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형 다자주의 추구해야…美 고립 변화 가능성 없어"(종합)
'경제 석학' 대니 콰 석좌교수 기조연설
세계 질서 변화로 'G-마이너스' 시대 열려
완화 전략 주목…"주변국 모여 협력해야"
고립 자처한 미국…"영향력 작아질 것"
경제적 사유로도 美 견제 계속될 수 있어
"사라진 소련…개방 시장 옹호 이유 없다"
전통적인 다자 체제가 약화하는 상황에서 실용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선도형 다자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강대국을 포함하려 하기보다는 중견국끼리 모여 협력과 혁신을 모색하고 적극적으로 자국을 보호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향후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미국의 고립 행보가 변화할 가능성은 없다는 게 전문가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남아시아와 유럽 등으로 발을 넓히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세계 질서 'G-마이너스'로…"新 질서 구축할 수 있어"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과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은 17일 롯데호텔 서울에서 '미·중 전략 경쟁과 트럼프 2기 시대 속 아시아의 정책 과제와 대응 방향' 주제로 공동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콘퍼런스는 미·중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아시아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성, 지역 협력 전략을 점검하고 정책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양국 대학원이 처음 연 행사다.
대니 콰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석좌교수가 17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공동 개최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KDI 공공정책대학원 제공
대니 콰 리콴유공공정책대학원 석좌교수는 이날 'G-마이너스 세계의 비의도적 협력과 선도형 다자주의'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세계 질서가 과거보다 기능이 약화한 G-마이너스로 향하고 있다고 짚었다. 전통적인 다자 체제가 약화하는 상황에서 기술 및 공급망 규범을 조정하고 실용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선도형 다자주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G-마이너스는 세계 질서가 G2(미·중)로 양극을 이루거나 완전한 다자 체제로 이뤄지기보다는 어떤 힘도 질서를 만들지 못한 채 구심력이 약화한 상태를 말한다. 주요국이 조정 역할을 하지 않는 무질서(G-zero)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요국 간 협력과 규칙이 과거보다 약화한 세계라는 의미다.
콰 석좌교수는 강대국이 경쟁하는 사이 제3국은 ▲정렬(Align) ▲묵인(Acquiesce) ▲완화(Mitigate) 전략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고 했다. 정렬 전략이 정치·외교, 군사·안보 등 분야에서 미국이나 중국 한쪽을 택하는 것이라면 묵인 전략은 미국의 요구를 다양한 형태로 받아들이며 관세와 투자 등을 양보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등은 수용 전략을 택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콰 석좌교수는 "미국은 1이고 중국은 0이라는 이분법적인 계산에 의해서만, 제로섬 게임에 의해서만 세상이 돌아간다면 정렬이 최선의 전략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경제학자로서 보면 정책 입안자들은 세상이 제로섬이 아닐 때조차도 제로섬이라고 믿는다"고 지적했다. 또 "(묵인 전략을 보면) 협상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수록 결과는 더 나쁘다"고 설명했다.
콰 석좌교수는 "이제는 완화 전략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완화 전략은 변화하는 세계 질서에 적응하면서 각국의 완화 및 보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내 다자간 임시상소중재약정(MPIA)이나 환태평양경제협력체(CPTPP) 등이 그 예다. 콰 석좌교수는 "선도형 다자주의가 (완화 전략을 추구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더 이상 강대국을 포함하기보다는 중견국끼리 모여 협력과 혁신의 모델, 우리만의 구조를 만들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G-마이너스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유주의적인 규칙 기반의 질서가 무너진다고 해도 우리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며 "지금은 그것을 위한 도구를 개발하고 있는 때"라고 했다.
"냉전 때와 달라…美 개방 시장 옹호 이유 사라져"
콰 석좌교수는 이날 오후 현장에 참석한 기자들과 별도로 간담회를 했다. 그는 "세계는 미국이 무역 세계에서 배제되는 G-마이너스 세계로 더 많이 이동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매우 행복한 세상은 아니며 이전만큼 번영하는 세상도 아닐 것"이라며 "(다만)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세상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콰 석좌교수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점점 더 작은 영향력을 갖는 세계로 가고 있다고 본다"며 "미국이 군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경제적으로는 매우 다른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3국이 미국을 고립시키려 한다기보다는 "미국이 우리와의 무역을 불편하다고 생각하기에 우리와 거래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대안으로는 아세안+3(한·중·일) 등과 같은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경제 협력 강화를 꼽았다. 아세안에서의 에너지 그리드 구축이나 무역 관계 개선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평가다. 콰 석좌교수는 "한국은 동등한 조건으로 거래하길 원하는 국가가 부족하지 않다"며 "한국이 운영하는 산업 정책은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 더 많이 초점을 맞출 수 있다"고 했다.
유럽도 좋은 선택지다. 콰 석좌교수는 "유럽이 아시아에 매우 중요한 경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며 "유럽은 우리가 아시아에서 생산하는 것을 필요로 하고, 우리는 유럽이 생산하는 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생긴 유럽 내 문제가 유럽의 미국 의존도를 높였다 보니 단시간에 실현되기가 어려운 선택지라고 봤다.
콰 석좌교수는 향후 미국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나머지 세계를 다루는 그들의 접근 방식이 변하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중국 견제가 전보다 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 사례를 돌아보면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경제적 사유로도 미국의 견제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은 지난 80년 동안 세계화와 다자주의를 옹호했다"며 "하지만 이 장벽은 소련과의 경쟁, 즉 냉전에 기반했고 미국은 (소련과) 반대를 주장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며 "미국이 이제 개방 시장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이를 옹호할 이유가 없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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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 석좌교수는 국제 경제 관계, 경제 성장과 개발, 소득 불평등 등을 연구하는 경제학 분야 석학이다. 세계은행(WB) 총재 경제자문패널과 WB 그룹 경제개발연구소 자문위원회, 세계경제포럼(WEF) 지정 글로벌 미래위원회 등에서 활동한다. 미국 프린스턴대와 미네소타대, 하버드대에서 수학했으며 미 MIT 경제학 조교수와 영국 런던정경대(LSE) 경제학 및 국제개발학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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