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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지금조방원'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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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지금조방원'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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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4000을 넘으면서 역대급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상승장에는 늘 새로운 유행어가 등장한다. 2000년대 중반 중국 성장 기대감 속에 탄생한 '차화정(자동차· 화학·정유)' 이후 'BBIG(배터리· 바이오·인터넷·게임)' 등이다. 최근에는 기존 조방원(조선·방산·원자력발전)에 변주를 준 '지금조방원'이 화두다. 기존 조방원에 지주사와 금융주가 끼어든 말이다. 조방원과 '금반지'라며 금융주와 반도체주, 지주사를 묶는 경우도 있다.


이 업종들은 올해 들어 화끈한 모습을 보였다. 내년에도 이들이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상도 많다. 정부가 자산 이동을 부동산에서 증시로 유도하기 위해 각종 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이번 랠리가 단순한 반등이 아니라 추세적 상승이라는 낙관론도 힘을 얻고 있다. '지금은 주식할 때'라는 열기가 번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조방원'이라는 말은 어딘가 불편하다.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존재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과 조선, 방산, 원전은 모두 실물 기반의 유망 산업이다. 하지만 지주사는 다르다. 일부 사업지주회사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생산과 수주로 실적을 내는 기업이 아니라, 자회사 배당금이나 일부 브랜드 사용료, 임대 수익 등에 의존하는 기업 지배구조의 상부 구조물이다. 사실상 본업이 없는 일종의 페이퍼컴퍼니에 가깝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의 지주사가 그동안 순환출자 대안으로서의 순기능은 약화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상징이었다는 점이다. 많은 지주사가 무분별하게 자회사를 상장해 기존 주주 가치를 희석시켰고, 자회사의 가치가 중복 반영되면서 지주사 자체의 밸류에도 왜곡이 생겼다. 오너 또는 대주주 입장에선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주주친화 정책을 펼 유인도 적다. 주가가 오르면 상속·증여세 부담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이나, 시장이 요구하는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는 오너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그런데도 올해 들어 지주사 주가는 유례없이 뛰었다. 두산그룹 지주사 두산은 240%가량, 한화는 265%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을 압도한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에 따른 배당 확대, 자회사 실적 개선 등을 이유로 지주사를 권하지만 오너들은 주가를 올릴 유인이 여전히 부족하다. 오히려 제도 변화 속에서 주가를 낮추려는 시도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천문학적인 상속세와 증여세는 실질적 공포지만, 이를 피하기 위한 컨설팅 비용은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결국 자발적인 주주환원을 이끌려면 '채찍'과 '당근'이 병행돼야 한다. 상속세 개편 없이 밸류업 정책만으로는 이들의 행동을 바꾸기 어렵다. '지금조방원'이 시장의 유행어가 됐지만, 그 안의 '지'는 여전히 한국 증시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실적과 성장으로 움직이는 산업들 속에서, 여전히 지배와 절세를 위해 움직이는 지주사는 이질적이다. 그래서 '지금조방원'이 불편하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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