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이용 재산 국외 도피·불법 증여 가능 '경고'
의심 거래·활동 보고, 모니터링 주도적 수행 주체 필요
지갑 주소 아닌 '이용자별 온체인 활동' 모니터링해야
신원 인증업체, 감독기관 규제 대상 지정 필요
A씨는 재산 국외 도피 목적으로 미국 맨해튼에 있는 1000만달러(약 140억원) 상당의 초고가 주택을 샀다. A씨는 핸드폰에 개인지갑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 개인지갑을 만들었다. 이후 장외에서 미등록 환전 브로커를 직접 만나 1000만달러 상당의 달러 스테이블코인 테더(USDT)를 개인지갑(비수탁형 지갑)에 입금받고, 수년에 걸쳐 마련해 둔 비자금(원화 현금)을 건넸다. A씨는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USDT를 본인확인(KYC)이 허술한 신흥국 거래소로 전송한 뒤, 다시 다른 개인지갑으로 출금했다. A씨는 USDT를 개인지갑에 보관하다가 훗날 미국으로 이민 가서 200만달러 상당의 USDT를 합법적인 달러로 세탁해 주택 매입, 생활비 등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B씨는 분가한 아들에게 매달 생활비 500만원을 불법 증여했다. 증여세(10년간 합산 5000만원, 초과분에 대해 10~50%)를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USDT를 이용했다. 국내에 이용 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홍콩 소재 핀테크 기업 리닷페이(Redotpay)의 가상자산 기반 선불카드를 가명으로 발급받았다. 국내 거래소에서 개인지갑으로 반복 출금하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의심 거래로 보고될 것을 우려해 주로 미등록 환전 브로커를 통해 USDT를 개인지갑으로 전송받고 이를 다시 리닷페이 선불카드로 옮겼다. B씨의 아들은 실물 카드를 넘겨받아 국내 비자 가맹점에서 사용했고, 국세청에 노출되지 않도록 자녀 학원 등에서 반복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해외 여행 시 비자 가맹점에서 사용했고 코인 ATM에서 현지 통화나 달러를 인출해 자녀 유학자금 등에 썼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백서'에 등장한 스테이블코인 악용의 예다. 가상의 사례지만, 이를 통해 한은은 마음만 먹으면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 재산 국외 도피와 불법 증여 등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했다.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무역 범죄 등 실제 사례도 적지 않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외환 불법 거래 중 가상자산 이용 비중은 2020년 3%에서 지난해 52%로 급증했다.
문제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불법적인 자금세탁, 외화 유출을 모두 감시하고 차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일반적으로 퍼블릭·비허가형 블록체인에서 발행·유통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익명으로 참여 가능하고 활동에 제약이 없는 퍼블릭·비허가형 블록체인에서는 기존과 같은 중앙집중형 규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거래 기록(history)의 투명성을 강조하나, 이 거래 기록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확인(identification)이 매우 어렵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비수탁형 개인지갑은 개인과 법인이 본인확인 절차 없이도 개수 제한 없이 손쉽게 익명으로 만들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거래소로부터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비수탁형 개인지갑으로 이전된 다음에 이뤄지는 자금 이동에 대해서는 추적을 책임지는 주체 역시 불분명하다.
여러 사용자의 가상자산을 합쳐 섞은 후 이를 다시 분산 송금하는 블록체인 믹서(mixer)를 이용하면 자금 흐름 추적이 더욱 어려워진다. 생태계 확장 과정에서 퍼블릭·허가형이 퍼블릭·비허가형에 연결될 경우 규제 회피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등 여전히 많은 한계가 있다.
이병목 한은 금융경제국장은 "퍼블릭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의심 거래를 보고하고 의심스러운 활동에 대한 총괄적인 모니터링을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주체가 필요하다"며 "의심 거래 관련 이용자의 신원 파악 및 위험평가, 거래 차단 등의 업무는 블록체인 플랫폼이 독자적으로 할 수 없고 발행자 및 유통업자, 신원 인증업체, 수사당국 등 각기 다른 역할을 담당하는 여러 주체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퍼블릭 블록체인 플랫폼의 신원 확인 제도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KYC 기능이 보강된 규제 준수형 블록체인 플랫폼 역시, 이용자의 신원이 특정 거래 조건을 충족한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용자가 KYC ID 발급 후 신원정보를 변경한 상태에서 유효기간 동안 불법 거래를 하는 것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은은 은행에 준하는 자금세탁 방지 규제 준수를 위해 블록체인상에서 지갑 주소가 아닌 이용자별 온체인 활동을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기반으로 이용자의 위험을 지속해서 평가하고 관리해야 하며, 신뢰성 확보를 위해 신원 인증업체는 감독기관의 규제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비용 부담이 수반돼도 악용 방지 등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며, 이용자별 모니터링 체계 확립 후 이 시장의 효율성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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