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업 믿고 일 시작했는데…남은 건 빚과 자괴감
"죄송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지난 8월17일 김다은씨(49·여)는 누군지 정확히 모르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는 '출금 담당자'에게 싹싹 빌었다. 김씨가 출금 담당자에게 1163만1200원을 입금하고 벌어진 일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출금 담당자는 거액을 입금한 김씨에게 오히려 역정을 냈다. 김씨는 연신 "죄송하다"를 반복하며 선처를 바랐다.
"저 더 이상 돈 못 구해요. 이번에는 제대로 할게요. 기회를 좀 주세요."
출금 담당자는 기회랍시고 김씨에게 다시 청구서를 내밀었다. 1875만6300원이었다. 통장 잔고는 240원, 더 이상 돈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손이 너무 떨렸다. 급한 대로 공황장애 약을 찾아 입에 털어 넣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구석에 몰렸을까. 김씨는 사흘 전 일을 떠올렸다.
5억 사기·큰 부상에 흔들린 생계…그때 눈에 띈 '손 부업'
지난 8월14일 김씨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자택에서 쉬고 있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김씨는 의류 판매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지인에게 5억원 사기를 당하면서 하던 일을 접게 됐다. 불행은 겹친다고, 김씨는 올 7월 운동을 하다가 무릎이 골절됐다. 5억원을 날려 먹고 집에 누워만 있으니 남편의 눈치가 보였다.
그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서 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일명 '손 부업'이었다. 집에서 조립, 포장 등 간단한 수작업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손재주에는 자신 있었던 김씨는 용돈 정도 벌고자 메신저 라인(Line)을 통해 연락했다.
"안녕하세요. 나이를 말씀해주시면 부업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OO수공예'라는 계정이 친절하게 두 가지 부업을 소개했다. 하나는 수공예 제작, 다른 하나는 홍보 부업이었다. 수공예 부업은 인형 포장 업무로 단가는 개당 1000원이었다. 제품은 집으로 배송 오고, 포장을 다 하면 수거해가는 방식이었다. 이어 홍보 부업도 물었다. 더 간단했다. SNS에 상품을 홍보하는 게 아닌, 보내주는 영상을 시청하고 스크린샷만 캡처하면 끝이었다.
김씨는 인형 포장과 홍보 부업 모두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OO수공예 계정은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라고 안내했다. '준벡스'(Zunvex)라는 채팅 앱이었다.
김다은씨(49·여)가 연락한 부업 업체는 '준벡스'(Zunvex)라는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부업을 하려면 영상 부업 등 미션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고 했다. 김씨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준벡스에 가입하자 '박OO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담당자는 미션을 통과해야만 인형 포장을 보내준다고 했다. 보내주는 영상을 잘 캡처해서 전송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김씨는 3시간 동안 담당자가 보내준 4개 영상을 캡처해서 보내 1만1000원을 벌었다. 돈도 곧바로 김씨 계좌로 들어왔다.
"VIP를 위한 업무 계획입니다. 매일 15개 업무가 있습니다." 같은날 오후 9시 담당자는 VIP 그룹을 소개했다. 여기서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40분마다 부업이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부업을 할 때마다 1000~2000원 정도 벌었다. 하지만 오후 12시, 3시, 6시 업무는 달랐다. 크게는 몇백만원까지 벌 수 있었다.
담당자는 오후 12시, 3시, 6시 업무를 '고수익 팀 미션'이라고 말했다. 5만~1000만원을 투자할 경우 원금은 100% 환급되며 30~40% 수익까지 붙는다고 설명했다. 업무도 간단하고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김씨는 솔깃해졌다. 30만원까지는 시도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15일 오후 12시 일단 30만원을 먼저 투자해보기로 했다. 30만원을 이체하자 담당자는 김씨에게 미션을 시켰다. 특정 숫자와 초록색 또는 빨간색 버튼을 눌러야 했다. 처음이라 긴장한 탓에 김씨는 아무 버튼이나 눌렀다. 그래도 담당자는 친절하게 알려줬다. "다음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투자금도 30만원에서 39만원으로 불었다.
새로 시작된 미션…죄인으로 몰린 피해자
오후 3시, 김씨는 더 큰 금액을 넣기로 했다. 50만원을 투자하겠다고 하자 담당자는 새로운 단체채팅방으로 초대했다. '50만원 고수익 미션팀'이었다. 미션팀에는 김씨와 담당자 이외 '달콤이', '정미원', '강현' 등 팀원 3명이 더 있었다.
"지금부터 미션을 완료하시면 수익을 얻을 수 있어요."
하지만 무서운 말을 하나 덧붙였다. "미션을 완료하지 않으면 투자금을 돌려드릴 수 없어요. 이해되셨으면 '1'로 답장 주세요."
"1." 모두 1로 답변했다. 팀 미션은 시작됐다.
