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담보물 감정 내부수행 논란
국토부 "불법" 유권해석 불구
금융위 "협의체 구성" 결정 미뤄
감정평가사 "중단촉구" 규탄대회
시중은행들이 대출을 위한 담보물 평가를 외부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하지 않고 자체 처리하는 것이 적법한지를 두고, 금융당국이 결정을 미루면서 감정평가 업계와 시중은행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감정평가 업무 관련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시중은행들의 이 같은 행위를 "불법"이라고 유권해석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세칙 개정 권한을 쥔 금융당국이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자, 감정평가사들은 재차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은행의 자체평가는 위법이기도 하거니와 담보가격 과대 산정과 부실대출로 이어질 위험이 큰 만큼 하루빨리 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4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열린 '국민은행 감정평가시장 불법 침탈행위 규탄대회'에는 약 300명의 감정평가사가 참여했다. 9월 29일과 지난달 14일, 27일에 이어 네 번째다. 감정평가사들은 이날 KB국민은행에 자체 감정평가 중단과 '가치평가부' 해체 및 소속 감정평가사 약 30명을 본래 업무(심사)로 전환 등을 요구했다. 감정평가사는 주택·상가·토지 등 부동산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산정하는 전문가다. 이들의 평가액은 은행 대출, 세금 부과, 공공사업 보상 등에서 기준이 된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규탄대회를 시작하기 전 여당 의원실의 주선으로 국민은행과 비공식 간담회를 가졌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협회가 요구사항을 설명했으나 국민은행은 "은행장 등과 상의해보겠다"는 원론적인 답만 내놨다.
2016년 법 분리 후 불거진 충돌…"법 vs 세칙"
은행권의 자체 감정평가 논란은 2016년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이 두 개로 분리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분리된 법 중 새로 제정된 감정평가법에는 '금융기관이 대출이나 자산의 매입·매각 과정에서 토지 등의 감정평가를 할 때 반드시 감정평가 법인 등에 의뢰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이 조항은 1973년 제정된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도 담겨 있다.
그런데 금융감독원의 하위 행정규칙에는 자체 평가를 허용하는 내용이 그대로 남아 있어, 법률과 규칙이 충돌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해당 세칙은 비주택 부동산 담보가치를 산정할 때 국세청 기준시가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자료를 활용해 은행이 자체적으로 가격을 평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중은행은 이 세칙을 근거로 담보물 자체 평가가 적법하다고 판단한다. 이 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담보물 평가는 '은행업감독업무 시행세칙'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감정평가법에 따른 감정평가는 세칙에서 규정한 담보가치 산정 방법의 하나일 뿐 담보가치 산정 시 반드시 외부 감정평가를 의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지난 9월 KB국민은행의 자체 감정평가가 해당 법률을 위반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하위 규정(행정규칙)인 시행세칙이 자체 평가를 허용했다고 하더라도, 법률 우위 원칙상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금감원 역시 2011년 각 금융기관에 '은행의 자체평가를 지양하고, 감정평가금액이 소액인 경우만 제한적으로 취급할 것'을 통보한 바 있다. 협회 관계자는 "은행이 KB시세 등 공개된 시세 자료를 참고하는 건 문제없지만, 시세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가나 고가 건물을 내부 평가하는 건 감정평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다.
국토부 "시정하면 될 일", 금융위 "협의체 구성"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현재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위법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감정평가법과 금감원 시행세칙이 충돌하는 문제를 금융당국이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현재 검토 중"이라고만 했다.
업계 갈등은 지난달 27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거론됐다. 국회 정무위 소속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기관의 자체 감정평가 문제는 2022년부터 매년 국감에서 지적돼 왔지만, 금융위가 TF를 핑계로 시간을 끌었다"며 "이 과정에서 국민은행의 자체 평가 비율은 2021년 대비 올해 상반기 말 3배로 늘었다"고 했다. 이 부위원장은 김 의원 지적에 "금융위 부위원장과 감정평가사협회장이 최근 면담해 산정 방식을 개선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며 "합리적인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국토부는 이번 사안을 합의 대상이 아닌 시정 대상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금융위·금감원과 세 차례 실무회의를 진행하면서도 법 위반 소지가 명확한 만큼 즉각적인 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위가 이후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제안하자, 국토부는 "위법 사안을 TF에서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참여를 거부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미 유권해석이 내려진 사안인 만큼 시정하면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은행의 자체평가 확대는 담보가격 과대 산정과 부실대출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협회 관계자는 "금융기관 내 감정평가사는 외부 감정평가서의 오류를 검토하는 심사 업무를 맡아야 하지만, 국민은행은 이 인력이 직접 평가와 심사를 동시에 맡고 있다"며 "선수와 심판이 같은 팀에 있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협회는 그동안 은행권과의 거래 관계를 고려해 일정 부분의 자체평가는 묵인해왔다. 그러나 국민은행이 내부 평가 조직을 키우며 자체평가 범위를 빠르게 넓히자 더는 그대로 두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협회 관계자는 "다른 은행들도 일부 내부 평가 인력을 두고 있지만, 국민은행처럼 규모를 급격히 늘린 곳은 없다"며 "업계가 수인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했다.
협회에 따르면 국민은행의 자체 평가 금액은 2022년 26조원에서 2023년 50조원, 지난해는 약 75조원으로 추정된다. 2년 만에 세 배로 늘어난 셈이다. 외부 감정평가 법인에 의뢰했다면 수수료만 약 550억원이 들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돈은 KB국민은행 입장에서는 절감한 비용이지만, 감정평가 업계 전체로 보면 국민은행 때문에 사라진 매출, 즉 시장이 빼앗긴 일감이다. 담보평가 실적 1위인 A감정평가법인의 연 매출(350억원)을 훌쩍 넘는 규모다.
협회 관계자는 "아직 협회로 TF 관련 공식 문서나 외부 통보가 온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토부가 이미 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만큼 이제 공은 금융위와 금감원으로 넘어갔다"며 "법 위반 사안을 어떻게 해소할지는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두 기관이 답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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