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국적 앨런 데 프레터씨
일본 불교 정토종 승적 얻어 화제
범죄자 향한 분노 다스리며 승려 되기로 결심
벨기에 절 이어받아 사람들 위로

종교에는 국적이 없다고 하죠. 이번 주 일본에서는 50대 벨기에인이 득도, 일본 불교 주요 교단인 정토종의 승적을 얻어 화제입니다. 귀국해서는 벨기에 정토종 사찰 주지 스님이 될 예정인데요. 이 스님이 불교에 귀의할 수밖에 없던 가슴 아픈 사연도 더해져 많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일본 정토종 스님이 된 벨기에인, 앨런 데 프레터씨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지난달 일본 교토에 위치한 사찰 니시혼간지에서는 외국인 승려를 대상으로 한 득도식이 열렸습니다. 2년 만에 열린 외국인 승려 득도식이었다고 하는데, 이번에 13명의 외국인 승려가 탄생했다고 하죠. 니시혼간지에서 열린 이유는 이곳이 정토종 사찰을 모두 총괄하는 우두머리 격 사찰이기 때문입니다.

13명의 외국인 승려들도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일본 언론은 51세 앨런씨의 이야기에 특히 귀 기울였습니다. 앨런씨의 고향 벨기에는 전통적으로 가톨릭 신자가 많은 곳입니다. 그리고 아시아권 유학 경험이 있던 것도 아니었죠. 그런 벨기에에서 굳이 일본 정토종을 믿게 된 것이 의아하다는 것이었는데요.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앨런 데 프레터씨. 페이스북.

일본 교토 니시혼간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앨런 데 프레터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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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씨는 우리가 익히 아는 소설 '플랜더스의 개'의 배경이 된 벨기에 앤트워프 출신이라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 등 무술을 배웠었는데, 이와 관련된 책을 읽다보니 자연스레 불교의 개념에 대해 접하게 됐다고 해요. 그렇게 불교라는 종교에 대한 지식만 갖고 있다가, 16살이 되던 해 불교를 진지하게 접하게 됩니다.


그는 당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뒤져가며 마트 번호를 찾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아르바이트를 위해 전화하려던 마트 번호 바로 밑에 앤트워프의 정토종 사찰 자광사의 전화번호가 있었다고 합니다. 불교에 호기심이 생겨 '절이 없나'하고 찾고 있었던 앨런씨는 어머니를 통해 연락해보고, 이후 절에 잠시 다니기 시작했다고 해요.

앤트워프 자광사는 정토종이 1979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연 사찰이라고 합니다. 30년 전이지만 앨런씨는 당시 처음 방문한 절에서 나던 종소리, 향 내음 등은 생생하게 기억한다고 하는데요.


절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누나처럼 따르던 친구와 잡담을 즐겼다고 해요. 당시 앨런씨는 머리를 길러 히피처럼 하고 다녔었는데, 이 친구는 '자기 나름의 생활 방식만 이어나가면 될 뿐이다. (옷차림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사회의 기대에 다 맞출 필요는 없다'고 인정해주었다고 하죠.


그러나 그가 19세가 되던 1993년, 이 단짝은 귀가 중 강도를 만나 살해당합니다. 함께 공부하며 찍은 사진도 절에 그대로 있었고, 추억이 많았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충격으로 절에 가지 못했다고 해요.

경호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당시 앨런씨의 프로필. 구인업체 콘택트아웃.

경호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당시 앨런씨의 프로필. 구인업체 콘택트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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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이후로 앨런씨는 마음 깊이 범죄자들을 미워했다고 합니다. 범죄에 대한 증오가 솟구치는 한편, 그들의 심리가 너무 궁금해졌다고 해요. 그래서 범죄 대책이 잘 마련된 미국에서 범죄자들과 대화하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벨기에에서는 경호원으로 일하면서 미국과 벨기에를 왔다 갔다 하는 나날을 보냈다고 해요. 실제로 아직 구직사이트에 남아있는 그의 이력을 보면 보안 트레이너, 위협 분석가로 전술 훈련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요.


그러면서 점차 죄를 범하게 된 사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친구를 잃은 분노로 시작한 업이었지만, 범죄자에 대한 인식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고 해요. 범죄자가 나쁜 짓을 했지만, 본인의 의사뿐만 아니라 환경 등 여러 요소가 겹쳐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하는데요. '선인조차 왕생해 부처가 될 수 있다면 악인은 말할 것도 없다'라는 정토종 사상가 신란 스님의 가르침과 맞닿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다시 자광사를 찾기 시작했었다는데요.


열심히 절에 다니던 중, 자광사의 일본 측 관계자로부터 승려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라고 권유받습니다. 자광사의 초대 주지스님은 이미 2009년에 세상을 떠났고, 2대 주지스님도 세상을 떠나 사실상 주지스님이 없는 상태였다는데요. 그래서 작년에 벨기에 거주 일본인이 제사를 지내줄 것을 의뢰했는데, 이를 제대로 치러주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어받을 승려가 없어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내가 승려가 되어 절을 지키면 어려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신앙의 터전을 만들 수 있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득도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일본으로 떠났다는데요.


벨기에 자광사 불상의 모습. 자광사.

벨기에 자광사 불상의 모습. 자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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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이 과정을 밟기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난 9월 30일부터 지난달 10일까지 니시혼간지에서 교육받았는데요. 남미, 미국, 캐나다 등 13명의 외국인이 교육을 받았습니다. 자유시간은 일절 주어지지 않으며 종일 가르침을 배우는 데만 시간을 썼다고 해요. 신란 스님의 가르침을 정리한 경전 '정신게'를 모두 일본어로 암기했어야 했는데,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밖이 너무 보고 싶어 화장실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고, 탄산음료 한 잔만 마시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한 적도 있다는데요.


그렇게 앨런씨는 50대 이후의 삶을 승려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벨기에 자광사의 3대 주지스님으로 활동하게 되는데요. 그의 목표는 '가르침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오가는 절을 만들고 싶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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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주목받는 것은 그가 증오를 스스로 다스려 나가며 이를 다른 감정과 이해로 바꿔나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너무 미웠지만, 복수하거나 갚으려 하지 않고 결국 모두를 사랑하는 선택을 한 앨런씨의 모습. 무엇을 믿느냐는 종교의 영역을 넘어 동서양을 모두 감동하게 합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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