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담보 중심 신용평가, 첨단산업엔 ‘진입장벽’
기술력 반영한 평가모델과 금산분리 완화 병행돼야
RWA 규제 완화는 바젤Ⅲ 제약으로 ‘현실적 한계’
새 정부 출범 이후 5대 은행을 중심으로 부동산대출을 줄이고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대출 잔액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생산적 금융'의 본래 취지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생산적 금융의 핵심은 자금이 부동산 대신 실물경제와 미래산업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술력·혁신성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이 필요하며 동시에 금융회사의 산업 투자를 막고 있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전통산업 중심 평가 구조…혁신성 반영한 신용평가 모델 시급
현재 기업대출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만든 신용평가 기준에 따라 이뤄진다. 이 기준은 주로 재무지표, 부동산 담보, 부채비율 등 전통적인 지표에 기반한다. 결국 기술력이나 성장 가능성보다는 현재의 재무건전성이 대출의 주요 판단 기준이 되는 구조다.
한 시중은행 여신 담당자는 "혁신기업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아 부채비율이 높고 이익이나 자본금 규모가 작다"며 "이런 구조에서는 대출 승인이 어렵고 승인돼도 금리나 한도 조건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통산업 중심의 신용평가 구조는 첨단산업·벤처기업·스타트업 등 성장형 기업에는 명백한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은행권은 생산적 금융을 확산하려면 혁신기업의 비재무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개인대출은 민간 신용평가사의 신용점수를 기반으로 개인신용평가모델(CSS)을 활용하지만 기업대출은 외부 신용평가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채 발행 시 공개되는 신용등급 평가는 대출 심사와는 관점이 달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이에 은행들은 각자 자체적으로 기업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이 모델은 CSS와 비슷한 조건을 취합하지만 재무정보·부도율·산업위험 등을 자체 산식으로 반영한다. 기업 신용평가 모델은 각 은행의 여신 정책을 반영하고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가늠할 수 있기에 영업비밀로 취급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은행별로 편차가 커 비효율적이며 혁신기업의 기술 경쟁력이나 사업 성장성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금융업계는 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하려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은행마다 기업여신 정책이 다르기 때문에 신용평가 모델을 개별적으로 개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태스크포스(TF)를 만들거나, 국책연구기관이 공통된 평가 프레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첨단산업 투자 막는 '금산분리'…완화 절실
신용평가 한계가 혁신기업 대출의 벽이라면 금산분리 규제는 산업투자의 족쇄로 지목된다. 금산분리는 금융회사가 일반기업을, 일반기업이 금융회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은행이 기업을 소유하면 자금을 빌미로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고 반대로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면 고객 예금을 기업대출에 함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1982년 도입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산업 구조가 빠르게 바뀐 지금 금산분리 규제가 오히려 기업 자금조달과 금융사의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커졌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경우 기업은 내부 유보금이나 외부 투자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산분리 규제로 인해 은행·보험사는 일반기업의 의결권 있는 지분을 각각 15%, 20%까지만 취득할 수 있다"며 "금융회사가 혁신산업에 투자하려면 금산분리 완화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금산분리 규제를 개선하면 가장 먼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규제도 완화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일반 지주회사는 금융 자회사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신사업 투자를 위해 제한적으로 CVC 설립이 가능하지만 지주사 산하 CVC는 반드시 100% 자회사 구조로 설립해야 한다. 게다가 투자 재원도 외부에서 40%까지만 조달할 수 있다. 해외 투자는 CVC 총자산의 20% 안팎으로만 허용된다. 이 같은 구조는 글로벌 벤처투자 경쟁에서 국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위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은 단순히 부동산 대신 기업대출을 확대하자는 개념이 아니다"며 "지방 인프라 개발, 대기업 설비투자, 인수금융 등 국내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분야에 자금이 흘러가야 진정한 생산적 금융"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규제 완화 의지를 드러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점점 대규모 투자를 일으켜야 하는 상황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합리화·개선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관계 부처와 협의해 실용적인 방안들을 강구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기업대출 RWA 완화는 '현실적 한계'…IMF·금융위기 영향
다만 금융권이 꾸준히 요구해온 기업대출 위험가중자산(RWA) 규제 완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일부 규제 완화를 발표했지만 대부분 '투자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 비상장주식의 RWA는 기존 400%에서 250%로, 정책목적 펀드 투자는 100%로 낮췄지만 기업대출 RWA는 현행 기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비상장주식이나 펀드 투자에 대해서는 우리가 바젤Ⅲ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어 완화 여지가 있지만 기업대출 RWA는 이미 국제기준에 부합해 추가 완화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이 기업대출 규제 완화에 신중한 이유는 건전성 규제의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RWA 규제는 은행의 자본건전성을 관리하기 위한 국제 기준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가 '바젤Ⅲ' 체계를 도입하며 강화됐다. 바젤Ⅲ는 보통주 자본비율(CET1) 4.5%, 기본자본비율(Tier1) 6%, 총자본비율(BIS) 8% 이상 유지를 요구한다. 우리나라는 이보다 더 엄격하게 2023년부터 은행지주 산하 금융회사에 연결 기준 CET1 12~13% 이상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트라우마 영향도 있다. 당시 은행의 부실한 자본구조가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정부는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을 대폭 강화했다. 이때 정부가 은행에 요구한 것은 자기자본 확충과 위험가중자산 축소였다. 이 일환으로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 심사 기준이 대폭 강화된 것이다. 그 결과 은행은 기업의 재무상태·상환능력·담보(부동산) 중심의 평가 체계를 구축하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적 구조가 오늘날 혁신산업 대출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금융업계에서는 "바젤Ⅲ 이후 과도하게 강화된 규제가 혁신기업 대출과 투자를 막고 있다"며 정부가 비상장주식·벤처·펀드 투자 외에도 보다 폭넓은 규제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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