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투입으로 활동가 방어 '무용지물'
독일 베를린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 5년 만에 강제 철거됐다.
17일 연합뉴스는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를 인용해 이날 베를린 미테구청이 소녀상을 철거했다고 보도했다. 미테구청은 당일 오전 7시쯤(현지시간) 전문업체를 동원해 관내 공공부지에 있던 소녀상을 들어내 옮겼다. 코리아협의회는 구청의 철거 압박에 소녀상을 테이프로 감아놓고 회원과 지역 주민들이 돌아가며 감시하고 있었으나 끝내 강제철거를 막아내지 못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활동가 3명이 지키고 있었지만 경찰관 25명이 소녀상을 둘러싸고 접근을 막았다"고 연합뉴스에 말했다.
앞서 베를린 미테구청은 최근 코리아협의회 등에 공문을 보내 지난 14일까지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을 경우 강제 철거에 나서겠다고 최후통첩을 한 바 있다. 당시 구청 측은 "공공 도로용지에서 동상을 자진 이전하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추가 경고는 의미가 없다"며 "필요시 전문 업체를 동원해 철거를 집행하겠다"고 경고했다. 미테구청은 지난 8월에도 "소녀상이 임시 예술작품 설치기간인 2년을 넘겼다"며 10월 7일까지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소녀상을 설치한 코리아협의회는 베를린 행정법원에 구청 명령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2020년 8월 현 위치인 미테구 중심가의 공공부지에 세워졌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상징물로 독일 내에서도 사회적 관심을 받아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항의 이후 미테구청이 설치 허가 연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재독단체 "다시 설치할 장소 논의 중"
미테구청은 지난해 9월에도 소녀상 철거명령을 내렸지만, 당시엔 법원이 코리아협의회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효력이 정지됐다. 법원은 올해 4월 다시 한번 소녀상의 존치를 인정해 지난달 28일까지 현 부지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테구청은 이 기간이 지나자 과태료 3000유로(약 497만원)를 부과하고 소녀상을 자진 이전하지 않으면 강제로 철거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구청과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을 사유지로 이전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미테구청은 지난 7월 민간단체인 '티어가르텐 세입자 협동조합' 소유 부지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코리아협의회와 협동조합 모두 "미테구청의 일방적인 발표일 뿐 그런 합의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최후통첩을 받은 뒤 코리아협의회는 철거명령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다시 법원에 냈으나 지난 14일 기각됐다. 코리아협의회는 "구청이 소녀상을 어디에 보관했는지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다"며 "단기, 장기적으로 다시 설치할 장소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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