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시작, '창신제' 20주년 공연
누적 후원 1000억 원·공연 2071회
250만 명 관객, 7만 명 무대 참여
"예술을 배워야 기업이 산다" 윤영달의 법고창신
"K팝의 무대에서 뛰는 리듬, 그 뿌리는 국악입니다."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은 17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창신제 2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윤영달 회장은 "서양 무용은 본래 뛰지 않는다"며 "가수 싸이가 무대에서 처음 뛰었을 때, 그건 한국 춤의 굴신(屈伸)을 쓴 것이고, K팝의 생동감은 우리 장단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세계가 열광하는 K팝의 심장부에 국악의 리듬과 호흡이 자리한다는 설명이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프닝에서 전통 타악의 질감이 전면에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IMF 부도 뒤 '대금'에서 찾은 길
윤 회장의 '국악 경영'은 IMF 외환위기 이후 한 줄기 대금 소리에서 시작됐다. 윤 회장은 "부도가 나 등산복도 못 입고 신사복 차림으로 산에 앉아 있었는데, 어디선가 처음 듣는 소리가 들렸다"면서 "대금이었다"고 회상했다. 산을 내려오자마자 대금 명인을 찾아가 국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윤 회장은 "과자가 간식인지 먹거리인지 정체가 모호했는데, 예술을 덧입히면 길이 보일 것 같았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이때부터 예술을 경영의 언어로 끌어들였다. 지능지수(IQ)나 감성지수(EQ)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지수(AQ, Artistic Quotient)라는 생각이었다. 조화와 균형, 낯선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수성이 기업 생존력이라는 것이다. 윤 회장은 "후원만 하는 메세나로는 진짜를 모른다"며 "직접 배우고 무대에 서야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다"고 했다.
크라운해태의 국악 사랑은 윤 회장의 뚝심이 만든 결과다.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핵심 마케팅·영업 전략으로 작동했고, 경영철학으로 승화되며 '예술경영'의 대표 사례가 됐다. 윤 회장은 "고객에게 받은 사랑을 예술로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윤 회장은 "고객에게 받은 사랑을 예술로 보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곧 회사의 원칙이 됐다. 예술경영은 크라운해태의 핵심 가치 '고객과 함께 행복경영'과 맞닿는다. 윤 회장은 "과자를 만든다는 것은 꿈과 행복을 파는 일"이라며 "우리에게 그 꿈을 나눈 예술이 바로 국악이었다"고 언급했다. 이어 "힘든 시절 국악 소리에 감동과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국악을 통해 고객과 함께 숨 쉬고 진정한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 결심은 2004년 첫 무대 '창신제(創新祭)'로 구체화했다. IMF 이후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고객들에게 예술로 보답하자는 취지였다.
공연장은 국립국악원에서 서울광장을 거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으로 확대됐고, 올해로 20회를 맞았다. 크라운해태의 국악 후원액은 누적 1000억 원을 넘어섰다. 국내외 개최·후원 행사는 2071회, 누적 관객 250만 명, 무대 참여자 7만여 명에 이른다.
윤 회장은 "관람이 아니라 브랜드와 영업 현장으로 연결되는 신뢰 자산이 쌓였다"고 말했다. '전석 초청' 방식으로 점주와 VIP 고객을 공연에 초대해 매대 진열·프로모션 우선권 등 현장 실행력을 높였고, 사내에는 250명 규모의 국악 동호회가 생겨 근무시간 연습과 공연 참여가 제도화됐다.
크라운해태의 국악 후원액은 누적 1000억원을 넘어섰다. 국내외 개최·후원 행사는 2071회, 누적 관객 250만명, 무대 참여자 7만여명에 이른다. 윤 회장은 "관람 행사가 아니라 브랜드와 영업 현장으로 연결되는 신뢰 자산이 쌓였다"고 했다.
'허니버터칩'의 비밀, 국악 리듬의 감성
2014년 전국을 휩쓴 '허니버터칩'은 예술경영의 상징적 성과다. '감자칩은 짜야 한다'는 상식을 깨고 단맛과 짠맛, 버터의 풍미를 하나로 엮은 감성형 제품이었다.
