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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문화위기가 정치위기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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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문화위기가 정치위기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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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예산안을 두고 타협을 하지 못하면서 현재 미국 정부 기능은 일부 중단되고 있다. 미국의 정치적 분열을 상징한다. 그런데 버지니아 대학 교수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James Davison Hunter)는 지난해 출간한 저서 '민주주의와 연대: 미국 정치 위기의 문화적 뿌리'에서 미국의 정치적 위기가 근본적이고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차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1991년 간행된 '문화전쟁'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가장 깊은 차원의 문제는 건국 이래 미국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던 '하이브리드 계몽주의'가 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칼뱅주의, 고전적 공화주의, 로크적 개인주의 등 다양한 사상적 흐름이 혼합된 계몽주의는 사회적 연대의 원천이었다. 이 사상은 자유, 평등, 보편적 정의를 약속하면서도 인구의 상당 부분에 이러한 가치를 거부해 시작부터 모순이 내재하여 있었지만, 미국 역사는 이러한 모순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러한 하이브리드 계몽주의의 원천들이 고갈돼, 더 연대의 기반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삶을 이해 가능하게 만들었던 문화의 심층 구조가 와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오늘날 '좋은 사회'의 본질에 대한 공통된 가정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유된 정치적 기반이 거의 사라졌다.


문화적 기반이 무너진 공백은 정치적 분열을 초월해 허무주의적 문화 논리로 채워지고 있다. 이는 인식론적 실패와 도덕적 비일관성을 초래하여, 민주적 논의를 위한 공통의 근거를 해체한다. 허무주의적 문화는 상대방을 '합리적인 반대편'이 아니라 '실존적 위협을 가하는 적'으로 규정하며, 상호 파괴를 지향하는 정치로 변질한다. 분노와 증오가 깊어진다. 유기적인 연대가 불가능해지고 정치가 허무주의와 적대감으로 변질하자, 분열을 강압적으로 해결하려는 권위주의적 충동이 강해진다. 현재의 정치적 갈등은 국가 권력이 부여하는 강제적 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으로 변모하고 있다. 경쟁하는 양측은 법이나 행정명령을 이용하여 상대방의 반발과 관계없이 자신들의 이념을 관철하려 한다.


권위주의적 충동은 특정 정치 파벌뿐만 아니라, 테크노크라트 엘리트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이들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와 관료가 대중의 의견과 무관하게 공공선을 결정하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민주적 심의와 절차를 우회하는 '강요된 연대'의 시도이고, 오랫동안 작동해온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극도로 취약하게 만든다.

이러한 심층적 문제들은 정치 시스템 전반의 기능 장애와 비효율성으로 이어진다. 진실과 도덕적 원칙에 대한 합의가 없으므로 공적인 담론은 합리적인 의견교환이 아닌, 슬로건, 모욕, 비난, 욕설의 공격적인 교환으로 점철된다. 이는 정부 기관과 공적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국가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더욱 상실하게 만든다.

미래를 향한 희망은 막연한 낙관주의를 넘어, 현재의 적대적인 이분법을 초월하는 공적 생활을 위한 윤리적 비전을 상상하고 명확히 하는 도덕적 상상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비전을 상상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는 정치 브로커보다 시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헌터 교수는 주장한다. 미국 정치 위기에 대한 헌터 교수의 근원적 진단은 우리 현실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도 생산적 정치를 가능하게 할 연대의 기초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굳건히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해 볼 때이다.

김동기 '달러의 힘' 저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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