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비판·서반구 강조
아프리카 무관심…北 언급 전혀 없어
"19세기식 세력권 나누기"

안드레아스 클루스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블룸버그

안드레아스 클루스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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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아주 조용히 새 국가안보전략(NSS)을 공개했다. 보통은 대통령의 연설과 함께 발표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NSS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이미 미국 전투기가 자주 날아다니는 라틴아메리카는, 옛 '먼로주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 덧붙인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 때문에 이제 공식적으로 미국의 경고 대상이 됐다는 소식을 들어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유럽은 이 문서를 보고 불쾌할 것이다. 또 중국은 특별히 새로 알게 된 건 없지만, 미국이 여전히 대만을 어느 정도 지지한다는 사실을 느낄 것이다.

중동 지역의 중요성은 예전보다 줄었다. 아프리카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리고 북한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이밖에 반(反)워크(woke·진보적 가치를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비판적 용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내용이 많다.


NSS는 법적 문서다. 보통 한 행정부의 외교·안보 등 지정학 관련 정책의 핵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NSS는 국방전략(NDS) 등 예산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문서에 영향을 준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작성했던 NSS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미국 외교의 중심을 '테러와의 전쟁'에서 '러시아·중국과의 경쟁'으로 바꿔야 한다고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당시 NSS를 제대로 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의 발표 연설이 문서 내용과 거의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2기 NSS는 1기 때와는 다르다. 문서가 간결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와 집중력에 맞춰 작성된 것처럼 보인다. 일부 문장은 짜임새가 좋고, 냉전 이후 미국 외교 정책 엘리트들이 되풀이해온 문구들을 통찰력 있게 비판했다.


이번 NSS는 지난 30년간의 이전 문서가 "희망 사항을 적은 것일 뿐"이라며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다. 대신 애매한 표현만 반복했다"고 지적한다. 또 "일반 국민들이 미국의 이익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세계 문제에 대한 부담을 떠안자는 식의 외교는 잘못됐다"라고도 한다. 이는 미국이 세계를 주도한다는 기존의 국제주의 외교에 반대하는 마가(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의 생각을 반영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NSS를 쓴 사람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방식이 가진 수많은 모순을 최대한 피해 가려고 애쓴 흔적도 보인다. NSS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이 실용적이지만 그가 실용주의자라고 말하긴 어렵고, 현실적이지만 현실주의자라고 할 수 없고, 원칙이 있지만 이상주의는 아니고, 강경한 입장이지만 매파는 아니며, 때론 절제하지만 비둘기파도 아니라고 기술한다. 쉽게 말해, 내일 트럼프 대통령이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하는 말이 곧 미국의 전략이고, 그것이 오늘 트루스소셜에서 한 말과 모순되더라도 그게 전략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표현들 속에서도 몇 가지 중요한 변화가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러시아에 호의적인 사람은 2차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중에서는 거의 없었다. 또 이번 문서에서 우크라이나는 잠깐 언급되는데,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사소한 문제로 여긴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중국은 이번 NSS의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트럼프 행정부에는 중국 강경파가 꽤 많고, 그들은 유럽·중동에 치우친 미국의 힘을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옮기자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관심은 서반구로 좁혀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서반구를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미국은 최근 3개월간 베네수엘라 주변 해역에 대규모 군사력을 보내고, 캐나다부터 브라질까지 서반구 이웃 국가들을 위협했다. 이 같은 상황을 놓고 보면 이번 NSS에서의 방향 전환은 그리 놀랍지 않다.


특히 유럽을 향한 표현이 거칠었다. 이는 JD 밴스 부통령이 올해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 했던 연설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NSS는 유럽을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민 문제 때문에 문명이 사라질 위기에 있는 곳으로 묘사했다. 또 유럽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 반대파를 탄압한다고도 적었는데, 이는 극우 독일대안당(AfD) 같은 세력을 지지하는 밴스 부통령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NSS는 "유럽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20년 안에 유럽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불길한 문장도 붙어 있다.


나머지는 예상했던 내용이다. 국제기구나 다자기구를 무시하고 비난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탈퇴하거나 거부한 곳들이다. 그러면서 19세기식 세력권(Spheres of influence) 체제, 즉 강대국끼리 서로 영향력을 나누는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NSS는 "큰 나라, 부유한 나라가 국제 관계에서 더 큰 힘을 갖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사실"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러가 서로 영역을 나누는 새로운 얄타 회담 같은 것을 원한다고 볼 수 있다.


또 중동 국가들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이다. 이들에 대해 "이제 그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을 버리라고 강요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이 지역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가깝거나 사업관계가 있는 국가들이다.


나는 조 바이든 전 행정부에서 NSS 초안을 만들었던 레베카 리스너에게 이번 NSS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형식적으로 체크만 해놓은 수준에 불과하며, 정책이라기보다 논쟁용 글에 가깝다"고 답했다. 실제로 NSS에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반대가 국가안보 우선 과제로 들어간 것은 아마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리스너는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충동적이고 예측하기 어렵다"며 NSS가 실제 정책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그럼에도 이번 NSS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 베이징, 모스크바, 브뤼셀, 베를린, 카라카스, 리야드, 그리고 심지어 문서에 단 한 번도 안 나온 평양에서도 말이다. NSS는 '우리는 이념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마가'식으로 세계를 해석한다. 그리고 대통령의 즉흥적인 말과 행동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일관성을 부여해야 하는 정부의 모습을 그린다.


안드레아스 클루스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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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The US Quietly Made a New National Security Plan Out of Whims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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