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업 이익 위해 K콘텐츠 생태계 고사"
신문협회도 "명백한 무임승차" 비판
입법 전쟁의 뇌관 된 'AI 액션플랜'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가 꺼내든 '저작권 면책' 카드가 거센 역풍을 맞았다. AI 모델이 저작물을 허가 없이 학습하도록 길을 터주겠다는 정부의 'AI 행동계획(액션플랜)'에 방송·음악·웹툰 등 국내 문화 콘텐츠계를 대표하는 단체 열여섯 곳이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방송협회 등 창작자 단체들은 13일 공동 성명을 내고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의 'AI 액션플랜'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시도"라며 즉각적인 재검토를 촉구했다.
갈등의 도화선은 지난달 15일 위원회가 발표한 정책 권고안이다. 위원회는 AI 기업이 저작권 소송 리스크 없이 데이터를 활용하도록, 올 2분기까지 저작권법과 AI기본법을 개정해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기업이 저작물을 '선(先) 사용'하도록 길을 터주고, 이에 따른 법적 책임에는 '면죄부'를 쥐여주겠다는 것이다.
창작자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를 "AI 개발사라는 사기업의 영리 활동을 위해 개인의 사유재산권인 저작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기존 '공정 이용 가이드라인'조차 창작자 보호에 미흡한 상황에서, 아예 법으로 면책 규정을 신설하겠다는 것은 AI 기업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명백한 편향 정책"이라고 성토했다. 이어 "대한민국 문화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정부가 스스로 포기하는 자충수"라고 강조했다.
비판의 화살은 정부의 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으로도 향했다. 창작자들은 "AI 학습에도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수적이며 데이터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데, 우리 정부만 이에 역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AI 규제와 창작자 보호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혁신을 명분으로 '속도전'에만 매몰돼 있다는 지적이다.
반발의 불길은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넘어 언론계로도 옮겨붙었다. 한국신문협회 역시 최근 의견서를 통해 "사전 허가 없는 AI 학습 데이터 활용은 명백한 권리 침해"라고 못 박았다. 뉴스는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투입된 지식의 산물인데, 이를 AI 기업이 헐값이나 공짜로 가져가 가공하는 '무임승차'를 법으로 정당화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이번 성명에는 한국방송협회를 필두로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등 대중문화의 뿌리를 지탱하는 핵심 단체 열여섯 곳이 총집결했다. 이들은 정부가 '정당한 보상'을 원칙으로 정책 방향을 수정할 때까지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혁신을 앞세운 정부와 생존권을 지키려는 창작자들의 정면충돌은 향후 AI 관련 입법 과정에서 최대 뇌관이 될 전망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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