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자신이 없는 사업은 새주인 찾아줘야"
한국 과거 주력산업 대부분 구조조정 필요
"경영자는 열정과 자신이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열정과 자신이 없는 사업까지 움켜쥐고 그 일에 인생을 건 직원들을 이끄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열정과 자신을 가진 경영자를 찾아 사업을 넘겨주는 것이 올바른 자세죠."
2015년 삼성 그룹은 방위산업 관련 계열사인 삼성테크윈과 삼성 탈레스를 한화에 넘겼다. 그 결과 한화테크윈, 한화탈레스가 태어났다. 이후 한화테크윈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탈레스는 한화시스템으로 명찰을 바꿔 달았다. 당시 이재용 회장을 만나 계열사를 한화에 넘긴 이유를 물었다. 이 회장은 사업양도를 "종업원에 대한 도리"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한화로 강제 이적당한 종업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은행 대출을 받을 때 은행금리가 올라갔다, 결혼 정보 업체에 등록할 때 등급도 떨어졌다는 등 불만도 구체적이었다.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은 보상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업양도에 대한 삼성 내부 반발도 있었다. 헐값에, 그것도 분납 조건으로 사업을 넘겼다는 이야기였다.
"회의 때 매각 대상 업체 공장에 가보고, 직원들과 저녁에 술 한잔 먹어본 분이 있나 물었습니다. 두어명이 손을 들더군요. 삼성 고위 임원들은 삼성전자만 챙깁니다. 사실 핵심사업 말고는 돌볼 여력도 없습니다." 반발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있었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중복이 너무 심합니다. 한곳에 모아줘야 겨우 글로벌 경쟁력이 생깁니다. 나중에 보면 제가 그린 그림을 이해할 것이라 봅니다."
그후 10년이 지난 지금 삼성이 양도한 방산사업이 황금알을 낳기 시작했다. 헐값에 분납으로 분양해 준 삼성이 배가 아프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 먼저 삼성 테크윈과 탈레스가 어떤 회사였는지 돌이켜보자. 삼성테크윈은 1977년 8월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삼성정밀공업이었다. 1987년 삼성항공산업으로 사명을 바꾸고 2000년에는 삼성테크윈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2015년 한화그룹 인수 이후엔 한화테크윈으로 불렸다. 2018년 드디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란 이름을 얻었다.
삼성테크윈은 자주포(K9 등), 보병전투장갑차(K21 등), 탄약운반장갑차(K10 등) 등 무기체계 개발, 생산에 참여했다. 또 항공 엔진 제작, 정비·부품생산 사업도 했다. 여기에 디지털카메라, 카메라폰 모듈 등 광학기술과 반도체 재료·부품 사업 등 정보기술 사업도 가지고 있던 업체다.
삼성탈레스의 뿌리도 삼성정밀공업에 닿아있다. 삼성은 1999년 프랑스 탈레스 그룹과 방산사업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고 합작회사 삼성탈레스를 설립한다. 삼성탈레스는 레이더, 통신시스템, 전자전 등 첨단 전자방산 분야에 강점을 가진 업체였다. 한화 인수 이후 이 회사는 한화시스템으로 다시 태어난다.
한화는 한국화약을 줄임말이다. 말하자면 원래 탄약, 정밀 유도 무기 사업에 강자였던 한화가 테크윈과 탈레스 인수로 항공과 IT(Information Technology)란 날개를 달고 한국 방산 1위 기업으로 날아올랐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숫자가 바로 주가다. 2015년 11월 1일 테크윈 주가는 3만원대(3만7300원)였다. 하지만 올해엔 주가가 112만원을 넘기도 했다.
지금 한국은 글로벌 방산 시장의 떠오르는 강자다. 한국 경제에서 요즘 가장 활력이 도는 곳이 방산업계다. 지난 6월 기준 방산 4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수주 잔고가 100조원을 돌파했다. 계약후 납품 대기 중인 물량이 100조원이 넘는다는 의미다. 4~5년 치 일감을 쌓아 놓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수주 잔고가 31조7000억원에 달한다. KAI 26조6733억원, LIG넥스원 23조4665억, 현대로템이 21조6370억원이다. 한화 방산계열 직원들도 아마 지금은 삼성후자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한국방산은 한국경제의 활력소일 뿐 아니라 버팀목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상징하는 단어가 마스가(MASGA)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란 뜻을 가진 마스가란 단어를 만들고 이를 현실로 만들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곳이 바로 한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회사 한화오션과 HD현대는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계속 따내고 있다. 미국이 조선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중국 해군과 경쟁 때문이다. 미 해군은 2024년부터 30년간 군함 확보에 1조 달러 넘는 돈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현재 295척인 함정을 2054년엔 390척까지 늘리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새 배 수주량 상위 10개 조선소 가운데 7개가 중국업체다. 그리고 나머지 3개가 바로 한국의 HD현대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이다. 중국과 바다 패권을 놓고 싸우는 미국 입장에선 한국 이외에는 답이 없다. 미 군함 시장은 국내 조선업체 입장에선 새로 열리는 블루오션이다. 그런데 삼성중공업은 왜 마스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을까.
일단 삼성그룹은 방산 사업에서 손을 뗐다. 군함에는 전문성이 떨어진다. 만약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가 지금도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중국은 마스가 깃발을 높이 든 한화를 향해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지난 10월 중국 정부는 한화그룹의 조선·해운 분야 미국 계열사 5곳을 제재한다고 발표했다. 마스가의 심장인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 등 미국 내에서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 만든 자회사들이다. 이들과 중국 조직·개인과의 협력·거래를 전면 금지해 버린 것이다.
