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서 상궁이 된 언어천재 조두대
신분·성별 초월한 국가권력의 핵심
조선의 공식적인 문자는 한자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공문서, 편지들은 모두 한자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은 한자를 제대로 쓰기는커녕 읽는 것조차 힘들었다. 양반들은 한자를 배웠지만, 그것도 남자들 뿐이었고, 대다수의 여성은 문맹으로 남았다. 그러나 오랜 역사 속에서는 여자이면서도 언어의 천재로 한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
조두대는 조선 전기의 사람으로, 원래 신분은 노비였고, 세종의 아들 중 하나인 광평대군의 하녀였다. 그러나 곧장 언어의 재능을 발휘한 조두대는 한자를 배워 능숙하게 쓸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궁녀가 되었다. 조선 시대의 궁녀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전문직 중 하나였다.
궁녀 조두대의 일상은 순탄했다.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과 가깝게 지냈고, 무엇보다 뛰어난 언어의 재능으로 범어(산스크리트어)까지 익혔다. 이런 인연으로 조두대는 세조가 불경 능엄경을 한글로 번역할 때 며느리이자 훗날 인수대비가 되는 수빈과 다른 관리들과 함께 제작에 참여했다. 이 외에도 여러 서적의 간행에 참여했으니, 진정한 언어의 천재였던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조두대의 시대는 성종이 즉위하고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부터 시작했다. 본래 유교의 나라 조선은 남녀가 유별하며 왕비는 내명부를 다스렸다. 하지만 왕이 겨우 12살이고 할머니인 대왕대비가 나라를 다스린다는 특수 상황에서 내명부와 외명부를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이 필요했으며, 정희왕후는 한자를 몰랐다. 따라서 여성이면서 한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조두대는 전언의 직책을 맡았으니, 왕비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담당했다.
결국 조두대는 왕대비의 명령을 한자로 번역하고 문서로 작성해서 승정원의 대신들에게 전달하는, 말 그대로 국가권력의 입이 되었다. 나라의 통치가 조두대의 붓끝대로 움직이게 되었다. 세조와 정희왕후와 인수대비, 그리고 성종까지 조두대를 몹시 총애하며 무수한 혜택을 내려주었다. 조두대는 궁녀가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상궁이 되었고, 마침내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될 수 있었다. 조두대의 가족들, 조카들에게까지 관직과 상이 내려졌다.
엄청난 부자가 된 조두대는 자신의 극락왕생을 빌며 절에다가 막대한 시주를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좋은 일만 있진 않았으니, 이권을 노린 수많은 아부꾼도 몰려들었다. 조두대의 가족들은 누이의 권세를 믿고 관리들을 업신여길 정도로 횡포를 부렸으며, 대간은 조두대가 여러 비리에 관여하며 여알(女謁), 곧 여자가 정치에 관여했다는 말로 비판했다.
그런데도 조두대의 역할은 공식 기록에는 대단히 단편적으로만 남아있고, 두루뭉술하게 기술되었을 뿐 자세한 행적은 남아있지 않는다. 심지어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그만두면서 조두대의 권력도 한풀 꺾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조두대가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다. 아마 여성이었고, 천민이었으며, 정치에 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조두대의 힘을 증명해준 것은 연산군이었다. 그는 사화를 일으켜서 어머니 폐비 윤씨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빌미로 수많은 사람의 무덤을 파헤쳤는데, 그중 하나가 궁녀 조두대였다. 비록 불행한 일이긴 하나, 다른 조정 신하들과 나란히 부관참시당했을 정도로 조두대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타고난 언어의 재능만으로 신분도 성별도 넘어섰고, 마침내 나라를 움직였던 진정한 비선 실세였다.
이한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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