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인기 짝퉁도 급증
중국발 위조품 동남아·미국으로 흩어져
중국 수사 시스템 구조적 한계
“두더지잡기식이라도 위조품 막아야"
K브랜드 분쟁 대응 지원액도 제한적
#어둠이 낮게 깔린 지난달 28일 오후 7시 중국 광둥성 불산시 외곽의 한 창고 앞. 중국 공안 4명과 지식재산권(IP) 단속 대행업체 'IP SPACE' 직원 2명이 차량 시동을 끄고 내부 동태를 살폈다. 진입 신호가 떨어지자 창고 문이 열렸고, 삼삼오오 모여 있던 10여명의 작업자는 놀란 듯 손을 멈췄다. 공안이 소장을 내밀며 "위조품 제조 관련 형사 단속을 진행하겠다"고 밝히자 현장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얼어붙었다. 큰 통에 담아둔 하얀 크림을 용기에 짜고 있던 직원은 작업을 멈췄다.
공장 한쪽에는 중국어가 쓰여 있는 박스 수백 개가 쌓여 있었다. 대행업체 직원들은 빠르게 박스를 뜯어 정품과 비교해 위조품 여부를 확인했고 공안은 진품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를 독촉했다. 작업장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성은 잠시 침묵하다 자포자기한 듯 한국 화장품 브랜드 5개 제품을 위조했다고 시인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7시 중국 광둥성 불산시 외곽 창고에서 확보한 위조품 박스들. 위조품들은 공안이 현장에서 압수해 자체적으로 폐기한다. 다만 보안을 이유로 외부에 폐기 과정이 공개되지는 않는다. 직접 폐기가 됐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IP SPACE 제공.
이날 현장에서 확인한 짝퉁 화장품은 5만6000점에 달하며 10억원가량 규모다. 해당 위조품은 공안이 모두 압수했다. 막대한 수량 탓에 창고를 비우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밥상 차려줘야 숟가락 뜨는 中 공안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 위조품의 주요 생산지인 중국에서 최근 가장 많이 적발되는 짝퉁은 K뷰티 제품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전후 중국에서는 '반한(反韓) 감정' 여파로 K뷰티 위조품 적발은 드물었지만 최근 수십억 원대 규모의 위조품 창고가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다.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위조품 생산이 급증한 것이다.
여기서 만들어진 짝퉁은 정품과 같은 모습으로 K뷰티 주요 수출국인 동남아시아와 미국,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국내 브랜드가 공식 수출하지 않는 '라자다'와 '쇼피' 등 동남아 e커머스 채널에서 K뷰티 제품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 이유다. 미국 아마존과 이베이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위조품이 유통이 이뤄지고 있다. 대형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정품과 구별을 위해 QR코드를 삽입해도 즉시 복제돼 엉성한 부분을 찾을 수 없을 때도 있다"며 "주요 시장에 짝퉁 제품이 팔리는 것을 인지하고 중국 현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7시 중국 광둥성 불산시 외곽 창고에서 확보한 위조품 박스들. 공안과 함께 온 작업자들이 박스를 일일이 열어 위조품 개수를 확인하고 있다. 정품과 대조하는 작업부터 위조품 규모를 확인하는 것까지 모두 수잡업으로 이뤄진다. IP SPACE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문제는 중국 내 현지 단속이다. K뷰티 위조품 생산자는 20~30평 규모의 소규모 작업장에서 가내수공업 형태로 제품을 생산한다. 대규모 제조 시설은 창고에서 용기에 내용물을 채우는 비교적 간단한 과정으로, 위조품 사업자들의 공장 위치를 특정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중국 공안의 협조도 미온적이다. 규모가 작은 범죄에 대해서는 지방 공무원과 함께 행정단속을 하는데, 최근에는 위조품 액수가 점점 커져 공안의 승인과 참여가 필요한 형사 단속을 해야 한다. 공안은 첩보나 신고를 받고 직접 수사를 하기보다 브랜드사가 제출한 정보를 가지고 해당 사업자를 잡는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한국 브랜드사들은 수사부터 검거 전까지의 전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이 생산자가 위조품을 만드는 것부터 급습 장소와 시간까지 공안에 알려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확실한 증거와 위치정보 없이 중국 공안은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현장에 가면 본인 브랜드 외에 다른 브랜드 위조품들이 다수 발견되지만, 중국에서는 신고가 들어온 위조품에 대해서만 압수하고 처벌하고 있다"고 전했다.
