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 무용지물
5년간 수입보험료 770억원…지급 보험금은 0.26%에 그쳐
"피해자 중심으로 의무보험 개선해야"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지만 의무보험인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5년간 기업·공공기관이 770억원에 달하는 보험료를 냈지만 보험금은 2억원도 채 받지 못했다.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받은 '개인정보보호 배상책임보험 가입 현황'을 보면 이 보험에 가입한 기업·공공기관은 2020년 9275곳에서 지난해 7573곳으로 18.4% 감소했다.
보험 가입 건수는 줄었지만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수익은 되레 늘었다. 손해보험사 16곳(삼성·DB·현대·메리츠·KB·한화·흥국·롯데·NH농협·MG·하나·서울보증·AIG·신한EZ·캐롯·라이나)의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 수입보험료는 2020년 152억원에서 지난해 171억원으로 12.5% 증가했다. 이 기간 손보사들의 누적 수입보험료는 770억원에 달했지만 기업·공공기관에 지급한 보험금은 0.26%인 1억9968만원에 불과했다. 보험금 지급 건수는 10건에 그쳤다.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은 기업이 관리하는 개인정보가 유출돼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할 경우 소송비·손해배상금·과징금 등을 보장하는 보험이다. 2019년부터 연 매출 10억원 이상이면서 관리하는 개인정보가 일평균 1만명 이상인 사업자는 보험 가입이 의무화됐다. 개인정보 유출 관련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의무화 조치가 되레 보험사에 이익만 안겨준 셈이다.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 자체로는 손해배상 책임이 작동하지 않는다. 유출된 정보로 결제가 이뤄지는 등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손실이 발생해야 한다. 더욱이 피해 사실을 소비자가 직접 소송 등을 통해 법률적으로 인정받아야 보험처리가 된다.
올해 SK텔레콤과 KT, 롯데카드 등에서 발생한 해킹사고로 대규모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들 기업도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지만 보험을 통한 보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보험업계 다수 의견이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직접적인 재산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로 당장은 피해가 없더라도 해당 정보가 불법 유통돼 추후 보이스피싱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를 소비자가 입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은 이런 구조적 문제로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개인정보 유출 피해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에 의무가입한 기업·공공기관이 개인정보 유출을 신고한 건수는 2021년 163건에서 지난해 307건으로 88.3% 증가했다. 이 기간 기업 신고는 141건에서 203건으로 44% 늘었고 공공기관은 22건에서 104건으로 373% 급증했다. 올해도 지난 8월까지 기업에서 169건, 공공기관에서 82건 개인정보 유출 신고가 이뤄졌다.
상황이 이런데 개보위는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의 활용성을 높이는 게 아닌 오히려 후퇴시키는 '교각살우(矯角殺牛)'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 개보위가 지난 3월 발표한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 시행령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에서는 보험 의무가입 기준을 '매출액 1500억원, 정보주체 100만명'으로 대폭 높였다. 이 기준대로라면 의무가입 기업은 대기업 200여곳으로 줄어든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중소기업에서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을 '피해자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자동차 보험의 경우 소송까지 가지 않아도 보험처리가 원활하다"며 "개인정보 배상책임보험도 정부나 기관이 책임소재를 인정하거나 표준약관을 만드는 방식으로 보험처리가 이뤄지도록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5년간 수입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이 0.26%에 불과하다는 건 현행 의무보험이 '국민 피해 구제'라는 본래의 취지를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의무보험이 본래의 순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제도 내실을 다지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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