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형 약국' 난립
"가격 혁신이냐, 전문성 훼손이냐"
의약품 쌓아놓고 소비자가 자유롭게 골라 구매
가격은 최대 30% 저렴…약사 복약상담도
동네약국 "오남용 부추겨"…제약업계선 "새 유통 실험"
정부, 약사법 개정으로 명칭·광고제한 방안 검토
대형마트를 연상시키는 '창고형 약국'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약국가가 술렁이고 있다. 대규모 진열대에 일반의약품과 영양제를 가득 쌓아 놓고 셀프계산대까지 설치한 약국들이 문을 열자 기존 동네 약국들은 "약사들의 전문성을 훼손하고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약을 더 저렴하고 편하게 살 수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지만 정부는 '약사법' 개정을 통해 창고형 약국의 명칭과 광고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가격 혁신인가, 전문성 훼손인가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수백 평 규모로 운영 중인 대형 약국은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 경기 고양, 전북 전주(2곳), 대구 수성 등 총 7곳으로 파악된다. 인천 검단신도시와 서울 용산 등에서도 대규모 약국이 개점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약국은 넓은 매장에 대량으로 일반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등을 진열하고 소비자가 자유롭게 골라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특징이다. 상품마다 어떤 증상에 복용할 수 있는 약인지 쓰여 있고, 필요할 경우 현장에서 약사에게 직접 복약 상담도 받을 수 있다.
가격은 대체로 일반 약국보다 10~20%, 많게는 30%까지 저렴한 편이다. 유통마진을 최소화한 데다 일부 의약품은 중간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제약사로부터 직접 공급받기도 한다. 경기도 성남의 한 창고형 약국을 방문한 소비자는 "평소 자주 구입하는 감기약이나 해열제는 동네 약국보다 500~1000원가량 저렴하고, 유산균이나 비타민C 영양제는 유명 제약사 상품과 비교해 절반 가격인 제품도 있다"며 "흔히 동네 약국에서 특정 의약품을 달라고 하면 같은 성분이라며 다른 약을 권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선 다양한 제품 중 내가 선호하는 약을 직접 선택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과거 편의점에서 상비약 판매를 허용할 때도 약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최소한의 의약품만 허용됐고, 약국의 우려와 달리 위험한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며 "해외 드러그스토어와 같이 소비자들이 더 편리하게, 더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약사회를 중심으로 한 약국들은 이 같은 창고형 약국을 "약국 본질을 훼손한 편법 영업"으로 규정한다. 약은 필요한 때 적정량이 사용돼야 하는데, 가격경쟁력만 앞세운 의약품 난매는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약사의 전문적인 약물 검토와 중재, 복약지도가 제외된 시스템은 의약품 부작용 발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약국 간 규모의 경쟁에 소형 약국은 타격
이런 우려는 지난달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약사법 개정을 통해 창고형 약국의 명칭이나 표시·광고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행법상 창고형 약국을 제재할 근거는 없다.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은 취급하지 않는 데다, 약사 면허를 보유한 이가 개설한 약국이라면 법적으로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약국 상호에 '창고' '도매' '마트' 등 대량 판매나 저가 판매를 암시하는 명칭을 사용할 경우 일부 소비자가 필요 이상으로 의약품을 다량 구입해 오남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민 건강 관리 차원에서 이런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규제해 잠재적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제약업계에선 창고형 약국을 새로운 유통 실험으로 눈여겨보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중견 제약사 관계자는 "이미 종로5가, 남대문 등에 가격 경쟁으로 차별화한 대형 약국들이 운영 중이었고, 최근엔 '탈모약 성지' '다이어트 주사제 성지'로 불리는 몇몇 약국들에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며 "창고형 약국 역시 판매 형태가 요즘 소비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달라졌을 뿐 대형 약국 개설과 운영 자체엔 큰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약사단체에선 창고형 약국 개설 과정에서 약사가 아닌 건물주나 땅 주인 등 대형 자본이 개입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면허대여 약국은 불법이기 때문에 약국 개설 자체를 막아야 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자본력 있는 약사들은 이미 대형 약국 자리를 알아보러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앞으로 의약품 유통 시장에도 변화가 일고, 약국 간 양극화도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서울 소재 한 약학대학 교수는 "시대 변화에 따라 소비자들의 취향이 달라지고, 유통 시장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약국이 등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다만 의약품 특성상 소비자가 의약품의 모든 정보를 다 자세히 알고 복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오남용을 방지할 방법은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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