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영화 미숙함은 실패 아닌 성장통
숏폼 등 새 플랫폼서 기반 다져야
지난 15일 개봉한 인공지능(AI) 영화 '중간계'를 보고 나면 결론은 명확해진다. AI 영상 기술은 아직 극장용 영화의 기준을 넘지 못했다. 기술적 성취와 새로운 시도만으로는 스크린을 채울 수 없다.
영화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인물들이 중간계에 머문다는 설정으로 전개된다. 서울 도심 같지만 살아 있는 사람과 단절된 세계, 그리고 십이지신 얼굴의 저승사자에게 쫓기는 추격전. 콘셉트만 놓고 보면 장르적 재미를 뽑아낼 재료는 충분했다. 하지만 스크린에 구현된 중간계는 이(異) 세계라기보다 사람만 없는 서울 도심이었다.
조계사 앞에서 사천왕 불상이 움직이고, 광화문에서 해치 동상이 저승사자와 싸운다. 위압감이나 긴장, 미학적 상상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인물들의 움직임은 경직돼 있고, 화면은 픽셀 노이즈를 일으키며 울렁거린다. 설정은 웅장하지만, 구현 방식이 따라가지 못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숏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AI 영상과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서사도 인물이 움직이는 힘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오히려 AI로 만든 장면들을 이어 붙이기 위한 연결부에 머문다. 감정을 이입할 수 없어 기술 시연회를 지켜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AI 영상 기술의 실패가 아니다. 대중적 단계로 넘어가기 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캐즘(chasm)'이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기존 형식을 모방하는 단계에서 난관을 맞는다. 영화가 초기에 연극 무대를 그대로 옮겨 담았듯, '중간계'도 실사영화의 외형을 흉내 내다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혁신 기술은 기존 플랫폼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성공한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새로운 형식과 플랫폼을 만날 때 비로소 장르가 생성된다. 바로 여기서 AI 영상의 가능성이 드러난다. 빛날 자리는 극장이 아니라 다양한 실험을 허용하는 온라인이다. 숏폼, 웹 시리즈, 교육·인터랙티브 콘텐츠 등이 AI의 속성과 정확히 맞물린다.
짧고 가볍고 실험적인 형식은 미세한 리얼리티보다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우선한다. 관객도 그 불완전함을 용인한다. AI의 빠른 생성과 저렴한 제작비, 풍부한 시도는 이런 콘텐츠 안에서 실제 시장성과 사용자 경험을 검증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지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AI 장편영화 제작' 같은 보여주기식 사업은 기술의 가능성을 오히려 좁힌다. AI가 자리 잡을 환경을 만드는 일이 더 시급하다. 플랫폼, 파일럿 프로젝트, 실험이 누적될 때 기술과 응용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중간계'는 중요한 실패다. 기술이 어떤 무대에서는 통하지 않는지, 무엇이 관객을 설득하지 못하는지 명확히 보여줬다. 혁신은 언제나 그런 골짜기를 거친 뒤에 완성된다. AI가 극장을 대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패배가 아니라 이제 기술이 가야 할 길이 분명해졌다는 신호다.
AI에 맞는 영상 문법, 온라인에서의 시장성 검증, 인간과 기술의 협업 구조. 이 세 가지가 갖춰질 때 'AI 영상'은 비로소 흉내를 넘어 하나의 장르가 된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역대급으로 돈 잘 굴렸다"…'1300조 덩치가 최강 ...
마스크영역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눈이 휘둥그레, 딴 세상이 펼쳐진다"…'보석' 같은 공간들 [world photo]](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03110155489387_1761873354.jpg)


!["병원 한 번 가면 100만원은 그냥 깨져요"…목돈 대비 나선 반려인들의 선택[주머니톡]](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0214265191008_1762061211.jpg)

![[단독]2년 지나 만드는 '오송 백서'…국정조사·정부대응 다 담긴다](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4011717052533311_1705478726.jpg)




![[대만칩통신]TSMC 타이중 신공장 2나노→1.4나노 확정…첨단 공정 구축 박차](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03013093187884_1761797371.jpg)
![[과학을읽다]탄소세에 쏠리는 관심, 누가 기후의 값을 치르는가](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0311010458283A.jpg)
![[기자수첩]공수처, 존재 이유를 증명하라](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0311070988175A.jpg)
![[초동시각]F학점 받은 국정감사](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0311152133882A.jpg)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