"홈페이지로 이동, BTC/USDT 클릭, 120초 클릭, 500000 클릭, 상승 클릭, 확인 클릭."
꽤 복잡한 미션을 3번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김씨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미션을 수행했다. 미션을 마치고, 시키는 대로 "완료"라고도 알렸다.
"아? 다 터졌는데요?" 갑자기 팀미션을 함께 한 달콤이와 정미원이 자신의 계좌 속 돈이 사라졌다고 화내기 시작했다.
"다은님이 잘못 구매했어요." 담당자가 김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이상했다. 분명 시키는 대로 클릭했는데 기록에는 제대로 미션을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은님, 고의로 이러시는 건가요?" 정미원이 갑자기 김씨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초보자랑은 미션 안 하면 안 돼요?" 강현도 한마디 보탰다. "다은, 너 진짜 미쳤어?" 달콤이는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무엇보다 담당자의 말이 김씨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한 사람이 잘못해도 모두 손실을 볼 수 있어요."
죄책감에 궁지 몰린 피해자…지인에게까지 손 벌려
김씨는 쏟아지는 팀원의 질책 속에서 "죄송합니다"만 반복했다. 이때 담당자가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50만원의 5배, 즉 250만원을 다시 송금해주면 오류를 수정해줄 수 있다는 것. 김씨와 팀원들은 곧바로 250만원을 정해진 계좌번호로 송금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담당자는 750만원을 추가로 더 보내야 빨리 손실을 만회할 수 있다고 했다. 김씨는 또 큰돈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따졌다. 하지만 담당자는 차갑게 답했다. "이번 진행을 완료하신 후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절차를 밟을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툴툴거리면서도 750만원을 보냈다며 송금 내역을 공유했다. 김씨를 제외한 사람들은 750만원을 보내자 모든 돈을 돌려받았다고 환호했다.
오후 5시30분께 김씨는 지인에게 전화해 1000만원을 빌렸다. 부업 이야기는 하지 않고, 급하게 써야 할 돈이 있어서 빌린다고 말했다. 750만원을 이체해 이제는 그동안 투자한 돈을 돌려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담당자는 또 다른 절차가 있다며 새로운 사람을 불러들였다.
"안녕하세요. 총 환급 신청 금액은 1661만6000원입니다. 대신 시간이 초과해 1163만1200원의 위약금을 내야 합니다." 처음 본 또 다른 담당자는 김씨에게 위약금 명목으로 1000만원이 넘는 돈을 내야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황당했다. 하지만 이미 넣었던 돈을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든 돈을 구해서 오기로 했다.
빠져버린 위약금의 늪…피해액 2000만원 넘게 불어
16일과 17일 김씨는 묶여버린 돈과 팀원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1163만1200원은 남편 몰래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마련했다. 김씨는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이 돈을 입금하면 이전에 투자한 것과 함께 다 돌려받는 것 맞죠? 더 이상 입금하지 않아도 되는 것 맞죠?"
담당자는 추가 비용이 없고 10~30분 내로 돈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위약금을 이체한다고 곧바로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담당자는 메신저 링크를 통해 또 다른 미션을 전달했고 새 미션은 바로 시작됐다.
김씨는 급하게 링크를 눌렀다. 하지만 아무런 창도 열리지 않았다. "출금 담당자님, 답 좀 주세요. 링크가 안 열려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계속 시간만 끌고 있잖아요. 제가 한가한 줄 알아요?" 담당자는 오히려 김씨를 다그쳤다. 그러면서 또 다시 오류를 수정하려면 1875만6300원을 내라고 했다.
김씨는 다시 실수하지 않겠다고 빌었다. 담당자는 선심 쓰듯 30% 감면해 1312만9410원만 내면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제 더 이상 돈이 없다며 지금까지 냈던 돈만이라도 돌려달라고 했다.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담당자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죄송하지만 절차가 완료돼야 투자금 환급이 가능합니다."
남은 건 빚과 자괴감…인형은 오지도 않았다
총 피해 금액 약 2400만원.
돈을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순간이 되자 김씨는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이 허망했다. 지난 9월 초 김씨는 정신을 차리니 아파트 옥상 난간에 서 있었다. 그는 깜짝 놀라 옥상에서 걸어 내려왔다. 이후부터 우울증 약, 공황장애 약, 불면증 약 등을 함께 먹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김씨를 괴롭히는 건 자괴감이었다. 지난 14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만난 김씨는 "8월 이후부터 나 자신을 자책하는 데 시간을 다 보냈다. 어디 가서 사기당한 이야기도 못 한다. 겨우 이런 것에 당한 게 너무 부끄러워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처음 부업을 신청하면서 보내준다던 인형은 받았을까. 김씨는 눈물을 훔치며 답했다. "인형은 오지도 않았어요."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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