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비용부담 줄일 '배터리 구독'
소유·책임 명확화할 제도 혁신 시급
박태성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정부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을 가속하기 위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하고 전기차 보급 확대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전기차 확산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높은 초기 구매 가격이다. 재정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무한정 확대하기도 어렵다. 이제 보조금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제도 혁신을 통해 구조적 해법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그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전기차 배터리 구독 서비스이며, 그 출발점이 바로 배터리 소유권 분리 등록이다. 이는 차량은 소비자가 소유하되, 배터리는 제조사나 전문 사업자가 별도로 소유·관리하거나 구독·임대 형태로 제공하는 구조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배터리를 차체와 동일한 소유물로 묶어 온 기존 자동차 관리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환이 필요한 이유는 배터리의 경제적 성격이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과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배터리는 차량 제조 원가의 약 40%를 차지하는 고가 자산이다. 차량 수명이 종료된 이후에도 70~80% 수준의 잔존 성능을 유지한다. 사용 이후에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재사용·재활용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리튬·니켈 등 핵심 광물을 회수할 수 있는 독립적인 경제재다.
그럼에도 현행 자동차관리 체계는 배터리를 엔진이나 변속기처럼 차량에 종속된 부품으로만 취급하고 있다. 배터리 식별번호 등록제는 시행 중이지만, 이는 안전 관리를 위한 이력 관리에 불과할 뿐 소유권 분리를 전제로 한 제도는 아니다. 이러한 낡은 규제가 배터리를 활용한 금융 상품, 구독 서비스, 데이터 기반 혁신 비즈니스의 등장을 가로막고 있다.
해외 사례는 명확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중국은 배터리를 '차량 부품'이 아닌 '관리 대상 자산'으로 인식하고 배터리 교환형 전기차를 제도적으로 안착시켰다.
나아가 배터리 구독, 상태 진단, 데이터 기반 관리 등 다양한 배터리 서비스(BaaS) 모델을 정책 틀 안에서 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보험 적용, 잔존가치 평가, 배터리 추적 관리 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며 배터리 서비스 생태계와 시장을 키워왔다. 이는 배터리 소유권 분리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선택의 문제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동차관리법, 순환 경제 정책, 보험·금융 제도가 분절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배터리 소유권을 분리하려 하면 사고 책임, 성능 저하 관리, 자동차 금융 구조 재설계, 전기차 보조금 조정 등 다부처에 걸친 과제가 동시에 발생한다. 이를 총괄할 컨트롤타워와 명확한 로드맵이 부재한 탓에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 혁신 성장과 순환 경제 전환을 위한 결단이 필요하다.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통해 배터리 소유권의 분리 등록과 양도·담보 설정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에 맞춰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
BaaS에 특화된 금융·보험 상품 설계, 배터리 수명·안전(SOH)·주행 데이터의 합리적 공유를 위한 이력 관리 체계 구축도 병행돼야 한다. 더 나아가 전기차 배터리 자산을 활용한 분산형 전원과 V2G(Vehicle-to-Grid) 연계 활성화 역시 중요한 과제다.
전기차 배터리 소유권 분리는 더 이상 실험적 아이디어가 아니다.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업계, 배터리 제조사, 스타트업 모두가 한목소리로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시급한 정책 과제다. 정부와 국회가 제도 혁신에 속도를 낸다면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제조 경쟁력은 금융·에너지·모빌리티 서비스 영역으로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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