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심한 좌우 이념 갈등을 겪은 옛 서독은 1976년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정치·교육계 인사들이 이념과 정권에 치우치지 않는 교육 지침을 만들었다. 독일 정치교육의 뿌리가 된 '보이텔스바흐협약'의 탄생으로, 지금은 유럽 전역 시민·정치교육의 원칙이 됐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정치인과 교육계 인사들이 모였지만 원칙을 세우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교사가 학생에게 정치적 관점을 주입하지 못하도록 한 강압 금지 원칙, 쟁점에 대해서는 찬반의 관점을 모두 제시하는 논쟁성의 원칙,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생 이익 우선 원칙 등 3가지에 합의했다. 학교 정치교육이 정치 현상을 그대로 알려주고 학생이 가치관에 따라 이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우리나라도 '정치교육'의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교원의 정치기본권 확대'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등 3개 교원단체가 공동선언에 나선다고 한다.
이들은 정부 반응에 힘을 얻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을 시작으로, 국정과제로 채택한 데 이어 최근엔 여당 대표까지 나서 이 법을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육활동 외 사적 영역에서까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접근이 틀린 것은 아니다. 교육공무원법,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 우리나라는 곳곳에 장치를 둬 교사의 정당 가입이나 정치 자금 후원, 선거 운동 참여, 선거 입후보를 막고 있다.
하지만 순서가 잘못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에 '좋아요'조차 누르기 두렵다는 교사들의 현실을 알리고 스스로를 정치적 금치산자로 표현하기에 앞서 수업 중립성을 철저히 분리할 수 있는지부터 살피는 게 우선이다.
학부모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근무시간 외 정치 활동 보장이라고 하나, 교사와 학생은 시간을 정해 맺고 끊는 관계가 아니다. 교사들의 정치색이 은연중 드러나거나 교실에서 편향된 발언이 나와 학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쏟아진다.
우리는 그동안 일부 교사가 수업을 빙자해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주입하는 사례를 종종 봐 왔다. 교내 마라톤대회에서 교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행동을 강요해 검찰 조사까지 받았던 6년 전 '인헌고 사태'는 여전히 논란이다.
여당과 교원단체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교사의 정당 가입·활동 등을 금지하는 국가가 한국뿐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교사들의 근무시간 내 정치 활동이나 정파적 의견 전파를 법으로 금지했고 징계 등의 조항까지 걸어놨다.
'보이텔스바흐협약'이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론되는 것도 이를 선언적 조항으로 놔두지 않았다는 데 있다. 서독 정부는 이를 지키고 이행할 수 있도록 교육계와 정치권이 나서 사안별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교육부가 '학생들이 불안정한 교육 환경에 방치될 우려가 크다'며 국회에 신중한 검토를 요청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교원단체 간에도 정치기본권을 어느 범위까지 보장할지를 두고 의견차가 남아있다면 정치 후원금 기부 등부터 우선 허용하는 단계적 확대가 대안일 수 있다.
무엇보다 '교사의 기본권 확보'를 위한 법 통과를 운운하기에 앞서 학생들을 보호할 장치가 마련됐는지 살피는 게 우선이다. '교실의 정치화'를 넘어 교권을 무너뜨리고 '교실의 정쟁화'까지 치닫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 국민과 사회의 동의부터 얻어야 한다.
배경환 사회부 차장 khba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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