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오버 더 모빌리티](36)
자동차 개념 바꾼 혁신의 아이콘
바퀴달린 스마트폰·움직이는 컴퓨터
혁신 제조 공법 도입…전기차 대중화 이끌어
올해부터 사업 중심축 AI로 옮겨
자율주행 구독 및 로보택시 사업
로보틱스 공들여…물리 AI 시대 선점
테슬라는 단순한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다. 전기차 제조를 넘어 자율주행, 배터리, 인공지능(AI), 로보틱스, 데이터센터 그리고 우주 탐사까지 아우르는 종합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진화했다. 자동차 산업의 전통적 경계를 허물며 기술·제조·비즈니스 전 영역을 재설계하고 있다.
과거 테슬라가 제시한 화두는 이제 업계의 표준이 됐다. 테슬라가 도입한 혁신 공법은 전기차의 대중화를 촉발했다. 배터리와 반도체 칩을 자체 개발해 생산 개발의 주도권을 쥐는 동시에 원가를 낮췄다. '기가 캐스팅(Giga Casting)'으로 불리는 초대형 주조 공법은 생산 공정을 단순화하고 자동화율을 끌어올리는 제조 혁신의 상징이 됐다.
또 테슬라는 자동차의 개념 자체를 바꿨다. '바퀴 달린 스마트폰' '움직이는 컴퓨터'라는 별칭처럼 끊임없이 진화하는 차를 만들었다.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플랫폼을 구축하고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기술을 도입했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최신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으면서 신차를 사지 않아도 자동차를 최신의 상태로 유지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다.
테슬라는 2012년 모델 S에 업계 최초로 OTA 기능을 도입했다. OTA를 통해 소비자는 차를 고치기 위해 반드시 서비스센터를 방문할 필요가 없어졌다. 당시 테슬라는 모델 S의 배터리 화재 가능성이 논란이 되자 차체 높이를 조정하는 소프트웨어를 원격으로 수정·배포해 문제를 즉시 해결했다.
이어 2019년 테슬라는 모델 3를 통해 중앙집중형 전기·전자 아키텍처(E/E 아키텍처)를 선보이며 SDV의 시대를 열었다. 이 시스템은 차량 곳곳에 분산돼 있던 전자제어장치(ECU)를 통합해 중앙의 고성능 컴퓨터 하나로 차량을 제어하는 구조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에는 100개가 넘는 ECU가 탑재됐지만 테슬라는 이를 4개까지 줄였다. 덕분에 전선 길이와 부품 수가 크게 감소했고 차체 중량과 제조 비용까지 낮아졌다. 이 아키텍처는 이후 전기차 산업 전반의 표준 모델로 자리잡았다. 현대차 역시 2026년까지 SDV 전환을 위해 동일한 구조를 개발 중이며 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이미 2023년 이후부터 해당 방식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최근 테슬라는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AI로 학습하는 '완전 자율주행(FSD)' 시스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빠르게 구축한 SDV 플랫폼의 토대 위에서 자율주행 기술 경쟁에서도 선두권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테슬라 운전석에 앉는 순간, 사람들은 단순히 자동차를 타는 게 아니라 미래를 구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스마트 기기에 바퀴를 달다
테슬라의 브랜드 철학은 기존 완성차 기업과 출발선이 다르다. '싸고 좋은 차를 만든다'는 목표가 아니라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전기차를 선택했다.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물리학·소프트웨어 지식이 풍부한 엔지니어형 기업가다. 전기차를 바라보는 그의 사고방식도 '스마트 기기에 바퀴를 단다'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차량 동력원으로써 전기를 선택한 것도 친환경 전략인 동시에 IT 기기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IT 기업 애플이 실패한 '스마트카'를 테슬라는 어떻게 성공시켰을까. 해답은 테슬라 특유의 '실험주의' 정신에 있다. 테슬라는 소프트웨어 버그를 수정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IT 산업의 개발 문화를 자동차에 그대로 이식했다. 완벽한 제품보다 빠른 실험과 시장 피드백을 우선시하고 '먼저 내놓고 끊임없이 수정하는' 오픈 베타형 혁신을 택한 것이다. 테슬라에 결함은 브랜드 리스크가 아닌 혁신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애플은 '세계 최고'의 타이틀과 '완벽주의'에 갇혔다. 애플카를 만드는 '타이탄 프로젝트'를 10년 넘게 추진했지만 2024년 결국 포기 선언을 했다. 초기 목표를 '레벨 5 완전 무인 자율주행차'로 지나치게 높게 잡았기 때문이다. 애플은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들이 모인 집단으로 '움직이는 스마트폰'을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들은 IT 소프트웨어와 기계공학적 하드웨어의 결합이라는 전혀 다른 자율주행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걸음마조차 떼기 전에 금메달을 목표로 삼았으니 성과가 나왔을 리가 없다. 아예 새로운 영역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난제를 뚫고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리더도 없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었다면 애플카는 성공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일론 머스크의 리더십은 결이 다르다. 그는 불가능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으로, 테슬라를 실험실이 아닌 산업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초기 전기차 개발 과정에서 엔지니어들과 극한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모델 S 초창기 배터리 설계였다. 디자인을 위해 차체를 더 낮추려는 머스크와 안전성을 위해 두께를 유지해야 한다는 엔지니어들이 맞섰다. 결과적으로 이 논쟁은 배터리팩을 차체와 일체화하는 구조적 혁신으로 이어졌다. 머스크는 조직 관리 측면에서는 다소 가혹하다는 평가도 있으나 프로젝트의 성과만 보면 그의 리더십은 테슬라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엔진이었다.
