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아 한국배구연맹 심판위원장 인터뷰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지도자 전향
심판 시절, 날카로운 판정으로 유명세
프로배구 원년부터 20년 넘게 심판 활동
선수도 모르는 규칙으로 판정 항의 많아
국내 배구 리그 필드 돌아갈 것
전영아 한국배구연맹 심판위원장은 프로배구가 출범한 2005년부터 20년 넘게 코트를 지킨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주·부심 919경기, 선심 83경기'라는 역사를 쓰며 올해 6월에는 강주희 전 위원장에 이은 두 번째 여성 심판위원장으로 선발됐다.
심판으로 활동할 당시 전 위원장은 작은 체구와 온화한 미소에도 불구하고 코트만 들어가면 돌변하는 날카로운 판정으로 유명세를 날렸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코트 위의 포청천'이다. 그간의 시간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매 경기 많은 관심을 받는 여자 프로배구에서 승패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정을 내릴 때면 언제나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따랐다. 그럼에도 그는 '언젠가 다시 필드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를 만나 그간의 '배구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청소년 시절, 배구 청소년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선수에서 심판으로 전향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탁구 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탁구를 시작하면서 처음 운동에 발을 들였다. 그러다 아버지가 '탁구는 선수 생명이 짧으니 더 오래 할 수 있는 배구를 해보자'라고 권유해 종목을 바꾸게 됐다. 그렇게 배구를 시작해 정말 열심히 뛰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내가 배구만 하느라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배구를 하면서도 늘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한양대 경기지도학과에 입학했다. 내 선택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당시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심판이 돼보니 선수로 뛸 때는 보지 못했으나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있나.
▲심판이 되면서 선수 때는 알지 못했던 수많은 규칙과 디테일을 알게 됐다. 경기를 직접 뛰는 선수들도 생각보다 세부적인 규칙까지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배구에서 센터라인 침범 반칙으로 판단되려면 발이 5㎝ 규격의 센터라인을 완전히 넘어가야 한다. 만약 발이 라인에 조금이라도 걸쳤다면 반칙이 아니다. 이런 세부적인 내용을 잘 모르고 반칙을 선언해달라고 항의해 곤란한 경우가 매우 많았다. 개인적으로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라면, 반드시 규칙의 세세한 내용을 다 숙지했으면 좋겠다.
-선수는 잘 알지 못하는 규칙들로 판정 논란에 휘말린 적도 많을 것 같다.
▲국제룰과 국내룰의 차이로 인해 제대로 판정하고도 경기 중 거세게 항의받고, 관련 영상이 '짤'로 돌아다닌 적도 있다. 2021년 흥국생명과 GS칼텍스 경기였는데, 브로커 아웃에 성공한 김연경 선수가 로컬룰인 '라스트 터치'에 적용돼 득점을 인정받지 못하고 실점 처리된 적이 있다. 국제룰은 브로커 터치 아웃 상황에서 무조건 공격자의 득점을 인정하지만, 로컬룰은 최종적으로 누구의 손을 맞고 공이 아웃됐는지를 따져 최종 터치자에게 반칙을 선언한다. 당시 오랜 유럽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김연경 선수가 로컬룰을 알지 못해 생겨난 에피소드였다고 생각한다.
-경기 규칙이 매우 많고 세부적인 규정이 시간이 흐르며 바뀌기도 할 텐데, 숙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경기 규칙이 4년마다, 이르면 2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심판은 끊임없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규칙서·케이스북·가이드라인 3가지를 모두 보면서 실제 경기에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해야 하는 양도 방대하다. 또 해당 경기에서 판정으로 문제가 된 부분이 있다면 경기가 끝난 후에 비디오 클립을 돌려보며 어떤 점이 논란이 됐는지를 다시 분석한다. 심판에게는 숙명 같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반칙 여부를 육안으로 판단하기 힘든 상황이 왔을 때 떠올리는 자신만의 판단 원칙이 있나.
