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기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아내 탓하는 남자들이 꼭 등장한다. 지난 주말 물러난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은 갭투자(전세 낀 주택 구입)로 고가 아파트를 구입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유튜브로 공개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제 배우자가 실거주를 위해 아파트를 구입했으나 국민 여러분의 눈높이에는 한참 못 미쳤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후 갭투자를 아내가 한 일이라 책임을 돌렸다는 비판까지 일었다.
부동산 투기를 아내가 했다는 건 사실일 수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복부인(1980)'은 그 사실이 수십 년도 더 된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월급 모아 내집마련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았다. 1970년대는 고성장과 물가 폭등이 일어나던 시기였고 집값도 덩달아 치솟았다. 영화 속 여주인공 한정임은 온 가족이 평생 월세 난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산다. 이는 당시 중산층에 널리 퍼져있던 보편적 정서였다. 남편이 쥐꼬리 같은, 그러나 피땀 맺힌 월급봉투를 회사에서 받아오면 아내에게 건네는 문화가 있던 시기였다. 아내들은 그 얇은 봉투로 가정경제를 떠받쳐야 했다.
동시에 아내들은 봉투에만 의존하지 않고 뭐라도 하려 했다. 복덕방을 돌아다니고 부동산 현장 답사를 하며 정보를 모았다. 분양권 추첨 현장에선 줄을 섰다. 이런 일들은 시간만 있으면 됐다.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라는 문제의식이 존재하지도 않던 시기, 주부가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일없던 아내들은 투기 현장을 택한 게 아니라 내몰린 것이었다.
사정이야 어떻든 "아내들이 투기 현장을 휩쓸고 다녔던 건 사실이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박완서를 읽으면 답이 나온다. '낙토의 아이들(1978)'에는 지질학 전공 시간강사 '나'와 부동산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아내가 등장한다. 나는 감히 땅(지질)을 투기의 대상으로 삼아 답사나 하고 다니는 아내가 못마땅하지만, 모자란 벌이를 벌충해주는 아내의 경제적 유능함을 내심 인정한다. 아이들이 남부러움 받는 사립학교에 다닐 수 있고, 온 가족이 값비싼 외식을 할 수 있는 건 아내 덕분이다. 그는 부끄러워하면서도, 투기의 욕망이 낳은 부산물을 거절하지 않고 음미한다.
박완서의 또 다른 작품 '서울 사람들(1984)'에는 투기 방조자로서의 남편, 즉 '부부 투기 공동체'의 현실이 더 잘 드러나 있다. 주인공 찬국은 아내가 복덕방을 드나드는 걸 알고도 묵인한다. 아내의 성과가 좋지 못하자 비난을 퍼붓고 부부싸움도 했으나, 속으론 아내가 '부동산 대박'을 쳐주길 간절히 바란다. 박완서의 두 소설이 말해주는 바는 명백하다. 부동산 투기는 여성의 욕망이 아니라 중산층 보편의 욕망이었다는 것이다. '아내의 투기'가 아니라 '부부의 투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적폐청산'을 외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내로남불'로 특히 시끄러웠다. 인터넷에서는 고위 공직자들의 내로남불을 패러디한 게시물이 인기를 끌었다. 인터넷커뮤니티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부동산 투기 논란이 유독 커지는 이유는 그로 인한 경제적 해악 때문만은 아니다. 위선과 언행불일치라는 부도덕함 때문이다. 사퇴한 이 전 1차관은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 및 환수를 주장해온 사람이다. 과도한 대출은 투기라며 대출을 사실상 금지시켜놓고 정작 본인들은 대출과 갭투자로 부동산을 매집해온 권력자가 손에 꼽을 수 없이 많다.
물론 언행을 일치시키며 사는 건 무척 어렵고, 그걸 알기에 언행일치를 행하는 사람을 '성인'이라 높여 부른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대개는 그럴 수 있다고 눈 감아 준다. 그러나 무언가를 공언할 수 있고, 돈(세금)과 인력(공무원과 조직)을 동원해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다를 수밖에 없다. 부족함이 드러났을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하는 염치와 책임감이다. 몰랐다고 남 탓하지 말자. 특히 아내 탓은.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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