 설비를 구축했다.


역설적이게도 2010년 셰일 혁명으로 미국 내에서 '저유황경질원유'가 쏟아져 나왔지만, 이 거대한 정유 설비들은 경질유를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 이번 개입은 이 정유사들에 필요한 중질유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더구나 2027년쯤이면 거의 20년간 고속 성장을 해왔던 미국의 셰일오일도 피크에 이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비해 미국의 석유공급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베네수엘라산 중질유가 필요할 수 있다.

과거 미국의 군사적 행동은 항상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리스크에 발목을 잡혀 왔다. 그러나 미주대륙의 에너지 자원을 워싱턴의 안보 우산 아래 통합함으로써, 펜타곤은 더 석유 공급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이 개입은 지역 내 전략적 정리 작업이기도 하다. 마두로를 제거함으로써 인근 가이아나에서 발견된 거대 유전에 대한 위협을 제거해 미국 석유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한다. 베네수엘라 석유의 주요 수혜국이었던 쿠바를 에너지 고립 상태로 몰아넣고, 저가에 기름을 챙기던 중국의 소규모 정유사들에 타격을 줄 것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장벽들이 산적해 있다. 12년 전 하루 250만배럴에 달했던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현재 100만배럴 미만으로 추락했다. 기존 생산 시설과 파이프라인 등 인프라는 절망적일 정도로 취약한 상태이며, 이를 복구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인적 자원도 아주 부족하다. 국영 석유 기업인 PDVSA가 서구 기업들과 일하기 위해서는 조직 전체를 대대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이 권력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마두로를 비호해 온 강력한 군부 세력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미국 석유 기업들이 석유 산업을 장악하기가 쉽지는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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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베네수엘라의 막대한 원유와 전략 광물들이 축복이 될지, 아니면 끝없는 재건 비용의 수렁이 될지는 트럼프 정부가 이후의 상황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텍사스의 정유사들과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이제 국제적으로 미국의 평판을 크게 훼손한 이 지정학적 도박의 결과를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김동기 달러의 힘 저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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