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맥]금융지주, '규모 대형화'를 넘어 '밸류업'으로 가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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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우리금융지주 출범을 시작으로 한국에 금융지주회사 제도가 도입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그간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은행, 증권, 보험을 아우르는 '종합금융 백화점'을 구축하며 외형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여의도 금융가에는 늘 불안감이 감돈다.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주식시장에서는 만년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시달리고, 사회적으로는 '이자 장사'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었던 계열화와 대형화가 미래의 생존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제 금융지주회사는 단순한 '결합'을 넘어 진정한 '화학적 결합(Value-up)'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 금융지주사가 직면한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천수답식 이자수익 의존도에서 탈피해 포트폴리오의 질적 전환을 이뤄야 한다. 그동안 금융지주들은 비은행 부문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은행의 예대마진이 그룹 이익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금리 하락기나 경기변동 시 그룹 전체의 리스크로 직결된다. 단순히 증권사나 보험사를 자회사로 두는 물리적 결합을 넘어, 자산운용, 프라이빗 뱅킹(PB), 투자은행(IB) 등 비이자 부문에서 확실한 '캐시카우'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핵심 또한 이러한 수익 구조 다변화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에 있다.

둘째, '금융사'가 아닌 '테크 기업'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다. 과거의 디지털 전환(DX)이 오프라인 업무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인공지능(AI)이 금융의 본질을 바꾸는 'AX(AI Transformation)'의 시대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금융업의 경계를 허물며 침투하는 상황에서, 금융지주사는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해 초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고객은 더 이상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금융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AI를 리스크 관리와 여신 심사뿐만 아니라, 고객 경험을 혁신하는 엔진으로 삼지 못한다면 금융지주는 단순한 자금조달 창구로 전락할 수 있다.


셋째, 'K금융'의 영토 확장, 글로벌 현지화 전략의 고도화다.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미래 성장동력은 해외에 있다. 과거처럼 지점 몇 개를 내는 보여주기식 진출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강점인 디지털 플랫폼과 핀테크(금융+기술)를 이식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일부 금융그룹이 동남아시아 현지 핀테크 기업 지분을 인수하거나, IT를 접목한 할부금융으로 현지 시장을 공략하는 사례는 좋은 본보기다. 금융지주의 자본력과 국내 핀테크의 기술력을 결합한 동반 진출은 한국 금융산업의 새로운 수출모델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신뢰 자본'의 회복을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의 문화화다. 최근 발생한 대규모 횡령 사고나 불완전 판매 이슈는 금융지주사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외형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지주회사의 존재 이유는 자회사들의 방파벽(Firewall) 역할을 통해 리스크 전이를 막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데 있다. 내부통제는 규제 준수를 위한 비용이 아니라, 고객 신뢰라는 무형자산의 핵심 토대임을 명심해야 한다. 금융소비자 보호가 담보되지 않은 수익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미국 JP모건이 여러 금융 서비스를 지주회사로 통합해 시너지를 낸 것처럼, 한국의 금융지주회사들도 이제 '양적 팽창'의 시대를 끝내고 '질적 도약'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혁신적인 포트폴리오, AI 기반의 플랫폼 경쟁력, 그리고 단단한 신뢰를 바탕으로 '밸류업'에 성공할 때, 우리 금융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제값을 인정받는 진정한 리더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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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만호 EY한영회계법인 경영자문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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