▲첫 번째로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쌓인 나만의 감각을 믿는 편이다. 그걸로 해결이 안 되면 두 번째로 부심 등 팀원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최종적으로는 비디오를 통해 판독하면 된다. 비디오 판독으로도 걸러내지 못하는 걸 '현장 오심'이라고 하는데, 현장 오심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부분들은 고도의 판단력과 집중력, 순발력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두루 살피고 판단한다. 미세한 떨림과 소리, 선수들의 표정까지 전부 본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는 늘 '서두르지 말자'라고 다짐한다. 반칙이 발생하면 일단 휘슬을 불되, 판정을 내리기 전까지 1~2초 찰나에 선수들의 표정과 팀원들의 반응 등을 다시 종합해 최종적으로 판단한다.
-심판으로서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언제인가.
▲경기 중에는 비디오 판독으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는데, 이런 장면들이 TV 생중계를 통해 그대로 노출되고 논란으로 번질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얼마 전에 흥국생명의 외국인 코치가 정관장 감독에게 비아냥거리는 장면이 TV를 통해 방송된 적이 있었다. 해당 경기의 부심으로 있었는데, 경기 당시에는 그 코치가 내 등 뒤에서 그런 행동을 했기에 전혀 알지 못했다. 이후 TV를 통해 알려지면서 심판진이 코치의 무례한 행동에 주의를 주거나 제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들었다. 경기 중에는 챌린지 신청도 없었고 아무도 몰랐던 부분들이 TV를 통해 리플레이되면서 드러나는 것이 가장 난처한 것 같다.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국내 경기와 다른 점이 있나.
▲문화 차이에 따른 선수들의 감정 표현 방식이 가장 크게 다르다. 작년에 이란 남자팀 경기 심판으로 나갔는데, 항의도 매우 거칠고 어필도 공격적이어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국내 경기에선 흔하지 않은 할리우드 액션까지 자주 나왔다. 이럴 경우엔 심판으로서 상황에 맞는 다른 대응책을 쓴다. 예를 들어 액션이 과한 팀의 경우, 선수의 작은 제스처라도 자연스러운 액션인 건지, 의도적인 건지를 더 면밀히 따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 배구계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국내 배구계에 주어진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어떤 종목이든 국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국민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배구의 경우, 김연경이라는 스타 선수의 활약과 그로 인한 국제 경기에서의 좋은 성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우려되는 점은 현재 김연경 선수의 은퇴와 함께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이런 인기가 쭉 이어질 것이라고 단언하지 못하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한국 여성 배구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급선무인 것 같다.
-여전히 남성이 주류라는 인식이 강한 스포츠계에서 여성으로서 겪은 고충은 없었나.
▲아직도 남자부 경기에는 여성 주심을 투입하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심판들이 남성 심판들과 비교해 출전할 수 있는 경기 수가 훨씬 적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늦게 심판을 시작했는데도 더 빠른 속도로 진급하는 경우를 매우 많이 봤다. 사실 여자팀 경기의 랠리가 남자팀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더 높은 집중력과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다. 억울하다기보다는 더 뛰어난 심판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향후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다면.
▲가깝게는 올 시즌을 무탈하게 잘 마치고 싶고, 멀게는 현재는 필드를 떠나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필드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프로 배구 원년부터 20년 넘게 심판으로 활동한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이 가장 큰 자부심 중 하나다. 국제배구연맹(FIVB) 심판으로서는 VNL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 굵직굵직한 대회에 배정받아 나가고 싶다.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심판으로서 명예롭게 은퇴하는 게 꿈이 아닐까 싶다. 심판이라는 큰 조직을 생각했을 땐 '공정'이라는 가치 위에서 선수와 팬이 믿을 수 있는 신뢰감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건강했으면 좋겠다.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잘 관리하면서 오래도록 활동하고 싶다.
▶전영아 한국배구연맹 심판위원장은
프로 배구 원년부터 올해까지 심판으로 활동한 유일한 인물로, 여성으로는 최초로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유일하게 남자부 경기에 주심으로 투입되기도 했다. 2013-2014시즌에는 V리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심판상을 받았다. 올해 6월, 전임 최재효 위원장 직전에 심판진을 총괄했던 강주희 전 위원장 이후 두 번째 여성 심판위원장으로 선발됐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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