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비 실습부터 구매까지…'국산 의료기기' 진가 알린다
'국산의료기기 교육훈련지원센터' 가보니
국내 의료기기 양 ·질 성장에도
외국산 장악 현장 진입 쉽지 않아
국산 의료기기 사용해본 '키닥터'가 소개
의료진 이해도·신뢰도 높아져
4개센터 작년 454개 프로그램
교육받은 의료진 4900명 달해
"여기 5번, 6번 파셋(척추관절) 보이시죠? 니들(바늘)은 이 방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 이제 다음 선생님이 한번 해보세요."
지난달 29일 경기도 성남시 '광역형 국산의료기기 교육훈련지원센터'에서 열린 의료진 대상 초음파 영상진단기기 교육훈련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방인걸 연세엘재활의학과의원 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허영한 기자
지난달 29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광역형 국산의료기기 교육훈련지원센터'. 주말 늦은 저녁인데도 인근 수원·광교·수지·동백 등에서 모인 정형외과·신경외과·재활의학과 개원의 20여명이 방인걸 원장(연세엘재활의학과의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며 연신 메모와 동영상 촬영을 반복했다. 허리에서 등, 목까지 이어지는 부위에 통증이 있는 환자의 상태를 초음파기기를 이용해 확인하고 주사로 약물을 주입하는 '척추후관절 초음파유도하 주사치료'에 대한 이론 강의와 실습이 이어졌다.
이날 교육에 사용한 초음파 영상진단기기는 알피니언의 'X-CUBE 90'. 근육·인대·신경·혈관 등 피부 아래 조직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구현하고, 인공지능(AI)을 적용해 사용자 편의성을 높인 국산 의료기기로, 동급 외국산 제품 대비 가격경쟁력도 갖췄다. 이날 강의에 참석한 한 40대 개원의는 "다양한 환자 케이스와 최신 술기를 선배 의사에게 배우고 장비까지 직접 사용해 볼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고 말했다.
올해 이곳 성남 센터에서만 85건의 국산 의료기기 교육 프로그램이 열렸고, 교육을 받은 의료진은 약 1800명에 달한다. 센터를 운영하는 성남산업진흥원 관계자는 "기업이 직접 의료기기를 홍보할 수도 있지만, 이미 해당 의료기기를 많이 사용해본 '키닥터(Key Doctor)'가 시술 과정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소개하면 의료진의 이해도와 신뢰도가 훨씬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12일 보건복지부와 관계 부처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AI와 로봇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의료기기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공개된 '범부처 첨단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2기)' 계획에 따라 오는 2032년까지 국고 8383억원과 민자 1025억원 등 총 9408억원이 투입된다. 세계 최초 또는 최고 수준의 '게임체인저급' 의료기기 6개 개발과 필수 의료기기 13개 국산화를 목표로, 기초·원천 연구부터 제품화·임상·인허가까지 의료기기 연구개발(R&D) 전 주기를 지원할 방침이다. 외국 기업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국내 시장 구조를 전환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 투자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은 2018년 6조8200억원에서 지난해 10조54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코로나19 시기 체외진단 의료기기의 생산과 수출에 힘입어 시장이 급성장한 후 다소 정체 상태이긴 하지만, 지난 6년간 연평균 7.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양적·질적 성장을 지속했다는 게 관련 업계의 평가다.
하지만 국산 의료기기 산업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정작 병원 현장에서의 활용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의료기기의 특성상 한번 도입된 장비가 이후 시장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어 오래전부터 외국산이 장악한 시장에 국산 제품이 새로 진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상급종합병원 등 핵심 의료기관에서 고위험 의료기기나 고가·대형 장비의 국산 사용률은 사실상 전무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의 국산 의료장비 사용 비중은 2018년 9.7%에서 2024년 13.1%로 늘었지만 여전히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의 의료기기가 이미 표준처럼 자리 잡은 시장에서 병원들은 계속 익숙한 제품을 쓰려는 관성이 강하다"며 "국산 기술력이 검증될 접점 자체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20년부터 '국산의료기기 교육훈련 지원센터'를 운영하며 의료진이 국산 장비를 직접 체험하고 실제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아주대학교병원과 연세의료원에 병원형 센터 2곳, 성남산업진흥원과 인천테크노파크에 광역형 센터 2곳이 있다.
병원형 센터는 대학병원 등 인지도가 높은 의료기관 내에 설치돼 실제 임상 환경과 유사한 공간에서 국산 의료기기 데모 장비·로봇수술기 등을 활용한 교육을 진행한다. 의료진의 사용 경험을 넓히고, 임상 피드백을 통해 제품 개선과 구매 결정까지 연결되도록 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광역형 센터는 지역 접근성이 좋은 곳에 글로벌 수준의 트레이닝 인프라를 구축해 개원의·학회 연수생·해외 의료진 등 다양한 대상에게 국산 의료기기를 기반으로 한 실습과 교육을 제공한다. 실제 기기를 조작하는 '핸즈온 교육'과 시신(카데바)을 활용한 해부·시술 훈련 등 고급 실습 과정을 통해 의료진의 숙련도를 높이고, 국내외 학회와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국산 의료기기의 글로벌 인지도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난해에만 이들 4개 센터에서 운영된 교육 프로그램은 총 454회, 참여 의료진은 4900여명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외 10개 의료기관에 인공관절로봇과 수술로봇 등 60대 이상의 국산 의료기기를 납품하는 성과도 나왔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삼전·하닉 어쩌지?" 터보퀀트보다 더 '큰 게' 온...
황성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의료기기화장품산업단장은 "국산 의료기기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실제 의료진의 사용 경험, 신뢰도, 임상적 친숙도와 같은 '마지막 단추'를 채우는 과정이 여전히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의료 현장과 산업계를 잇는 교육·훈련 생태계를 강화해 국산 의료기기의 국내 안착과 글로벌 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