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하락하던 PC 가격 폭등
한국 대표 상품 D램 가격 상승도 일조
가격폭등 덕에 중국 D램 본격세계 시장진출
1981년 1월 삼보컴퓨터가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PC(개인용 컴퓨터)를 내놓았다. SE-8001이란 이름표를 단 이 제품 가격은 약 1000만원. 1980년 대졸 초임이 처음으로 월 20만원을 돌파했다(경총 자료). 말하자면 SE-8001은 웬만한 기업 신입사원 연봉 4년치에 달하는 고가품이었다. 개인용 컴퓨터라지만 사실 이 제품 주고객은 기업이었다. 회계처리 등 업무 효율화를 위해 사무실에 SE-8001을 집어넣었다.
가정용 혹은 개인용 컴퓨터란 말에 어울리는 제품이 한국 시장에 등장한 시점은 1983년. 삼성전자 'SPC-1000'이 그 주인공이다. 가격은 49만 5000원. 여전히 사회초년생 월급의 2배가 넘는 고가품이었지만 그래도 큰맘을 먹으면 살만한 수준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현재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성능은 SPC-1000보다 수십만배 좋다. SPC-1000이 1시간 걸려 계산한 것을 0.1초면 가뿐하게 푼다.
수십년간 컴퓨터 성능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지만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한 실질 가격은 계속 내려갔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때 쓴 단어가 바로 무어의 법칙이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는 1965년 같은 컴퓨터의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씩 올라간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반도체의 성능은 올라가지만 가격은 전과 같거나 오히려 떨어질 것으로 봤다. 실제로 수십년간 반도체의 집합체인 PC 성능은 끝을 모르고 올랐지만 물가상승률을 생각하면 가격은 계속 내려갔다. 무어의 법칙은 IT 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꾼다는 자신감을 담은 경험칙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무어의 법칙은 죽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오늘이 제일 싸다"란 말이 있다. 보통 부동산업자들이 아파트를 팔 때 하는 말이다. 그러나 요즘 PC 조립판매업자들이 이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실제로 자고 일어나면 PC 가격이 오르고 있다. 한 IT기업 대표는 "회사 PC 구입 단가가 1~2년 사이에 2배 올랐다"고 했다.
PC 가격 상승을 비트코인 열풍과 엮어 설명하기도 한다. 컴퓨터 부품 가운데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이 바로 그래픽 처리 장치다. 엔비디아의 GPU가 바로 대표적인 그래픽 처리장치다. 2010년 엔비디아 젠슨 황 대표와 인터뷰했을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계산 능력이 높은 반도체는 인텔이 만드는 CPU가 아니라 엔비디아의 GPU"라고 말했다. 그래픽 카드와 CPU의 역할이 전혀 다르던 시절이었다. 왜 CPU를 경쟁상대로 보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말한 대로 인텔이 만든 CPU가 독점했던 일을 엔비디아 GPU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먼저 코인을 채굴하는 컴퓨터의 CPU 역할을 GPU가 가로챘다. CPU와 GPU의 대결이 실제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코인 광풍이 불자 GPU 가격이 우상향 곡선을 탔다. 2020년에 나온 GPU(RTX3080) 국내 출시 가격은 90만원대였지만 어느 순간 270만원선까지 폭등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구형제품 가격은 떨어진다는 상식이 무너진 것이다. 이후 AI 서버에 인텔 CPU를 밀어내고 엔비디아 GPU가 대량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자 GPU 가격이 말 그대로 폭등했다. 예를 들어 2014년 출시한 대표적인 고급 GPU(NVIDIA GeForce GTX 980) 가격은 550달러였지만 2024년 내놓은 비슷한 위치의 제품(NVIDIA GeForce RTX 4090) 가격은 1600달러다. 자연스럽게 컴퓨터 가격이 급등했고, 엔비디아 영업이익률은 올해 62.4%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최근엔 컴퓨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까지 급등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1~2위를 다투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은 종류별로 연초보다 2~5배나 올랐다. 반도체 분야 애널리스트들은 AI발 반도체 수요 폭증으로 이런 현상이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봤다. 하이닉스는 내년 엔비디아와 맞먹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견인차다. 당연히 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협할 수도 있다. 요즘 조립 PC 업체들이 파는 물건에는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대신 우리가 잘 모르는 G.SKILL이나 에센코어 같은 브랜드를 단 제품이 주로 들어간다. 올해 초라면 삼성, 하이닉스가 아니라면 고개를 저었을 소비자들도 별말이 없다. 국산은 품절이거나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올 1분기까지만 해도 6%대였던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CXMT 세계 시장 점유율이 3분기에는 10%를 넘었다고 한다. D램 공급부족, 가격폭등은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에게 더없이 큰 기회다. 삼성전자, 하이닉스와 피 터지는 싸움을 하지 않고 고통 없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백강녕 IT스페셜리스트 young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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