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칼럼]'팩스 시대'의 이메일, 스테이블 코인
스테이블 코인 실용성 주목되지만
국가별 이해충돌·규제 정비가 관건
시장 인식·시스템 변화 동반돼야
2025년이 스테이블 코인의 '챗 GPT 모멘트'가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 다만 새로운 결제 기술이 일상적인 소비 생활에 침투하는 속도가 너무 더디기 때문에 그 변화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뱅스(EBANX)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이 회사는 스트라이프사처럼 결제 서비스를 중개하지만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 등 신흥국 소비자들이 알리익스프레스나 우버,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앙 델 발레 이뱅스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홍콩 핀테크 기술 위크'에서 "우리 고객의 100%는 법정 화폐로 결제하고 있다"며 "일반 사용자들은 아직 스테이블 코인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테더의 USDT와 서클인터넷그룹의 USDC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두 종류의 스테이블 코인으로, 미국 달러를 1대 1로 반영해 민간에서 발행한 디지털 화폐다. 이 토큰들은 블록체인상에서 가명(pseudonym)으로 거래되며 약 10년 전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고위험 가상화폐와 전통적인 은행 예금을 연결하는 일종의 '가교'로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의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 같은 규제가 주요국 대부분에서 마련되면서 발행사들의 다음 목표는 이런 법정화폐의 디지털 버전을 주류 결제 체계 속으로 확산시키는 것, 즉 일상적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됐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이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통화 불안과 인플레이션을 피해 자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에게 '안전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약 3150억달러 규모의 시장 가치가 2030년 시티그룹이 제시한 1조6000억달러까지 커지려면 소비자들이 직접 변화의 주역이 돼야 한다. 즉, 이미 넘쳐나는 디지털 결제 수단들 사이에서 스테이블 코인이 안착하려면 소비자에게 시간이나 비용 절약이라는 실질적 이점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e커머스(전자상거래)는 스테이블 코인의 가장 명확한 활용처다. 전자상거래와 블록체인은 본질적으로 모두 국경을 초월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뱅스 같은 결제 서비스 기업들은 가맹점들이 달러나 유로처럼 손쉽게 USDT와 USDC 같은 토큰 결제를 수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매켄지앤드컴퍼니에 따르면 현재 스테이블 코인은 전 세계 일일 송금액의 1%도 채 되지 않는 규모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매켄지는 동시에 현재의 성장 속도가 유지된다면 10년도 지나지 않아 이 규모가 기존 결제 시스템을 추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런 대담한 전망이 실현되려면 스마트 계약이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스마트 계약이란 블록체인 거래에 필요한 절차를 자동으로 수행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자금세탁방지(AML)나 제재 검증 과정에서 인적 개입을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알고리즘은 자금이 특정 목적에 맞게 쓰이도록 지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인 관광객이 '알리페이+' 전자지갑에서 위안화로 결제하려 하지만 싱가포르의 상점은 동남아 지역에서 대중화된 '그랩페이'로 입금되는 자금만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때 싱가포르 달러 기반의 디지털 화폐인 XSGD는 양쪽 시스템을 연결해 이 국경 간 거래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도록 설계돼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은 이미 XSGD와 그 자매 토큰인 XUSD가 곧 시행될 스테이블 코인 규제에 실질적으로 부합한다고 밝혔다. 이 토큰을 발행하는 스트레이츠엑스는 아시아 금융 중심지인 싱가포르에서 주요 결제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2019년 이 기업이 부수 프로젝트로 스테이블 코인을 실험적으로 발행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규제 당국자 대부분은 이 새로운 금융 도구가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충분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후 블록체인상에서 총 90억 XSGD가 거래되면서 소비자들은 코인의 실용성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럼에도 스테이블 코인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이 기술의 활용 범위가 확대되려면 규제 환경이 먼저 정비돼야 한다. 미국에서 이는 곧 이해관계자 간의 미묘한 균형을 찾는 일을 의미한다.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후한 보상 혜택을 내세워 신규 고객을 유치하려 서두르지만 중소 은행들은 예금이 빠져나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 외의 국가들은 이해관계가 더 복잡하고 위험 부담도 크다. 중국의 앤트그룹은 홍콩에서 '앤트코인'이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을 추진 중이다. 본토에서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한 베이징 정부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이 자국 통화 주권에 미칠 위험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한편 싱가포르 스테이블 코인 발행사들은 싱가포르 통화청으로부터 발급받은 단일 면허만으로도 다른 규제 시장의 고객에게 접근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샘슨 리오 스트레이츠엑스 공동창업자이자 최고법률책임자(CLO)는 이번 홍콩 핀테크(금융+기술) 행사에서 "우리는 하나의 자산 풀에 기반한 단일 토큰 세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각국이 준비금을 자국 은행 시스템에 분리해 보관하도록 요구한다면 자산 풀은 쪼개질 것이고 그만큼 고객 보호도 약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별로 별도의 코인을 발행하게 되면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제도적 걸림돌이 해소되면 결제 서비스 기업들에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다. 국경 간 거래부터 시작해 소비자들이 스테이블 코인을 사용할 때 시간이나 비용 측면에서 체감할 만한 실질적 이점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리오 공동창업자는 지금의 시장 상황을 "이메일을 도입하기 시작한 기업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팩스로 문서를 주고받던 때"에 비유했다. 그 당시 이메일을 출력한 뒤 다시 팩스로 보내는 일은 결국 효율성 제고라는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 행위였던 것처럼 스테이블 코인 역시 시장 인식과 시스템이 함께 변해야 진정한 효율성을 드러낼 것이라는 의미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더 우수한 기술이 시장의 승자가 됐고 그 기술은 처음 내세운 효율성과 혜택을 입증했다. 화폐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생길 것임을 기대해도 좋다.
앤디 무케르지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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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Stablecoins Are Like Email in a Fax-Machine World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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