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 금융이 반드시 성공하기 위한 전문가 제언
"자체 신용평가 역량 키워 기업대출 확대해야"
"부동산 대출 위주 성장에서 투자 중심으로 체질 개선 필요"
"벤처투자 위험가중치 하향 등 과감한 정책 지원을"
"은행이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을 해왔다는 국민적인 비난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지난달 10일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 참석해 앞으로 부동산 중심의 은행 영업 관행을 탈피하겠다고 밝혔다. 15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국민성장펀드는 민간과 정부가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로봇, 방위산업 등 첨단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것으로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 금융의 핵심 정책이다.
150조원 펀딩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은 금융 지주의 회장이 앞으로 부동산 담보 대출 위주의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 성장 산업과 기업 대출을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진 회장은 "(부동산) 담보 위주의 쉬운 영업의 원인은 사실 선구안이 없기 때문"이라며 "선구안을 만들기 위해 정확한 신용평가 방식을 개척해야 하고, 산업 분석에 대한 능력도 개척해야 한다. 이 부분에 매진할 것을 대통령 앞에서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도 이날 이 대통령 앞에서 "한국의 금융기관이 부동산 대출에 익숙해 돈을 벌었다"며 "이건 고쳐야 할 것 같다. 저도 반성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작년에 우리나라의 벤처투자 규모가 11조원 정도인데 예금은 2300조원에 달한다"며 부동산 대출 위주의 성장에서 투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투자 확대 위해서 평가능력 반드시 키워야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생산적 금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성장 산업과 기업에 대해서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회사의 직접 투자가 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자금 지원 대상 기업의 사업성과 회수 가능성을 평가하는 선별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 부문의 선별 능력이 향상되면 혁신·벤처기업에 대한 정교한 심사평가가 가능해지고, 그 결과 자금이 적시에 공급돼 경제 전반의 생산성 제고와 활력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된다.
기술금융은 생산적 금융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기술금융은 기업의 재무상태나 부동산 담보가 아니라 보유 기술의 가치를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자금력이 부족한 혁신형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2014년 처음 도입됐다. 2015년 60조원대였던 기술금융 잔액은 올해 상반기 307조원까지 늘었다.
기술금융이 2000년대 초반 실패했던 벤처금융과 달리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기업에 대한 평가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서정학 IBK투자증권 사장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한 세미나에서 2002년 김대중 정부 당시 IBK기업은행에서 벤처금융을 담당하며 겪었던 일을 사례로 들었다. 서 사장은 "김대중 정부 때 기술력이 우수한 벤처기업에 대해서 금융 지원을 대규모로 했는데 부실이 많이 났다"며 "손실이 큰 경우도 많았고 부실 해소를 위해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벤처금융과 달리 기술금융은 기술평가라는 일종의 안전판을 마련하고 기술 신용등급이 우수한 기업에 한해서 대출이나 투자를 해주기 시작하면서 성공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생산적 금융이 성공하기 위해서도 사업성 평가 능력과 사후 관리 체계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안전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투자 수혜를 받는 기업이 제대로 이 돈을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어야 하고, 해당 산업을 철저하게 심사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갖춘 심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는 기술금융을 생산적 금융의 한 축으로 삼고 강화하려 한다. 이를 위해 기업 평가 방식을 바꾸고 시스템을 정교화해 대출을 보다 비전 있는 기업에 집중되게 하는 등 기술금융의 질적 성장을 위해 제도를 개선하는 중이다.
생산적 금융의 확실한 정착을 위해선 정부의 제도적 지원 역시 필수다. 일본 정부는 생산적 금융에 적극적인 나라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2003년부터 생산적 금융의 일환으로 지역금융활성화를 위해 관계형 금융 확대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해왔다. 관계형 금융이란 금융회사가 기업 등과 거래할 때 신용등급과 재무비율 등 정량적 정보 외에 지속적인 거래관계, 접촉·관찰·현장 방문 등을 통해 얻은 정보로 대출 등을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계형 금융의 경우 비용 부담이 큰 편인데 일본은 정부와 상공회의소가 지역 은행을 지원해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을 도입했다.
임수강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부회장은 "지방은행이 2개 밖에 없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62개에 달하는 지방은행이 중심이 돼 금융시장이 돌아가기 때문에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지역 금융 활성화가 필수"라며 "정부가 지역 은행의 관계형 금융을 지원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비용이 절감되고 남는 재원을 더 투자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규제 풀고…선순환 구조 안착해야
생산적 금융의 실질적인 실행을 위해서는 은행은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고 벤처기업들은 자금난을 해소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특히 정부가 가계대출 조이기 정책과 더불어 은행의 벤처 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자산(RWA)을 과감하게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은 대출 자산별 위험도에 따라 위험가중치를 적용하고, RWA를 산출한다. 위험가중치가 높을수록 자본 부담이 커진다. 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규제에 따라 위험가중자산 대비 일정 비율의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위험가중치를 하향해 은행들이 첨단·벤처기업에 투자할 요인을 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권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대적으로 안전한 부동산 대출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의 원화대출금 중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은 69.6%로 2019년 말 이후 상승 추세다. 은행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은 총 1673조8000억원으로 이 중 가계 부동산담보대출(771조3000억원)이 거의 절반 수준(46.1%)이다. 최근 5년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증가했다.
은행들은 이 같은 사업 구조로 매년 최고 실적을 달성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벤처기업으로 은행 자금이 유입되기는 쉽지 않다. 실적이 잘 나오고 있는 은행들 입장에서는 비용과 연체율 리스크를 떠안을 요인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400%인 벤처 투자에 대한 위험가중치가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서 그 부분을 예를 들어 120%대 수준까지 낮추면 상대적으로 소요되는 자본이 적어진다"며 "정부가 지금처럼 주택담보대출 수요 억제책을 내면서 위험가중치를 하향 조정한다면 은행들도 수익 보존을 위해 기업들에 투자할 요인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자체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큰 과제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벤처 붐 당시 많은 투자가 이뤄졌지만 수많은 기업이 망하면서 손실도 상당했다"며 "결국 은행들이 투자할 때 어떤 기업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주요한 과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환 기자 goldfish@asiae.co.kr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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