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유동성 4400조원…17개월 만에 최대 증가 폭
美 돈풀기 신호…10·15 대책으로 부동산 자금차단 나서
초강력 부동산 대책, 유동성 앞엔 무용지물?
"유동성은 늘 규제 이긴다"…비규제자산으로 쏠림 조짐
미국 중앙은행이 양적 긴축(QT·시중 유동성 축소) 중단을 예고한 가운데 우리 정부는 부동산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대출 규제와 규제지역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집값의 가장 큰 변수인 유동성 회복이 본격화되기 전에 부동산 시장을 차단하겠다는 선제 조치지만, 실제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시중 부동 자금이 금리 인하 기조 속에 규제 사각지대인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시장으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돈 다시 돈다…파월, "몇 달 내 양적 긴축 중단" 시사
19일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통화 및 유동성' 통계에 따르면 집값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광의통화(M2 기준·평잔)는 지난 8월 4400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8.3% 증가했다. 10년 평균 증가율(7.3%)을 웃도는 수준이다. 전월 대비로는 1.3%(55조8000억원) 늘어 증가율과 증가 폭 모두 17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은행 시스템 내 준비금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대차대조표 축소(양적 긴축)를 중단하겠다"며 "그 시점이 몇 달 내에 올 수 있다"고 밝혔다. 양적 긴축은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하면서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QE)'의 반대 정책이다. 파월 의장의 발언은 연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며 시중에 자금이 더 풀릴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선 통화·금리 흐름상 한국은행도 결국 금리 인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수년간 통계를 보면, 대체 투자처로 자금이 몰리기 쉬운 부동산 시장은 유동성이 팽창하면 수개월 시차를 두고 매매가나 전세가 상승으로 이어져 왔다. 이에 우리 정부는 풀린 자금이 국내 부동산으로 쏠릴 가능성을 우려해 지난 15일 선제 대응에 나섰다. 9·7 공급대책 이후 수도권 거래와 가격이 급등 조짐을 보이던 시점에 서울 전역 및 경기 12개 지역 토지거래허구역 지정과 15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을 제한하는 고강도 규제를 동시에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부동산에 잠기는 비생산적 유동성을 줄이고, 돈이 산업·신성장투자 등 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겠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유동성은 늘 규제를 이긴다"…비규제 틈새시장에 불붙나
그러나 유동성이 정부 의도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유진투자증권 대체투자분석팀은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강력한 수요 억제책이 시행됐지만,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흐름을 막지 못했다"며 "이번에도 거래량 감소는 불가피하나 당시보다 주택 공급 여건이 더욱 열악한 상황을 고려하면 상승 흐름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글로벌 금리 인하 기조가 지속되는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정부 입장에서 당장 통제가 가능한 수요 측면의 규제 카드를 꺼내 드는 것은 예상 가능한 수순"이라면서도 "언제나 유동성이 규제를 이겨왔던 것 또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했다. 정부가 의도한 대로 부동산시장 전반의 과열을 잡기 어려운 이유는 자금이 규제가 덜한 자산군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2021년 주택 규제가 강화되자 인근 비규제 지역으로 거래가 몰려 가격이 급등한 전례가 있다.
이번 10·15 대책 핵심 타깃도 아파트에 집중돼 있다. 오피스텔은 이번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아파트 대출을 조이더라도 그 자금이 오피스텔·상업용 부동산으로 옮겨가면 정책 효과는 반감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벌써 '10·15 규제로 인한 반사이익 예상 지역'과 '토허구역 대장 오피스텔 리스트' 등이 확산하고 있다.
오피스텔은 투기 자금을 막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실거주 의무에서 면제돼 갭투자가 가능하다. 오피스텔은 1년 전매제한 정도 외엔 특별한 규제가 없다. 토허구역 내 상가나 오피스텔 등 비주택 담보인정비율도 기존대로 높은 수준으로 적용해 아파트와 달리 대출의 숨통을 열어뒀다. 수십억원대 초고가 오피스텔인 도곡동 타워팰리스, 송파 시그니엘 레지던트 등이 대출 규제 및 실거주 의무에서 모두 예외인 것이다. 경매 시장 또한 규제 빈틈을 드러냈다. 경매로 나온 아파트나 빌라는 토지거래 허가 의무가 적용되지 않으며 심지어 규제지역 내 물건도 실거주 의무 없이 낙찰받을 수 있다.
이러한 규제 방식은 지역 간 형평성 문제를 심화시켰다. 서울 도봉·강북·노원구 등은 여전히 3년 전 집값도 회복하지 못했고 서울 평균의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서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남권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았다. 반면 초고가 오피스텔 등은 핵심 규제에서 빠지며 고소득층 중심의 재산권만 보호받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노·도·강 주민들 사이에선 "배은망덕한 민주당"이라는 원망이 터져 나온다.
정부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한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 백브리핑에서 "일부 지역만 제외할 경우 상승세가 남은 지역으로 번질 위험이 컸다"며 "고가주택 중심 상승세가 한강 벨트에서 북쪽과 남쪽으로 확산해 서울 전체를 지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규제가 단기적 억제 효과는 있겠지만, 풀린 유동성의 방향을 바꾸기엔 역부족이라고 본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 리서치 랩장은 "4000조원을 넘어선 시중 유동자금과 기준금리 인하 기대, 전·월세 상승 불안이 맞물리며 무주택자나 1주택자의 상급지 이동 수요가 완전히 꺼질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함 랩장은 "(자금이) 비규제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경기 외곽이나 입주 물량이 부족한 곳, 교통망 확충이나 택지개발, 정비사업이 진행되는 수도권 호재 지역으로 수요가 옮겨갈 수 있다"며 "이런 풍선효과가 나타나는지 정부와 시장 모두 주의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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