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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오디언스 인텔리전스(AI)'‥듣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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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발언권이 없습니다. 듣기만 해야 합니다."


반도체 전문가인 한 공대 교수는 SK하이닉스의 회의 문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특정 회의에서 발언권은 팀장이 아니라 팀원에게만 주어진다. 리더는 오직 듣는 역할에만 집중하고, 어떤 말이 오가든 무조건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한다. 교수는 이런 '경청의 리더십'이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떠받치는 힘이라고 분석했다.

"개발 과정에서 겪는 고충과 다양한 아이디어가 밑에서부터 올라오고, 이를 꾸준히 듣는 문화가 오랜 기간 쌓이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고난도 메모리 기술이 나왔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부터)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저녁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치맥' 회동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10.30 조용준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부터)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저녁 서울 삼성동의 한 치킨집에서 '치맥' 회동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10.30 조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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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 없는 대화 속에 고성능 반도체 기술 발전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기술의 힘이 설계도가 아니라 '듣는 일'에서 시작된다는 공대 교수의 분석이 신선한 충격을 줬다.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삼성전자의 최근 변화도 비슷한 시사점을 던진다. HBM 품질 평가에서 한때 주춤했던 삼성도 '듣는 자세', 즉 고객이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바라보는 태도로 다시 기술의 중심에 복귀했다.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품질 평가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시던 삼성은, 글로벌 1위라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고객 앞에 스스로를 낮췄다. 가장 자신 있던 기존의 D램 설계 방식을 전면 수정하고, 고객사가 요구하는 방향에 맞춰 기술을 다시 짰다. '최고'라는 자의식 대신, 고객의 요구를 다시 새겨듣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엔비디아 본사를 여러 번 찾아 의견을 구했다. 완제품 판매가 아니라 개발 여정을 함께하는 것이다. 고객을 중심으로 기술 재설계가 이뤄졌다. 그 뒤 삼성은 HBM3E 공급을 공식화했고, HBM4 공급 약속까지 얻어냈다. 기술 경쟁력의 회복은 결국 소통 회복에서 시작됐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고객의 요구에 귀 기울이고 복무하는 것이 절대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기술과 제품은 결국 고객의 손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청하고 이해하는 능력'의 중요성은 비단 반도체 산업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처럼 산업 환경 전반이 급변하는 시기일수록, 시장의 흐름을 읽고 변화의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은 더욱 절실해진다. 기술 트렌드가 뒤흔들리고, 소비자 기준이 빠르게 이동하는 시대에는, 정답을 고집하는 기업보다 고객과 함께 한계를 돌파하고 지향점을 공유하는 기업이 앞서간다.


지켜야 할 것이 많다는 이유로 스스로 정답을 정해둔 기업은 변화와 성장을 이루기 어렵다. 기술의 최첨단에서도 '듣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공대 교수의 말이 유효한 이유는, 지금 산업 전반에서 수용 능력, 즉 '받아들이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산업 환경에서 던져야 할 본질적인 질문은 '기술이 얼마나 앞서 있느냐'가 아니라 '그 기술이 고객이 원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느냐'다. 자기 안에 머물지 않고, 바깥의 세계와 대화하며 다른 지평을 끌어오는 기업만이 미래의 경쟁력을 가진다. '오디언스 인텔리전스(Audience Intelligence·AI), 듣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





박소연 산업IT부 차장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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