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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 된 연구소의 '퀀텀 점프'‥'측정의 손'으로 만드는 양자컴퓨터[백종민의 쇼크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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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표준과학연구원, 설립 50주년 맞아 변신 선언
초전도체 이어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개발에 전력
질량·시간·길이의 표준 측정 기술로 양자 산업 육성 첨병 역할

문종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오른쪽)가 연구실에서 백종민 아시아경제 테크 스페셜리스트에게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연구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문종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오른쪽)가 연구실에서 백종민 아시아경제 테크 스페셜리스트에게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연구 장비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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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인 양자컴퓨터칩(QPU)은 한번 디자인하면 끝입니다. 찍어내면 끝이죠. 그런데 이건 중간중간에 수정이 가능합니다."


대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양자기술연구소에서 만난 문종철 박사는 차세대 '중성원자 양자컴퓨터'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했다.

문 박사가 장막을 거두자 나타난 장비는 흔히 보던 커다란 샹들리에가 있는 초전도체 방식의 양자컴퓨터와는 전혀 달랐다. 초저온을 구현하는 장비와 실리콘 웨이퍼 대신 '광 집게'라 불리는 강력한 레이저가 진공 속 원자(큐비트·양자 정보 단위)들을 붙잡아 배열시키고 있는 모습은 복잡한 광학장비와 레이저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초저온을 유지해야 할 필요도 없다. 초전도체 양자컴퓨터의 가동을 위해 액화헬륨가스를 공급하는 장비와 '삑삑' 하는 소리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문 박사에 따르면 중성원자 방식은 '칩'이라는 고정된 판이 필요 없다. 레이저로 원자들을 원하는 패턴으로 포획해 세워두면 그 레이저의 패턴 자체가 곧 '칩'이 된다.


현재 양자컴퓨터의 주류인 초전도체 방식과의 또 다른 차이점은 와이어다. 초전도체 방식의 양자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은 1번 큐비트와 100번 큐비트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사이를 복잡한 '와이어'로 연결해야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보의 '신선도'가 떨어지게 된다. 신뢰도 저하가 발생하며 연산 오류가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가 벌어진다.

문성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가 중성원자 양자컴퓨터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문성철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가 중성원자 양자컴퓨터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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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원자 방식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1번과 100번 QPU 간의 연산이 필요하면 레이저 집게로 100번 원자를 집어 1번 옆으로 '그냥 데려와 붙이면' 그만이다. QPU 디자인도 실시간으로 바꿀 수 있다. 문 박사는 "소위 고정된 칩 디자인으로 인한 불편함이나 기술적 어려움을 중성원자 방식이 해결할 수 있다. 굉장히 유연한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이 기술은 최근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 특히 중국이 독자 기술로 개발한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한위안 1호'의 상용화에 성공, 차이나모바일에 납품하고 파키스탄과 첫 수출 계약까지 체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초전도체 방식의 양자컴퓨터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표준과학연구원이 중성원자 양자컴퓨터 개발을 위한 발걸음을 더 재촉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표준과학원 전경.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27조 2항이 이 연구원의 존립 기반이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원 전경. '국가는 국가표준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127조 2항이 이 연구원의 존립 기반이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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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질량·시간 측정 기술, 게임 체인저 기술로 승화하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2025년 11월6일, 설립 50주년을 맞았다. 이 연구원은 과거의 연구를 기반으로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표준과학연구원은 1975년 '한국표준연구소'로 출발해 1978년 대덕연구개발특구에 가장 먼저 입주한 '대덕 1호 연구소'다.


1호 연구소답게 표준과학연구원은 대덕 단지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언덕 위에 서 있는 본관 건물은 대덕 연구단지의 상징이자 수호신처럼 보였다. 1호 연구원이다 보니 가장 좋은 입지에 위치했고 현재까지 수많은 연구기관과 학교에 부지를 나눠주며 함께 발전해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표준과학연구원의 임무는 국가 산업 발전의 보이지 않는 반석, 즉 '국가 측정 표준'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길이(m)' '질량(kg)' '시간(s)' 등 국가의 모든 '기준'이 표준연구원의 존립 목적이었다. 대한민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할 때도 KRISS의 진공 표준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등, 산업계의 품질과 신뢰를 보증하는 '기준'의 수호자였다.