윤 회장은 "왜 과자 회사가 국악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경쟁사와 차별화하려면 한국적인 '무엇'을 담아야 했다. 단맛·짠맛·고소함을 절묘하게 섞어 전혀 새로운 감각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허니버터칩'의 성공 비결은 국악의 리듬처럼 균형과 조화의 감각, 그리고 낯선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은 데 있다"며 "이 제품은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실험 결과였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국악 후원을 회사와 자신을 살린 '명약'이라 부른다. 이 신념은 위기와 호황을 가리지 않고 22년간 이어졌다. '창신제'를 시작으로 명인·명창의 전통 무대, 차세대 한음 영재들의 무대, 락음국악단, 그리고 임직원이 전국 고객에게 선보이는 순회형 국악 공연 'CH 한음회'로 확장됐다. 창신제에서는 2012년 '100인의 떼창(판소리 사철가)'으로 임직원들이 무대 주체로 섰고, 중요무형문화재 1호 종묘제례일무를 일반인 참여로 완성도 있게 재현했다. 플라멩코·오페라 등 동서양 협업, 국악뮤지컬(심청가·수궁가) 시도로 악(樂)·가(歌)·무(舞)의 경계를 허물었다. 기록의 차원에서는 '수제천 연구회' 책자를 발간해 전통의 지식화를 시도했다. 적극적인 공연 개최와 후원으로 기업·고객·국악계가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수제천'으로 엮은 20년의 여정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신제는 전통음악의 정수 '수제천(壽齊天)'을 주제로 꾸며졌다. '하늘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의 수제천은 백제 가요 '정읍사' 선율에서 비롯돼 궁중 연례·연향에서 연주된 정악의 백미다. 크라운해태는 4년 연속 수제천을 재해석하며 원형 보존과 현대적 변주를 병행하고 있다.
올해 무대는 현악·관악·타악이 어우러진 국악관현악 위에 임직원 100명이 '정읍사' 노랫말로 합창을 올리며 막을 열었다. 현대무용 '굴출신처'가 굴신의 호흡을 시각화했고, 처용무·일무·춘앵전을 엮은 '춤사위 수제천'이 궁중의 품격을 재현했다. 이어 임직원들의 종묘제례일무, 남창·여창 정가구음, 명인들로 구성된 양주풍류악회의 원형 수제천 연주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윤 회장은 "수제천의 원형과 현재, 미래를 한 무대에서 풀어낸 종합판이었다"고 말했다.
'창신제'의 또 다른 특징은 임직원의 참여다. 현재 사내 국악 동호회는 250명 규모로, 근무시간 연습과 공연 참여를 지원받는다. 직원들은 예술가로서 무대에 서고, 점주와 고객은 관객이자 동행자가 된다. 윤 회장은 "직원들이 즐기면서 국악을 하고 있다"면서 "전체 직원의 5%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직원이 예술을 경험하면 조직이 달라진다"면서 "협업과 소통을 배우고, 고객을 대하는 태도도 바뀐다"고 덧붙였다. 윤 회장은 향후 직원들이 함께하는 전국 순회공연 규모를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영재 발굴과 세대 확장
창신제는 명인 중심을 넘어 차세대 육성으로 외연을 넓혔다. 마지막 공연에서는 '영재한음회 창신제 특별공연'을 선보였다. 또 매주 일요일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진행되는 '영재한음회'는 2015년 시작된 국내 유일의 초등학생 국악 영재 정기공연이다. 지금까지 280회, 누적 관객 20만명, 참가 영재 9500명을 기록했다. 윤 회장은 "이제 전국에 팀이 너무 많아 매주 다른 팀으로 공연해도 될 정도"라며 "내년이면 누적 300회를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운해태는 영재들에게 악기·무대복·연습실을 지원하고 장학 프로그램도 병행한다. 윤 회장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며 국악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중학생 전용 무대를 신설해 성장의 사다리를 잇고 있다"고 설명했다.
크라운해태의 국악 사랑은 국내에 머물지 않았다. 임직원이 참여하는 전국 순회 'CH 한음회', 수제천의 원형을 기록한 '수제천 연구회', 그리고 해외 공연을 진행했다. 윤 회장은 올해 '2025 영동세계국악엑스포'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아 세계 최초 국악 엑스포의 성공을 이끌었다. 양주풍류악회 명인·명창들과 함께 일본·몽골·독일 등에서 '한국의 풍류' 공연도 꾸준히 이어왔다.
윤 회장은 "국악 공연은 아직 유료 관람 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다"며 "적은 금액이라도 입장료를 지불하고 예의를 갖춰 즐기는 문화가 정착돼야 우리 소리가 제대로 대접받는다"고 강조했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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