제조 혁신, 전기차 대중화 필수 과제
테슬라의 혁신은 생산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배터리 셀과 팩, 전기 모터, 소프트웨어, 반도체까지 자체 개발하는 수직 통합형 공급망을 구축했다. 기술을 외주가 아닌 내부 자산으로 쌓아가며 원가와 품질의 주도권을 동시에 확보했다.
2020년 모델 Y에는 세계 최초로 초대형 다이캐스팅(기가 캐스팅) 공법이 적용됐다. 70여개 부품으로 나뉘어 있던 차체의 뒷부분(리어 보디)를 하나의 주조 부품으로 합쳐 '하나의 덩어리로 찍어내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원가를 40%, 무게를 30% 줄였다. 컨베이어벨트가 사라지면서 공장 면적은 20% 줄었다. 테슬라 제조 방식의 기본 방침은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해 인건비를 줄이고 원가를 낮추는 것이다. 상하이 기가팩토리는 자동화율 95%에 달하며 로봇과 인공지능 제어 시스템이 대부분의 공정을 담당한다.
이 같은 변화는 원가를 낮춰 전기차 대중화를 앞당기려는 전략의 일부다. 테슬라는 생산성 혁신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의 전기차'를 현실로 만들었다. 그 모델은 완성차 업계의 표준이 됐다. 도요타는 아이치현 공장에 2026년까지 기가 캐스팅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현대차도 동일 공법을 활용해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울산에 1조원을 들여 공장을 짓고 있다.
현대차와 혁신방식 경쟁 중
테슬라가 대량생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는 반면, 현대차 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서 제조 효율성 강화를 고민하고 있다. 현대차는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셀 기반의 유연 생산 시스템, 로봇의 제조 공정 투입, 디지털 트윈 등 다양한 생산 방식을 실험하며 유연·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현대차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하드웨어 역량을 쌓아올렸기에 '품질 중심·완벽주의'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다. 오랜 제조 전통 위에서 성장한 기업 특성상 기술 혁신도 중요하다. 하지만 완성도를 우선하는 문화가 뿌리 깊다. 이젠 SDV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시대를 맞아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2022년 출시된 현대차 7세대 그랜저의 초기 모델은 많은 소프트웨어 결함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까지도 국내에서 탄탄한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2024년 한 해 11만대가 팔렸고 올해는 누적 20만대 돌파가 기대될 정도다. 이는 소비자들이 이제 현대차에 완벽함보다 혁신을 기대하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현대차는 테슬라처럼 완전 내재화를 택하기보다 전략형 협업 모델을 구축했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과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고, 삼성전자와 반도체 협력 등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국내 기업과의 전략적 동맹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반면 테슬라는 기술의 시작부터 끝까지 스스로 통제하며 혁신 속도를 앞당긴다. 두 기업의 방향은 다르지만 '혁신'이라는 목표는 같다. 결국 그들의 경쟁은 자동차의 디자인이나 스펙이 아니다. 혁신의 방식에 있다.
AI 기업으로 변모하는 테슬라
올해 들어 테슬라 사업의 중심축은 '전기차'에서 'AI'로 옮겨가고 있다. 과거 테슬라가 전기차를 매개로 탄소중립을 전면에 내세운 기업이었다면 이제는 AI를 통해 인류의 삶을 직접 변화시키는 기업으로 변모하겠다는 시도다. 자동차 자체를 '바퀴 달린 AI 로봇'으로 만드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FSD) 소프트웨어의 베타 버전을 통해 북미에서 방대한 주행 데이터를 확보했다. 올해 3월 테슬라가 밝힌 FSD 적용 누적 주행거리만 36억마일(약 58억㎞)이다. 업계에서 이 수치를 구체적이고 주기적으로 밝히는 업체는 테슬라가 거의 유일하다. AI를 활용한 자율주행 업계에선 축적된 데이터의 양이 곧 핵심 기술 자산이다. 테슬라 최신 자율주행 시스템의 특징 중 하나는 한 번에 학습하고 처리하는 '엔드 투 엔드' 신경망 구조를 적용했다는 점이다. 즉 외부와 상호작용하는 원격 통신망이 끊기더라도 차량 내부에서 AI가 스스로 인식→판단→제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테슬라의 수익 모델도 변화하고 있다. 테슬라는 FSD 구독과 로보택시 서비스로 사업의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머스크는 2025년 말까지 미국 인구 절반 이상이 테슬라의 로보택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AI 인프라 측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2020년대 초반부터 테슬라는 자율주행 AI 학습을 위한 슈퍼컴퓨터 '도조(Dojo)'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최근에는 외부 클라우드 협업 모델로 방향은 다소 전환했지만, 자체 데이터 센터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테슬라는 자체 AI 반도체 칩(AI5 및 AI6)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엔비디아 등 외부 의존도를 줄이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테슬라의 AI 기술이 우리의 일상에 가장 직접적으로 스며드는 영역은 로보틱스가 될 전망이다. 머스크는 현재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가 앞으로 테슬라 기업 가치의 8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옵티머스는 AI 비전과 제어 기술을 핵심으로 설계된 로봇이다. 자율주행차가 도로 위에서 스스로 인식·판단·제어하는 방식을 '걸어 다니는 로봇'의 형태로 옮겨온 개념이다. 자율주행이 이동 자체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면 옵티머스는 그 기술을 가정·산업·물류 등 물리 세계 전반으로 확장하려는 실험을 하고 있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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