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청주서 개막
모던아트협회 작가 11명 작품 156점 전시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1956년 한국 미술계는 이른바 '국전 분규'로 다시금 큰 혼란에 빠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주관 전시에 참여했던 원로 작가 다수가 제5회 국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일본 정통 화풍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벌인 젊은 작가들에게 박한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에 젊은 작가들은 전후 현실과 시대정신 반영을 주장하며 반(反)국전 운동에 나서면서 기존 제도권 미술과 충돌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본 유학파 출신의 젊은 작가들을 주축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모던아트협회'가 결성됐다. 김경·문신·박고석·한묵·황염수·유영국·이규상·임완규·정규·정점식·천경자 등 11명의 작가가 국전의 사실주의와 앵포르멜(비정형 추상미술)의 급진성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을 모색했다.
모던아트협회는 1957년 동화화랑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고, 이후 임완규, 정규, 정점식, 천경자 등의 작가가 합류해 1960년까지 4년 동안 여섯 차례 전시를 이어갔다. 이들은 생활과 자연, 일상의 풍경을 추상적 언어로 전환하는 실험을 이어갔으며, 추상을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삶과 정신, 현실과 사유를 통합하는 태도로 이해했다. 또한 개별 작가의 실험을 존중하고 연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열리는 '조우, 모던아트협회 1957-1960' 전시는 모던아트협회에 참여한 작가 11명의 작품 156점과 아카이브 30점을 선보인다. 전쟁 직후의 궁핍하고 긴장된 상황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사른 1세대 모더니스트들의 노력을 조명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모던아트협회 구성 전, 협회 활동 시기, 협회 해산 후 1970년대 중반까지의 내용을 다룬다.
김경의 '조우'는 두드러진 질감이 인상적이다. 거친 질감(마티에르)을 강조하기 위해 짙은 색 배경에 밝은색을 덧입힌 뒤 다시 긁어내는 '그라타주' 기법을 사용했다. 마티에르 표현이 무르익기 전 과도기 시기의 작품으로, 토속적 소재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추상으로 나아가려는 실험적 태도가 인상적이다.
정규의 '교회'(1995)는 단순한 형태와 색채를 바탕으로 작가의 회화 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교회와 집, 나무가 기하학적 형태로 존재한다. 흰색의 지붕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정규는 늘 자신의 작품에 '규(圭)'자 서명을 넣었는데, 작품에는 교회 창문 자리에 배치됐다.
이번 전시에서 첫선을 보이는 작품도 있다. 황염수의 1950년대 작품 '나무'와 김경의 '조우'(1960), 박고석의 '소'(1961), 유영국의 '새벽'(1966), 한묵의 '무제'(1965) 등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효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작가들이 모던아트협회에서 활동한 기간이 워낙 짧고, 이후 화풍이 극변하면서 이 시기 크게 주목받지 않았다"면서도 "이들이 남긴 문제의식은 이후 단색화와 민중미술 등으로 확산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된 만큼 연구하고 재조명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전시관 초입에는 1950년대 이후 참여 작가들의 활동 모습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현한 김시헌 작가의 영상 작품 '전위의 온기'가 설치돼 그 시절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짧은 활동이었지만 모던아트협회가 남긴 문제의식은 이후 단색화와 민중미술 등으로 이어지며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자산이 됐다"며 "이번 전시가 모던아트협회의 형성과 전개 그리고 해산 이후의 흐름까지 아우르며 참여 작가들의 다양한 예술세계와 그 시대적 의미를 되새기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8일까지 이어진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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