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도 원하지 않는 '전면 금지'의 역설
혁신 지우는 대신 '안전한 구조' 설계해야
얼마 전 민주노총이 쿠팡을 비롯한 주요 유통사의 새벽배송 금지를 촉구하며 대규모 행동에 나섰다. 사회적 대화가 이어졌지만, 아직까지도 새벽배송 시스템을 전면 수정하라는 민주노총과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플랫폼 간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모습이다.
민주노총은 새벽배송을 단순한 착취의 수단으로 보지만, 실제로 새벽배송의 역할은 훨씬 더 복합적이다. 플랫폼 기업과 기술 발전이 결합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자·배송 기사·소상공인 모두에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밤에 주문을 받아 새벽에 배송하자는 아이디어 자체는 있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주문을 재고와 맞추고, 새벽 배송 경로와 기사 배치까지 최적화하기에는 정보처리 비용이 너무 컸다. 그래서 타산이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모델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과거 구매 이력 등의 데이터를 AI가 학습해 '내일 새벽에 어떤 제품이 어느 정도 팔릴지'를 빠르게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별 물류센터에 상품을 미리 비축하며 인력과 차량을 사전에 배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즉, 플랫폼 기업의 성장과 IT 기술의 적극적 활용이 배송 산업을 폭발적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하루 150만 건에 이르는 새벽배송 물량은 IT 기업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촉발한 물류 혁신이 우리 일상과 지역 경제를 어떻게 재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익이 급한 사람들이 새벽 시간대에 추가로 일할 기회를 얻었고, 경기 침체로 생계 기반이 약해진 중장년층에게는 새벽 노동이 일종의 최후의 일자리, 즉 안전망이 돼주고 있다.
소상공인에게는 새로운 플랫폼 판로를 제공해 보다 높은 수익을 창출하도록 돕는다. 이전에는 전화 주문으로만 가능했던 노지 감귤이나 소규모 농가의 신선란 등이 시장의 참여자로 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비자에게는 더 빠르고 편리한 서비스라는 후생을, 노동자에게는 새로운 일자리와 소득 기회를, 소상공인에게는 디지털 판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는 사회 전반에 이익을 가져온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쿠팡 배송 기사들 역시 새벽배송 전면 금지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주장과는 달리, 실제로 쿠팡 배송 기사 가운데 상당수가 새벽배송 유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간 근무가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급여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근무를 제한하면 곧바로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새벽배송을 일괄적으로 막는 방식은 노동자와 자영업자, 서민 가계를 동시에 압박하는 조치로서 민생경제에 즉각적인 타격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가 새벽배송을 쓰지 못하게 된다고 해서 편리성 추구를 포기하고 일반배송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을 오해하는 것이다. 이미 글로벌 플랫폼, 특히 중국계 플랫폼들이 우후죽순 들어오며 국내 곳곳에 물류센터를 세우고 있는 상황이라면, 수요는 결국 더 편리하고 가격 경쟁력이 높은 쪽으로 이동할 것이 자명하다.
'속도보다 생명'이라는 민주노총의 기조에는 동의하지만, 그 해법이 극단적인 전면 금지와 산업 자체의 파괴여서는 안 된다. 미국, 싱가포르, 유럽 어디에서도 새벽배송 자체를 전면 금지해 산업을 없애버리는 식의 규제는 없다. 대신 근로자 보호를 정교하게 규정하는 방향에 가깝다.
한국도 금지가 아니라 근로시간 상한 설정, 보상 체계 논의 및 재편 등 더 정교한 안전장치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IT 발전이 가져온 혁신의 열매를 잘라내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공정하게 나눌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가 시장과 소비자 주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번 새벽배송 금지 논의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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