그러나 50주년을 맞이한 표준과학연구원은 새로운 역할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50년의 신뢰, 세상의 기준'이라는 슬로건 아래, 인류의 차세대 기술로 불리는 '양자' 분야의 핵심 기관으로 거대한 '퀀텀 점프'를 감행하고 있다. '측정'이라는 전통적 임무를 넘어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책임질 '게임 체인저' 기술 개발의 최전선에 선 것이다. 과거 측정을 위해 사용한 원자, 레이저 등의 기술이 양자컴퓨터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벽시계에는 '대한민국 표준시'라고 써있다. 표준을 측정한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벽시계에는 '대한민국 표준시'라고 써있다. 표준을 측정한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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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사례가 차세대 표준시계 '이터븀(Yb) 원자 광격자 시계'다. 이터븀 시계는 20억년에 1초의 오차만 허용한다. 이 기술을 가진 국가는 극소수다. 황인용 표준과학연구원 홍보실장은 "시간 표준을 확립한 원자시계 기술 기반이 있기에 중성원자 양자컴퓨팅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준과학연구원의 벽에 걸린 시계에는 대한민국 표준시라는 설명이 붙는다. 시간의 기준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담겨있다. 업무 특성상 물리학 분야 연구원들이 많은 점도 양자컴퓨터 시대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대전 대덕연구특구단지의 1호 입주 연구소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다. 위는 1976년 설립 초기, 아래는 현재의 모습이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대전 대덕연구특구단지의 1호 입주 연구소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다. 위는 1976년 설립 초기, 아래는 현재의 모습이다.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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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트랙 전략' 초전도와 중성원자, 모두 잡는다= 표준과학연구원의 변신은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글로벌 양자컴퓨터 경쟁에서 가장 유력한 두 가지 방식인 '초전도체'와 '중성원자' 모두를 아우르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구글, IBM 등이 주도하는 초전도체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표준과학연구원은 이미 20큐비트급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 중이다. 표준과학연구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향후 초전도체로는 300큐비트, 중성원자로는 1000큐비트 규모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처럼 두 개의 유력한 플랫폼을 모두 아우르며 연구원은 글로벌 양자 경쟁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5일 국회에서 열린 양자 국가전략기술 국회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5일 국회에서 열린 양자 국가전략기술 국회포럼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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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본관 1층에 전시된 질량을 상징하는 전시물들은 이제 과거일 뿐이다. 반세기 전, 척박한 산업 기술을 육성하고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위해 '정확한 1m'를 측정하던 연구원은 양자라는 '게임 체인저' 기술 개발의 첨병으로 변신 중이다. 과거가 '표준'의 수호였다면 또 다른 50년은 '차세대 게임 체인저 기술'의 개척을 통한 한국 과학기술의 새로운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표준과학연구원이 설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5일 국회 박물관에서 '국가 미래전략 기술의 핵심, 양자'를 주제로 '양자 국가 전략기술 국회포럼'을 개최해 한국형 양자기술 발전 로드맵 수립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 것도 새로운 50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책임의 막중함을 인식한 결과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원에는 물리학의 상징과도 같은 뉴턴의 만유인력이 탄생한 사과나무의 후손이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영국과 미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원에는 물리학의 상징과도 같은 뉴턴의 만유인력이 탄생한 사과나무의 후손이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영국과 미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사진=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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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원자 양자컴퓨터= 원자 하나하나를 큐비트로 사용하는 양자컴퓨터 플랫폼. 고정된 실리콘 칩 대신, 진공 상태에서 '광 집게(Optical Tweezers)'라 불리는 정밀한 레이저를 이용해 개별 원자들을 포획하고 원하는 배열로 배치한다. 레이저의 패턴 자체가 곧 '칩'이 되며, 레이저를 실시간으로 움직여 큐비트(원자)의 위치와 연결 구조(토폴로지)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유연성'이 최대 강점이다. 큐비트 수를 수천 개 이상으로 늘리기 용이한 '확장성'이 뛰어나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핵심 난제인 '양자 오류 정정' 구현에 가장 최적화된 방식 중 하나로 꼽힌다.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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