사실 한화 입장에선 중국과 거래가 끊겨도 큰 문제가 없다. 사업 구조상 중국과는 어차피 경쟁 관계다. 중국에서 나오는 매출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제재에 떨 필요가 없다. 만약 삼성이었다면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삼성전자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기준 약 30%다. 반면 미국은 약 29%. 미국과 중국이 싸울 때 절대 한쪽 편에 설 수 없다. 삼성은 마스가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조직이다.
본격적인 한국방산 수출시대가 열린 것은 불과 몇년 전이다. 2022년 현대로템은 폴란드에 K2 전차를 일단 180대 수출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현대로템 한 임원은 "당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장 결정하기 어려운 것은 가격이었다"고 말했다. 과거 수출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도대체 얼마를 불러야 할 지 몰랐다는 것이다.
사실 국산 첨단 무기들은 1개 기업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K2 개발작업은 국방과학연구소가 주관했다. 또 전자장비의 상당 부분은 한화시스템이 공급했다. K2 전차 가격의 7%를 한화시스템이 만든 전자장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차의 심장인 엔진은 HD현대인프라코어 작품이다. 국가의 지도하에 수많은 방산업체들이 서로 경쟁, 협력하면서 첨단무기를 만든다. 국방부에 납품할 때는 원가에 약간에 이문만 붙여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처음 수출할 때 제대로 값을 매기기가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다.
한국 방산의 경쟁력은 제조역량에서 나온다. 빨리, 값싸게 만드는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와 계약을 맺은 지 단 4개월 만에 1차 물량 10대를 납품했다. K2 이전 세계 최고란 말을 듣던 독일의 레오파르트 전차, 미국 에이브럼스 전차 등은 계약을 맺고 물건을 받는 데 수년이 걸린다. 오랜 평화로 제조업 기반이 낡아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다. 주 생산업체가 만들겠다고 나서도 부품업체들이 제때 공급을 못 한다. 반면 한국은 칼같이 납기를 지킨다. 정 급하면 국내 공급용 제품을 돌려서 미리 주기도 한다. 게다가 같은 스펙이면 값이 절반이다.
지난 20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가 열렸다. 전시회는 AI가 국산 첨단무기를 어떻게 바꿀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배회형 정밀유도무기 천무 3.0을 내놨다. 날아가던 미사일에서 자폭용 AI 드론이 튀어나와 적을 때리는 제품이다. 80㎞ 밖에서 미사일을 쏴도 명중률이 99%다. 한화는 천무 3.0을 2030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한화시스템은 400㎞ 초저궤도 상공에서 지상의 휴대폰·생수병 등 15㎝ 크기의 물체도 정밀하게 식별할 수 있는 위성의 실물 모형을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LIG넥스원은 차세대 무인지상차량 'G-소워드'를 선보였다. 센서, 장비, 소프트웨어를 갈아 끼면 AI가 정찰, 호위, 타격 임무를 자율적으로 완수한다는 제품이다. 현대로템은 전장은 물론 재난 대응까지 가능한 AI 무인 차량 '블랙 베일'을 공개했다.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해 소리 없이 움직이는 차량이다.
이제 한국에서 열리는 무시 전시회는 무기의 미래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년 9월엔 과거 국내 대표적 지상무기 전시회로 불렸던 DX KOREA 2026이 일산 킨텍스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 방산 기술 발달은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회 성격도 바꿔 놓고 있다. DX KOREA 측은 내년 전시회는 기존 지상전력 위주에서 육해공, 우주 나아가 사이버공간을 아우르는 미래 첨단 무기가 모이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한국방산은 세계를 향해 도약할 기회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시정연설에서 내년 국방예산을 66조3000억원으로 늘리고 세계 방산 4대 강국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2020∼2024년 기준 세계 무기 수출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이 2.2%로 세계 10위라고 밝혔다. 1위는 미국(43%)이다. 그다음은 프랑스(9.6%), 러시아(7.8%), 중국(5.9%), 독일(5.6%) 순이다. 한국 방산은 사실 이제 겨우 세계로 나가는 첫발을 내디딘 상태다. 방산 4위까지는 갈 길이 멀다.
방위산업이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할 정도로 성장한 배경 가운데 하나가 10년전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이다. 인력, 기술 자원을 효율적으로 나눠 경쟁력을 키워 놓았기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석유화학이다. 현재 상태로는 중국과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공멸할 가능성이 크다는 공감대가 있다. 정부가 미리 손을 쓰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정부는 업계 자율에 맡기겠다고 발표한 뒤 한발 물러선 상태다. 중국의 저가공세, 미국의 50% 관세 등으로 철강업도 큰 위기다. 지난 4일 관련 장관들이 모여 낸 대책이 금융지원 등에 7700억원을 쓰겠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이번에도 업계 자율에 기대는 모양새다. 지금은 초호황인 조선업체들도 저렴한 인건비를 무기로 삼고 있는 중국과 경쟁에 밀려 몇년전까지만해도 대규모 적자를 냈었다. 사실 노후한 과거 한국 주력 산업들은 모두 구조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주도권 민간자율이던 서두르지 않으면 미래 한국경제가 흔들린다.
백강녕 IT스페셜리스트 young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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