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완화정책에 유동성 과잉
과열된 금융시장 실물경제와 괴리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새로운 통제

[블룸버그 칼럼]당신의 ETF가 자본주의를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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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본주의는 여러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으나 유동성 부족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오히려 막대한 자금이 시장에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으며 이는 경제 전반의 금융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과속방지턱 정도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 코로나19는 금융시장을 한동안 위축시켰지만 이 역시 과거의 일이 됐다.


돈이 어디선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결국 어딘가에 자리 잡기 마련이다. 중앙은행들이 완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유동성은 세계 증시를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투자자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이는 미국의 거대한 인공지능(AI) 기업들에 거품처럼 보이는 과열을 일으켰다. 늘어난 단기 자금은 미국을 넘어 유럽·일본·신흥국 증시 등 다른 시장까지 끌어올렸다.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의 수치는 압도적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3년마다 실시하는 외환·금리파생상품 거래 관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금리파생상품 거래 규모는 일평균 7조9000억달러에 달한다. BIS가 처음 조사에 착수한 해인 1998년에는 2650억달러에 불과했다. 외환시장 거래 규모는 일평균 9조6000억달러로 독일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약 2배에 달한다.


얼핏 금융시장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다. 비판론자들은 세계 경제의 금융화가 판단 기능을 압도한다고 주장한다. 효율적인 자본 배분이 파도를 타는 것이 아니라 넘치는 유동성 속에서 오히려 익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규제 완화적이고 활황세인 금융시장이 많은 이들이 힘겹다고 느끼는 실물 경제와 공존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컬럼비아대 경제학자 아마르 바이드 교수도 그의 저서 '판단의 필요성'에서 유동적인 시장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자유시장경제의 대부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통념과 다르게 오늘날 시장이 취하고 있는 형태에 전적으로 반대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이에크는 중앙집권적 계획에 강하게 반대하며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필요한 국지적 정보(local information)를 포착하는 데 시장이 훨씬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시장은 지식을 종합해 최선의 결과에 도달하는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이라는 게 그의 논지였다.


바이드 교수는 금융화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모기지 같은 기초 금융계약을 다른 계약들과 묶어 표준화한 뒤 금융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행위는 공산주의 계획가가 내렸을 법한 판단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조잡하고 자의적인 기준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중앙집중적 통제가 자리 잡았다. 이는 더 이상 구식의 독재자나 위원회, 규정집이 만들어내는 통제가 아닌, 통계 모델과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통제"라고 지적했다.


그의 주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산업화된 공정으로 인해 금융권 종사자들 사이에서 개인 재량은 설 자리를 잃었다. 개인과 기관이 상호 신뢰를 쌓던, 즉 JP 모건 등이 부를 구축하던 자유방임 시대의 근간이었던 관계에서 오는 신뢰 역시 배제됐다.


이런 평가는 지난 두 세대 동안 서방식 자본주의가 금융화라는 이름으로 확산해 온 방식과 거의 정반대에 가깝다. 금융공학은 주택담보대출에서 인프라 프로젝트, 재보험 계약, 각종 원자재(식료품)에 이르기까지 과거에는 유동성이 거의 없던 수많은 자산을 빠르게 거래되는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금융상품으로 바꿔놓았다.


금융화 흐름은 1980년대에 본격화됐다. 이는 살로몬 브라더스가 주도한 주택담보대출 증권화 열풍은 마이클 루이스의 1989년 저서 '거짓말쟁이의 포커'에 생생히 기록돼 있다. 금융위기 전 수년간 원자재, 중소기업 부채(정크본드), 신흥국의 채권과 주식까지 모두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을 형성했고 이후 이들 자산은 한꺼번에 급락했다.


그러나 진정 놀라운 것은 위기 이후 유동성이 더 늘었다는 점이다. 금융화는 이후에도 꾸준히 속도를 내며 본래부터 유동성이 풍부했던 주식시장 같은 자산에 자본을 더욱 쉽게 쏟아붓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상장지수펀드(ETF)가 등장한 지는 3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 최초의 ETF는 1993년에 출시됐다. 금융위기 시점인 2008년 말 미국 기반 ETF의 자산 규모는 5380억달러였으나 현재 이 규모는 7배 넘게 늘어 9조달러를 넘어선다. 같은 기간 월가 주식시장의 상승폭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한때 투자자 업무를 단순화하고 시장 흐름을 파악하도록 설계됐던 지수는 상장 주식과 채권 종목 수보다 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S&P 다우존스 지수회사는 매일 약 40만개 지수를 계산하며, 신흥국 투자 분야를 주도하는 MSCI는 약 30만개, FTSE 러셀은 5만개 이상 지수를 산출하고 있다.


ETF는 개별 종목에 대한 판단 없이도 투자자들이 시장에 노출될 수 있게 해 주는 패시브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자본주의에 필수적인 '판단 기능'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오래전부터 받아왔다. 샌퍼드 C. 번스타인의 이니고 프레이저 젠킨스는 한 보고서에서 패시브 투자를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나쁘다"고 표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ETF는 개별 기업과의 연계가 약해진 하향식 투자 방식을 부추긴다.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에서는 수많은 ETF가 다양한 전략으로 거래되는데 이들의 매매가 기초자산인 개별 기업의 주가 움직임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 금융 규제 완화 의지를 보이면서 과도한 유동성을 억제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이제는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마이클 루이스는 그의 저서인 '플래시 보이즈'에서 "유동성은 월가 사람들끼리 대화를 끝내고 싶을 때, 생각을 멈추게 하고 모든 의문 제기를 차단하기 위해 던지는 말 중 하나였다"고 질타한 바 있다. 이제는 늦었을지 모르지만, 그에 대한 문제 제기는 시작됐다.


존 아서스 블룸버그 선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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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Your ETF Is Ruining Capitalism을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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