처벌 강도도 낮다. 인체 건강과 직결되는 식품과 의약품 위조에 대해서는 중국에서도 중형이 선고되지만, 화장품과 의류 등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최근 중국 공안에 적발된 사업자 대부분이 초범인 경우가 많아 현장에서 적발돼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으로 전해진다. 석방 이후 또다시 위조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위조품 생산의 최대 형량은 7년이다.
위조품이 많이 유통되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인도와 동남아 국가는 세관에서 위조품을 적발하는 세밀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않다. IP SPACE의 김기덕 대표는 "태국 정도를 제외하면 단속 시스템이 중국보다 더 열악해 결국 원천인 중국에서 해결을 봐야 한다"며 "두더지 잡기식 단속이라도 브랜드의 가품을 만들면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7시, 중국 광둥성 불산시 외곽의 한 창고에서 벌어진 위조품 작업장 급습 현장.위조품 규모가 클수록 공안 4~5명이 동행하고, 소규모일 경우 1~2명만 출동한다.대부분 경제사범이라 큰 저항은 없지만, 일부는 칼을 들거나 달아나는 등 돌발상황이 잦다. IP SPACE 제공.
원본보기 아이콘지식재산처 한 해 80건 소송 지원…"지원 규모 한정"
한국지식재산보호원은 K브랜드가 해외에서 겪는 IP 분쟁 대응에 대비할 수 있도록 'K브랜드 분쟁 대응 전략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위조상품을 만들고 유통한 사업자에 대해 행정단속이나 소송전략, 상표권 무단선점자에 대한 역공격 대응 전략 지원 등의 사업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을 통해 지원받는 기업은 연간 80여곳에 그친다. 예산 부족으로 선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상표 무단 선점 대응 관련한 정부의 연간 지원금액은 4000만원가량이다. 지식재산보호원 관계자는 "예산이 정해져 있어 모든 기업을 지원하기는 어렵다"며 "분쟁 대응 전략 지원 사업 규모는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으며 점진적으로 확대 중"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K뷰티 브랜드가 스스로 IP를 보호하는 데 관심을 갖는 것이 최선의 방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세관 등록과 상표권 등록은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세관에 상표등록증을 올려두면 세관에서 의심 제품을 확인했을 경우 브랜드 측에 위조품 여부를 확인할 기회가 생기면서 현지 유통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 직접 진출하지 않더라도 상표권을 미리 등록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중국에서 상표권 등록을 선점당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중국 현지에서 소송을 통해 상표권을 되찾는 데 최소 1년가량 걸린다. 중국 사업자가 1심 결과에 불복하면 소송 기간은 3~5년으로 늘어날 수 있다.
김 대표는 "K브랜드들은 현재 성장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느라 IP 보호에 소홀한 측면이 있다"며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짝퉁은 중국이나 국내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중국 사업을 앞으로 안 하겠다는 이유로 IP 보호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꼭 봐야할 주요뉴스
"하루 한 잔만 마셔도 혈당·혈압 싹 잡는다"… '...
마스크영역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눈이 휘둥그레, 딴 세상이 펼쳐진다"…'보석' 같은 공간들 [world photo]](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03110155489387_1761873354.jpg)




![[단독]2년 지나 만드는 '오송 백서'…국정조사·정부대응 다 담긴다](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4011717052533311_1705478726.jpg)



![[대만칩통신]TSMC 타이중 신공장 2나노→1.4나노 확정…첨단 공정 구축 박차](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03013093187884_1761797371.jpg)
![[과학을읽다]탄소세에 쏠리는 관심, 누가 기후의 값을 치르는가](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0311010458283A.jpg)
![[기자수첩]공수처, 존재 이유를 증명하라](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0311070988175A.jpg)
![[초동시각]F학점 받은 국정감사](https://cwcontent.asiae.co.kr/asiaresize/269/2025110311152133882A.jpg)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