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적극 나서서 규제 푸는 실험 벌여
블록체인·가상자산 新 성장 도구로 판단
기업에 각종 혜택 주는 경제 거점 '프리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는 비트코인으로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정부 인가를 받은 중개 플랫폼이 암호화폐를 현지 통화인 디르함(AED)으로 바꿔 대금을 정산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고가 부동산을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쪼개 여러 명이 지분을 나눠 갖는 조각투자 형태도 확산되고 있다.
가상자산 등 신산업 적극 수용…두바이로 돈이 모인다
두바이 토지청은 최근 부동산을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토큰'으로 쪼개 사고팔 수 있는 토큰화 프로젝트를 샌드박스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거래 비용을 낮추고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전 세계에 흩어진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시청 민원이나 법원 서류 발급 등 각종 공공 서비스 수수료도 가상자산으로 납부할 수 있다. 지난 5월 두바이 재무부가 가상자산 거래소 '크립토닷컴'과 협약을 맺고 결제 시스템을 공식 도입하면서 가능해졌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정책에서부터 두바이와 한국의 신산업에 대한 온도 차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두바이 정부는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을 '위험한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성장 도구'로 본다. 재무부와 토지청이 앞장서 규제 대신 실험을 택하면서 2033년엔 토큰화된 부동산 시장 규모가 16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UAE의 7개 토후국 중 하나인 두바이의 규제 해소 실험은 그칠 줄 모른다. '사막의 기적'이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 두바이는 왕정국가라는 안정적인 리더십 아래 외국인 투자를 독려하고 성장을 돕는 친기업 정책을 펼쳐왔다. 2017년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장관직을 신설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아흐마드 빈 술라이멘(왼쪽에서 두번째) DMCC 회장이 지난달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과 업무협약을 맺은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보경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두바이 재무부가 최근 비트코인 규제까지 푼 건 규제 해소 효과를 잘 알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과 해외 자본이 상륙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인구까지 덩달아 확대됐다. 시장이 커진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재계가 '메가 샌드박스'를 요청한 가장 큰 이유도 기업이 몰리는 곳에 일자리가 생기고, 일자리가 생기면 사람이 몰리는 선순환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두바이는 메가 샌드박스 효과의 전형인 셈이다. 두바이 인구는 지난 8월 40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10명 중 6명은 25~44세의 젊은 피다. 이곳에는 백만장자 8만1200명이 살고 있고 부자들이 가장 빠르게 유입되는 도시로 꼽히기도 했다.
산업별 프리존에 기업 유치 활발…"장기 비전으로 운영"
규제 없는 두바이 경제의 핵심 축은 30여개 프리존(Free Zone)이다. 전 세계 기업들이 몰려 클러스터를 이루며 디지털 경제·금융·무역 등 주요 산업별로 구획돼 혁신 실험실과 글로벌 기업 유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프리존은 외국 기업이 세금 부담 없이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는 경제특구로 항만·공항·금융·IT 등 분야별로 나뉘고 자체 법과 행정을 갖춘 독립 구역처럼 운영된다.
두바이 정부는 2015년 '프리존위원회'를 만들어 전략과 인허가 기준을 조정했다. 프리존 내 기업은 외국인 100% 지분 소유가 가능하고 이익과 자본을 전액 해외로 송금할 수 있다. 관세와 법인세 면제, 영어 기반의 행정 절차, 프리존 관리청의 원스톱 인허가 서비스도 보장된다.
두바이의 프리존은 왕족 인사 간 경쟁의 무대이기도 하다. 각 프리존을 맡은 왕족과 유력 가문은 직접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산업 생태계를 설계한다. 프리존은 통치력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탄생은 왕족과 정부 주도로 이뤄졌지만 생존은 각자의 몫이다. 항만·공항·금융·정보기술 등으로 특화된 프리존들은 투자 인센티브와 행정 효율을 높이며 서로 경쟁하고 있다.
프리존은 항만형을 넘어 산업별로 속속 추가됐다. 금융 허브 두바이국제금융센터(DIFC)는 영국식 커먼로(Common Law)를 적용한 독립 법체계와 외국인 100% 지분 보유, 법인세 면제 등으로 글로벌 금융사와 로펌·회계법인이 몰려들었다. 공항과 맞닿은 두바이공항 프리존(DAFZ)은 전자부품과 항공 물류 기업의 거점이 됐고, 2002년 만들어진 DMCC는 2만6000개 기업이 입주한 최대 프리존으로 성장했다.
국제자유무역청(IFZA)은 최근에 두바이로 편입된 프리존이다. 2018년 UAE의 또 다른 토후국 중 하나인 푸자이라에 처음 설립됐다가 2020년 두바이실리콘오아시스(DSO) 프리존과 협력해 두바이로 본사를 이전했다.
두바이를 대표하는 프리존인 두바이복합상품센터(DMCC)의 아흐마드 빈 술라이멘 회장은 "프리존도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 비전으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DMCC는 금·다이아몬드 중심의 전통 무역에서 블록체인, 게임, 웹3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며 새로운 산업 생태계로 확장하고 있다.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은 DIFC에는 올 상반기 1081개 기업이 신규 등록했다. 전체 입주 기업은 금융사·로펌·회계법인·컨설팅사를 포함해 7700개를 돌파했다. DIFC 설립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두바이는 규제 대신 자율을, 중앙집중 대신 분권형 실험을 선택했다.
두바이 시내에선 여전히 고층 빌딩 공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빼곡한 마천루 사이로 또 다른 프리존의 랜드마크가 올라가고 있었다. 두바이는 세계의 기업과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경제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두바이(UAE)=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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