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의 무대 뒤에 숨은 '냉정한 계산'
엔비디아의 협상 게임, 한국 기업의 대응은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있었던 삼성·현대와의 '깐부치킨' 공개 만남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를 극대화하며 한국 민심의 호감을 샀다. 엔비디아는 본래 그래픽카드 회사였지만, 범용 병렬 연산의 왕좌를 잡은 뒤 인공지능(AI) 붐을 타고 핵심 제품을 'AI 가속 그래픽처리장치(GPU·이른바 AI 칩)'로 갈아탔다. 기업의 마진 구조 자체를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과거 60%대였던 마진이 이제는 75%대로 상승했다.
이 역사적 변화를 밀어붙인 황 CEO는 이른바 '로큰롤 CEO'로, 세일즈의 귀재다. 검은 가죽 재킷과 무대 위 퍼포먼스, 그리고 스토리텔링에 얹어진 소탈한 면모를 한데 엮어 시장 심리를 흔들고 협상 카드를 만든다.
그가 무엇보다 변화에 민감하고 계산에 밝은 세일즈 전략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SK와도 비공개로 만났지만, 벤더인 삼성과의 공개 회동은 '연출'이 깔린 이벤트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핵심은 자사 제품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의존도를 협상 카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핵심 제품인 AI 칩에 들어가는 메모리, 즉 HBM 공급사는 SK하이닉스·삼성·마이크론 세 곳 정도다. 엔비디아는 지금까지 자격검증과 벤더 간 경쟁 전략을 통해 공급 리스크와 가격 조정에서 우위를 확보해왔다. 현재는 SK가 HBM 대량 물량을 선도하고 있어 엔비디아의 수요가 SK에 크게 묶여 있다. 반면 삼성은 '맹렬한 추격' 단계로, 본격 공급은 2026년부터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독점 공급에 가까워진 SK를 견제하고 삼성을 끌어올려 상호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그 압력으로 가격 조건을 더 유리하게 뽑아내려는 것, 그것이 이번 '깐부 회담'의 숨은 의미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30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역 인근 깐부치킨 매장에서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킨 회동에서 러브샷을 하고 있다. 2025.10.30 조용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두 벤더가 동일 세대 제품에서 엔비디아의 자격검증을 받는 순간, 실질적인 가격 및 수율 조정의 주도권은 엔비디아가 쥔다. 양쪽 벤더의 교체 가능성만으로도 가격 협상에서 개선 여지가 생기며, 결과적으로 안정적이면서도 경쟁적인 공급의 과실은 엔비디아가 가져간다. 앞으로 엔비디아는 SK와 삼성의 HBM을 교차 공급·조절하며 가격을 조정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SK와 삼성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단기적으로는 엔비디아의 대규모 수주 이점을 최대한 누려야 한다. 주가 상승이 증명하듯, 지금 SK와 삼성에 엔비디아는 분명 도움이 되는 고객사다. 그러나 한 고객사의 독점을 방어해야 종속되지 않는다. 동시에 엔비디아의 경쟁사인 AMD 등에도 HBM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대체 수요를 가시화해야 한다. 그래야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고, 추후 가격 협상에서 잃을 카드가 없다.
더 장기적으로는 납품 회사에서 진정한 파트너로 올라서야 한다. 설계 단계부터 참여해 공동 개발 권한을 가져와야 비로소 진짜 파트너가 된다. 이 지위를 확보한 뒤에는 AMD 등에도 병행 공급함으로써 협상력과 마진을 방어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내 빠르고 조직적인 대응, 그리고 병렬적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SK와 삼성의 준비가 필수적이다.
이제 '깐부 회담'의 사진을 다시 보자. 요컨대, 엔비디아의 무대 위 퍼포먼스는 박수칠 일만은 아니다. 그 뒤에서 작동하는 것은 명백한 벤더 경쟁과 가격 협상 압력이며, 이 게임의 승자는 지금으로선 여전히 엔비디아다. 한국의 굴지 기업들이 이 전략적 시그널을 읽고, 보다 장기적이고 냉철한 대응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경나경 싱가포르국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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