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도매시장 채소·과일 경매 현장 르포
당일 수집 농산물, 2시간 동안 순차 경매
품질보다 중도매인 거래처 수요 우선 고려
운송·인건비 등 유통 단계로 전가
"워~어리어리어리, 이○○, 조○○…."
어스름이 내려앉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 오후 7시가 넘어서자 전국에서 모인 야채 경매가 한창인 채소동은 이동식 전동카트에 올라탄 경매사가 일정한 리듬으로 뜻을 알 수 없는 추임새를 반복하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가 호명하는 이름은 전국에서 출하해 당일 경매장에 모인 농산물의 생산자다.
습한 공기가 실내를 가득 채운 가운데 경매 시작과 함께 카트 주위로 70~80명 남짓한 이들이 몰렸다. 연령대가 다양한 남성들이 주를 이뤘고, 드문드문 중년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소형 리모컨처럼 생긴 응찰기를 손에 쥔 이들은 당일 취합된 농산물의 경매가를 정하고, 낙찰받은 상품을 소상공인이나 식자재 유통사 등에 공급하는 중도매인이다. 경력 30년 차 베테랑 경매사인 곽종훈 동화청과 영업이사는 "중도매인들이 가격을 정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리듬으로 맺고 끊는 진행을 선호한다"며 "주의를 환기하고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는다"고 설명했다.
눈 깜짝할 사이 경락 가격 확정
이날 채소 경매는 2시간가량 쉬지 않고 이어졌다. 박스로 수북하게 쌓인 알배추와 치커리, 무, 상추 등이 순서대로 경매에 올랐는데, 중도매인들은 해당 품목의 경매가 시작되면 박스 일부를 개봉해 물건의 상태를 살폈다. 생산자 1명이 내놓은 물건은 대략 5초도 되지 않아 가격이 매겨졌다. 전광판에는 가장 높은 가격을 입력한 낙찰자와 수량, 가격 등이 송출됐다. 8㎏ 중량으로 포장한 알배추는 이날 박스당 1만원, 치커리(2㎏)는 5000~7000원, 무(4㎏)는 6000~9000원, 상추(4㎏)는 4만원 안팎에서 경락 가격이 정해졌다.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는 경매 과정은 각 상품의 품질이 제대로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다. 과일 경매가 한창이던 경기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사과와 배 등이 낙찰되기까지 상품당 5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수량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이 쌓인 농산물들이 품목당 10분에서 30분이면 모두 낙찰됐다. 경력 10년 차인 한 중도매인은 "병충해 여부나 크기가 적정한지 등 유심히 살펴보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낙찰 기준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각자 원하는 상품을 미리 점찍어 두고, 경매 차례가 되면 이를 확보하기 위해 눈치작전을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2019년 9월 청과부류 주요 25개 품목에 대한 경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총 거래 건수 647만5290건 중 응찰 시간 1초 초과~3초 이하의 비중이 42.7%에 달했다. 1초 미만도 16.5%로 나타났다. 경매 물량 10건 중 6건이 3초 안에 거래가 이뤄진 셈이다. 생산자들은 이 같은 가격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 정산금액을 수용하거나 불만이 있는 경우 낙찰에 응하지 않고 폐기·회수하는 두 가지 선택만 할 수 있다.
농산물 가격 결정 '키맨' 중도매인
경매 가격을 결정하는 '키맨'은 중도매인이 지목된다. 전국 단위로 매일 취합하는 농산물의 시세가 이들의 손에서 정해져서다. 중도매인은 농수산물도매시장이나 공판장 개설자로부터 허가 또는 지정을 받아 시장에 상장된 농수산물을 매수·도매하거나 매매를 중개하는 영업자다. 이들은 경매를 통해 확보한 농산물을 전통시장이나 급식업체, 식자재 유통사, 슈퍼마켓을 비롯해 식당 등 중·소상인과 자영업자로 이뤄진 거래처에 공급하는 일도 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하는 농수산물도매시장 통계 연보에 따르면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에 등록된 중도매인은 개인과 법인을 합쳐 지난해 기준 7678명이었다. 이들은 경매에 참여해 개설자가 정한 최저거래금액 기준을 달성해야 자격을 유지할 수 있다. 가락시장 청과부류의 경우 3개월간 개인 중도매인은 1억5000만원, 법인 중도매인은 3억원 이상을 거래해야 한다. 매달 5000만원과 1억원 수준이다.
