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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풍자가 기록보다 진실하다[슬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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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요도호 사건으로 비춘 시스템의 민낯
실화를 허구로 변주…기록 사이의 진실을 비추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스틸 컷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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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굿뉴스'는 1970년 일본항공 351편 납치, 이른바 요도호 사건을 모티브로 삼는다.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복원하려 하진 않는다. 오히려 당시 상황을 과감하게 뒤집어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다시 쓴다.


일본의 급진 좌파 조직 '적군파'가 항공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향한 사건이다. 김포공항을 평양으로 착각해 경유하면서 인질들을 대거 풀어줬다.

변성현 감독은 이런 맥락을 교과서적으로 다루지 않고, 사건의 구조를 현재의 언어로 번역한다. 과거 이야기를 빌려 지금의 '시스템적 무능'을 풍자한다. 55년 전이지만 등장인물들의 사고방식과 대화는 지금의 관료제와 시스템을 떠올리게 한다.


무게중심은 하늘 위의 인질극보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관료들의 혼란에 쏠려 있다. 납치된 비행기가 한국을 지나친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중앙정보부장 박상현(류승범)은 대책 회의를 연다. 김포공항 착륙을 유도한 순간 회의장에선 환호가 터져 나온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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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적군파가 협상을 거부하자 회의는 '대책'이 아니라 '책임' 공방으로 변한다. 누가 착륙을 허가했는지, 어느 부서가 관리해야 하는지 따지기 바쁘다. 사람의 생명보다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충돌하지만 논의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다. 이 기묘한 리듬은 어쩐지 익숙하다. 과거의 풍경이지만 지금 뉴스 속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가 위기를 '관리'하는 방식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하다. 매뉴얼에 갇히고,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에 정작 누군가 결정해야 할 순간은 비워진다.


관료들이 악인처럼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이 속한 시스템의 논리를 충실히 따를 뿐이다. 그들의 무능은 의도가 아니라 구조의 산물에 가깝다. 그리하여 영화는 '악의 폭로'보다 '우스꽝스러운 진실'을 드러낸다. 관객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화면 속 우스움과 무력함이 곧 우리 현실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굿뉴스'의 핵심은 풍자에만 있지 않다. 실화를 '허구'로 변주하면서 오히려 더 깊은 진실에 다가간다. 변 감독은 사실의 나열보다 감정의 잔향에 힘을 준다. 실제 기록이 사건을 정리한다면 그의 연출은 그 기록 사이에 남은 침묵을 비춘다. 인물들의 허둥거림, 책임을 미루는 말투, 공허한 회의 장면을 통해 진실이 결코 하나의 목소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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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언제나 분절되고 흩어진다. 변 감독은 그 파편들을 '풍자'로 묶었다. 불신과 체념, 냉전의 그림자, 체제의 불투명함 같은 감정적 진실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영화는 그것을 허구로 재현하되 감정의 결을 살렸다. 역설적으로, 웃음이야말로 진실을 가장 진지하게 마주하는 방식일 수 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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