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압박에 ‘보여주기식 단속’ 반복"
유엔 “정부·정치권 결탁 구조 심각”
동남아시아에서 온라인 범죄조직이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캄보디아가 만연한 부패 속에 별다른 제재 없이 이들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지 집권층이 범죄조직과 결탁해 단속을 묵인하거나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16일 현지 매체 캄보디아데일리는 지난 7월 캄보디아 정부의 전국적인 온라인 사기조직 단속을 전하며 "근본적 문제 해결보다는 국제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조치"라는 시민사회 반응을 소개했다.
사회평론가 본 찬루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부는 과거에도 국제적 압박이 가해지면 유사한 단속을 벌였다"며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위 인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집권당인 캄보디아인민당(CPP) 소속 상원의원이자 사업가인 리용팟과 콕안,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 등을 거론하며 이들이 초국가적 범죄조직과 연루된 것으로 지목되지만 여전히 캄보디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유롭게 활동한다고 지적했다.
리용팟은 훈 센 전 총리의 개인 고문으로 알려진 최측근 인사로 카지노와 호텔 등을 운영해왔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리용팟 소유 업체가 인신매매로 동원한 노동자를 학대하며 온라인 사기를 벌였다며 제재를 가했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와 관련해 지난 14일 프린스(Prince) 그룹과 천즈 회장, 후이원그룹 등을 제재했다.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감금돼 보이스피싱 등 사기에 동원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太子) 단지'도 프린스그룹이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훈 센 전 총리 측근으로 알려진 콕안에 대해서는 온라인 사기와 자금 세탁 혐의로 태국 법원에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태국 매체 네이션에 따르면 지난 7월 태국 경찰 사이버수사대는 훈 센 전 총리 가문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캄보디아 후이원그룹으로 막대한 온라인 범죄 수익이 흘러 들어갔다고 밝혔다.
훈 센 전 총리 가문은 캄보디아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누려왔다. 훈 센은 38년간 캄보디아를 통치한 뒤 2023년 장남 훈 마네트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국왕에 이어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상원의장 자리에 올랐다. 훈 마네트 외에도 훈 센 일가 다수가 국가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
유엔과 인권단체는 부패한 권력 구조 속에서 동남아 각국의 범죄조직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6월26일자 보고서를 통해 캄보디아에서 53개 대규모 사기 작업장을 파악했다며 "캄보디아 정부가 이들 시설이 번창하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속아서 인신매매 당해 노예가 된 사기 작업장 생존자들은 캄보디아 정부의 허락하에 운영되는 듯한 범죄 조직에 끌려와서 살아 있는 악몽에 갇힌 것 같다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지난 5월 성명에서 "캄보디아의 만연한 부패 분위기에 범죄조직들이 처벌받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며 이들이 "정부 관계자, 정치인, 지역 당국, 유력 자산가들과 결탁하면서 득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 1월 훈 마네트 총리가 이끄는 태스크포스가 구성되는 등 손을 놓고 있지 않다면서 앰네스티 보고서가 과장됐다고 반박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는 등 국제사회의 비판에 맞서 왔다.
이성민 기자 minut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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