나머지 지역도 시장 규모에 따라 편차가 있으나 청과를 기준으로 개인은 월 2000만~3000만원, 법인은 1억원 안팎을 최저거래금액으로 정한다. 만약 3개월 평균 거래실적이 월간 최저거래금액 기준에 미달하면 주의와 경고, 일정 기간 업무정지 등의 제재를 받는다. 또 1개월간 무실적은 '주의', 2개월 무실적은 '경고', 3개월 무실적은 '허가취소' 조치가 내려진다.
공영도매시장에서 이들의 가격 결정 구조를 지켜본 결과, 당일 출하되는 농산물의 품질보다 중도매인이 확보한 거래처의 주문량이 경매가를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 중·소상인 거래처 20~30곳에 채소를 납품한다는 한 중도매인은 "경기가 좋지 않아 손님이 줄기 때문에 거래처인 식당에서 이전보다 주문량을 줄이고 있다"면서 "중도매인들도 재고 부담을 꺼리기 때문에 경매로 확보하는 물량이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시세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농산물 경매 가격, 생산량 아닌 중도매인 거래처 수요가 결정
그러면서 "채소의 경우 특히 보관이나 유통할 수 있는 주기가 짧기 때문에 다른 품목에 비해 가격 변동성이 크다"면서 "당일 시장에 풀린 물량은 적은데 구매해야 할 양이 많으면 경매가를 높게 불러서라도 원하는 상품을 확보하는 것이고, 수요보다 공급량이 많으면 그 반대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농산물 가격은 생산량이 아니라 중도매인이 필요한 수량에 따라 움직인다는 이야기다. 농가에서 농산물 가격이 기후변화가 아닌 불합리한 유통구조라고 지목하는 이유다.
중도매인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낙찰받은 농산물을 거래처에 공급하면서 붙이는 마진은 15% 안팎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리스크 관리 비용도 포함된다는 것이 중도매인 측 주장이다. 경력 10년 차인 한 중도매인은 "대형마트나 유통업체들은 거래 과정에서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우리는 거래처에서 반품을 요구하면 이를 모두 떠안아야 한다"며 "이 때문에 1억원 넘게 손해를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중도매인의 연간 거래액 규모는 10억~20억원이 1740명으로 가장 많았다. 5억~10억원이 1658명, 30억원 이상도 1329명에 달했다. 거래 규모가 큰 만큼 운송 및 인건비 부담이 큰데, 이 같은 비용도 유통 단계에 고스란히 반영되면서 소비자 가격에 연동된다는 주장이다.
중도매인→도소매 가격 결정 불투명해
중도매인이 받는 보수는 경력이나 거래처 실적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법인 대표인 한 중도매인은 "매일 경매에 참여하고 상품을 따내 각지의 거래처에 납품하기까지 영업과 소분, 운송 등을 담당할 작업자가 필요한데, 야간 근무에 주 6일제라 웬만한 조건으로는 일할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10명 남짓한 직원 월급으로 1인당 400만원 이상을 주는데, 인건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문제는 중도매인을 거치면서 소비자 가격이 책정되기까지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일례로 중도매인들이 응찰하는 가격의 상·하한선을 정하지 않아 '누르는 숫자가 곧 기준 시세'로 정해진다. 도매법인에서도 낙찰 이후 책정된 수수료만 거둬들일 뿐 경락 가격의 등락 폭을 제어하지는 않는다. 또 중도매인들이 거래처에 얼마만큼의 이윤을 붙여 상품을 넘기는지, 소비자 가격에는 통상 유통비와 마진이 어느 정도로 반영되는지 알 수 없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농산물의 소비자 가격이 폭등할 때면 이상기후나 작황 문제로 인한 수급 상황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될 뿐, 중간 유통단계의 가격 책정 구조가 납득할 만한 수준인지 확인하거나 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한 생산자는 "매일 경매장에 전국 단위의 수많은 농산물이 모여들고, 가격이 매겨지는 시간도 워낙 짧기 때문에 (농민들 입장에서는) 도매법인이나 중도매인과 친분이 있거나 오래 거래한 생산자의 농산물을 미리 점찍어 두고 좋은 가격에 사들이는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며 "영세농이나 신규 출하자는 경매시장에서 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날씨는 죄가없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박재현 기자 no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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