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색깔 차이로 황남동 120호분 아래 목곽묘 발견
최고(最古) 금동관·완전 갑옷 출토

경주 황남동 120호분 목곽묘 발굴 기자간담회 현장

경주 황남동 120호분 목곽묘 발굴 기자간담회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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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비가 그친 경주 황남동 120호분. 땅을 한 겹 더 파 내려가자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영화 '파묘'에서처럼 밑에 다른 무덤이 있었다.


"지층에서 다른 색의 흙이 나왔어요. 단면을 봤더니 위쪽에 쌓인 흙과 결이 다르더라고요." 이종훈 국가유산청 역사유적정책관의 회고다. 지난해 황남동 120호분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 하부를 조사하던 중 토층에서 미세한 차이를 발견했다. 다시 발굴에 착수한 결과, 1600년간 숨어 있던 또 다른 무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유산청은 20일 경주시와 함께 신라 왕경 핵심 유적 복원 정비사업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발굴한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를 최초로 공개했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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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목곽분에 앞서 조성된 목곽묘(덧널무덤)다. 내부에서 신라 왕경 최고(最古) 금동관과 사람·말 전신 갑옷, 대형 철제 무기 등이 확인됐다. 골격과 치아 등으로 보아 주곽(主槨)의 주인은 키 160~165㎝, 30대 전후 남성이다. 부곽(副槨)엔 시종으로 보이는 인골이 순장됐다.

"조금만 늦었으면 토양 산화로 많은 유물이 사라질 수 있었어요. 지금 발견된 건 기적이에요." 이민형 신라문화유산연구원 팀장의 말이다.


다만 금동관만큼은 달랐다. 부식되지 않는 특성 덕분에 1600년이 지난 지금도 금빛 광택을 잃지 않고 있었다.


박준현 부경대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재열 국가유산진흥원 팀장 등 금속공예 전문가들은 신라가 고대국가로 도약하던 5세기 전반 제작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모관 형태의 장식 일부나 문양, 기술 수준으로 보아 신라 왕경 중심부에서 제작된 초기 금동관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큽니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 주곽의 주인은 키 160~165㎝, 30대 전후 남성으로 추정된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 주곽의 주인은 키 160~165㎝, 30대 전후 남성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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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정책관은 "신라 지배층의 금속공예 기술 실체를 밝혀낼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신라 왕경에서 출토된 금동관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입니다. 신라 왕실의 위세와 권력을 상징하는 귀중한 유물이에요."


사람과 말의 전신 갑옷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나왔다. 특히 경주 쪽샘지구 C10호분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마갑(馬甲·말의 갑옷)은 5세기 전후 신라의 중장기병 실체와 강력한 군사력을 입증하는 귀중한 유물로 주목받는다.


"사람과 말의 전신 갑옷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나온 사례는 극히 드뭅니다. 특히 경량화를 위해 일부 철편 대신 가죽 소찰을 사용한 점은 당시 무기 제작 기술의 진화를 보여주는 지표라고 봐도 무방해요."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금동관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금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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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현 연구사의 설명이다. 투구와 대도(大刀) 등 대형 철제 무기까지 함께 출토돼 무덤 주인을 단순한 전사나 하급 병력이 아닌, 최상위 장수 계층 인물로 추정한다. 이민형 연구원도 같은 생각이다. "쪽샘유적 C10호분보다 구조적으로 더 정제된 형태입니다. 갑옷의 등급만 봐도 이 무덤 주인은 상위권 장수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무덤 위에는 왜 다른 무덤이 조성됐을까. 심현철 계명대 사학과 교수는 사회 구조적 전환이 물리적으로 표현된 사례로 봤다. "과거의 무덤 위에 새로운 양식의 무덤을 겹치듯 조성한 건 권력 승계나 상징적 지우기일 수 있어요."


목곽묘에서 적석목곽분으로의 전환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신라 고분 양식 변화가 물리적 증거로 처음 입증됐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번 발굴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번 발굴은 단순히 새로운 무덤을 발견했다는 의미를 넘어, 신라의 무덤 양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환기적 사례입니다. 특히 출토된 갑옷·투구 일체는 쪽샘 C10호분과 함께 신라 중장기병 연구의 핵심 자료가 될 것입니다." 심현철 교수도 "신라사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예견했다.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말 갑옷

경주 황남동 1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말 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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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청은 이번 성과를 '2025년 APEC 정상회의' 기간에 맞춰 국민과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공개한다.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발굴 현장을 개방하고,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신라월성연구센터에서 주요 출토 유물을 전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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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처리 중인 유골과 유물에선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주인의 정체가 더 명확히 밝혀질 수 있고, 갑옷 구조 연구로 당시 군사 체계가 복원될 수도 있다. 경주의 땅은 여전히 묻혀 있던 고대의 흔적을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내놓고 있다.


경주=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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